영화 <8과 1/2> 리뷰
영화 <8과 1/2>은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1963년작이다. 제목은 장편 영화, 두 개의 단편 영화, 그리고 알베르토 라투아다와 공동으로 연출한 청춘군상이라는 영화, 그리고 이 8과 1/2까지 펠리니가 만든 영화들의 개수를 합친 숫자를 뜻한다고 한다.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인 요소를 기반으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연출 방식이 인상적이다. 특히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잃어가는 감독의 내면을 복잡하고도 섬세하게 풀어낸다.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그 지점에서 '영화'라는 예술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는 새로운 극본을 써 내려갔고, 제작자는 그 극본을 보곤 신랄한 비판을 한다. 영화가 다른 예술에 비해 50년은 뒤쳐진다는 지적에 대한 가장 서글픈 예시 같다고 말했으며 또한 아방가르드로서의 가치도 없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겨우 영화 촬영을 시작했지만 극본이나 촬영일정도 명확하지 않아 배우, 제작진들의 질문은 끊이지 않고 현장은 혼란스럽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극도로 지쳐 있던 귀도는 요양을 핑계로 온천으로 향하지만 그곳에서도 일과 인간관계의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이 하늘을 날다가 추락하는 기이한 꿈을 꾼다. 헤어질 용기가 없어 살고 있는 와이프에게도, 오로지 육체적 관계만을 유지하는 애인에게도 지쳐있는 그에게 유일한 사랑은 창부 같은 성녀 클라우디아였다. 귀도의 무의식과 불안, 그리고 욕망을 구현할 작품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을까.
<8과 1/2>는 창작자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내면의 혼란과 무력감을 그려 현실감을 더한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루하다. 감독의 창작과정이나 결핍, 욕망과 관련된 것들이 현실과 뒤섞여 배출된 결과물을 보는듯했고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부분들까지도 보여준다. 물론 관객들이 보는 이 작품은 '정제된 형식'으로 보이는 것이겠지만 때론 지나치고 과잉된 부분까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점이 단점으로 작용한다. 영화 속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거창하지만 방향감을 잃은 그의 모습이 더욱 명확하게 보였다. 현실 도피의 욕망은 이야기만 다를 뿐 같은 모습을 하고 반복되고 있었다. 정상적인 애정의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도 그의 유년시절의 결핍 때문이었다. 하지만 감당하지 못할 이야기는 큰 형태로 그의 내면을 갉아먹고 있었고,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어느새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었다. 결과물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몰락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커져가 점차 자신이 만든 세계에 갇히게 된다. 그의 추락은 물리적 추락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추락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매우 이상적이고 모든 것이 갖춰진 작품이었지만 남들이 보기엔 허황된, 겉멋만 잔뜩 든 졸작이었다. 영화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흥미나 이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저마다 느끼는 게 다르기에 많은 것을 충족시키기가 어려운 것이다. 감독의 의도나 작품의 완성도와는 또 다른 것이다.
내가 명확한 생각을 가진 줄 알았어. 정직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 어떤 거짓도 없는 그렇게 단순한 뭔가를 가지고 있는 줄 알았어. 그냥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죽은 것들을 영원히 묻을 수 있는 영화.
그의 결핍은 돌림노래처럼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지만 한편으론 그의 고독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보여주는 '너'를 인식하지만 실제 '나'와 실제 아닌 '나'를 인식해 주길 바란다. 그 괴리감이 그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었다. 유년시절부터 시작된 호기심은 제대로 충족하지 못한 채 억눌려있었고 어머니에 의해 강요된 종교는 또 다른 형태의 성적 억압을 낳아 왜곡된 방식의 욕망을 표출하고 있었다. 다소 지루한 부분도 있었지만 누군가의 평가에 휘둘리기보다는 자신의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세상을 꿈꾸고 싶었는지에 대해 알게 만들어준다. 다만 그 고독은 누구도 이해해주지 못했고 '미완성'된 작품 속의 인물들만이 그의 외로움을 이해해 줄 수 있었다. 그는 끝내 자신이 바라고 바랐던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그 실패로 인해 현실의 진실됨을 마주했다. 그가 남긴 흔적들은 사라지지 않고 또 다른 형태로 돋아나 어딘가에서 다시 되살아날 것이다.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위로받고 일어날 수 있었던 어떤 '존재'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보는 작품들은 수많은 정제와 편집을 거쳐 세상에 나오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채 어딘가에 남겨지기도 한다. 그렇게 완성되지 못한 '미완성'작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이 영화는 그 질문에 답하듯 미완성된 것들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거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비록 오래된 시간 동안 고민하고 창조해 온 세계가 세상에 공개되지 못한다는 것 애석한 일이지만 언제나 함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는 현재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했고, 더 이상 현실을 도피하는 수단으로 예술을 소비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지만 흔적을 남겼기에 언제든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당신에게도 미완성된 어떤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 역시 언제 가는 빛을 발할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