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극 속의 무감각한 침묵.

영화 <모번 켈러의 여행> 리뷰

by 민드레


린램지 감독의 2002년 작 <모번켈러의 여행>은 동명 소설을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다. 로드무비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로드무비와는 거리가 먼 독특한 형식을 띠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차가운 항구에서 시작해 남부 스페인의 뜨거운 길 위로 이어지는 모번의 여정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상실과 무감각 그리고 선택이 얽혀 만들어내는 기묘한 감각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다.


w1dvEoZJiO0TIoBHbVyB50GzzsS.jpg


줄거리


스코틀랜드 북부 외딴 항구마을. 슈퍼마켓 점원인 21살의 모번 켈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자친구의 시신을 발견하지만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가 떠났다고 말한다. 남자친구의 시신을 벽장 안에 숨긴 후 그녀는 남자친구가 쓰던 소설의 작가명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어 출판사로 보낸다. 그리곤 그가 남긴 돈을 들고 친구인 라나와 함께 남부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난다.


aRFsgk8X8J6mRvgStvUDBIaDdlX.jpg


벗어나고 싶은 도시


그녀가 사는 도시는 스코틀랜드 북부의 외딴 항구 마을이다. 모번은 슈퍼마켓 점원으로 일하며 반복되는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서 그것을 처리하는 것보다 친구와 함께 스페인으로 떠난다. 차갑고 회색빛의 스코틀랜드와는 달리 뜨겁고 이국적인 스페인은 그녀에게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그곳에서도 뚜렷한 감정변화를 드러내지 않는다.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느끼지는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모번은 남자친구의 원고를 자신의 이름으로 바꿔서 낸 작품이 엄청난 원고료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기뻐한다. 슈퍼마켓 점원이었던 자신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열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eEYSpDrZGdsKec1Qo9CLnQVaybu.jpg


비극에서 시작된 한 이야기


행복한 순간이 아닌 비극적인 사건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않는 이별의 슬픔은 내면에 스며든 듯 보였다. 지극히 무감각하고 단절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그녀가 마주한 죽음은 마치 눈앞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닌 것처럼 멀게 느껴진 만큼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는 말이 남겨져 있었다. 모번을 위해 썼다는 글, 출판사에 대신 기고해 달라는 부탁, 유산을 장례비로 써달라는 부탁은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그녀가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었다.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녀의 현재와 사건 후의 반응을 통해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했던 사람인 것이다.


98CtP0kSIY8Kg1sd5KABjh3Jnq7.jpg


죽음은 수단이 된다


영화는 상실에 대한 감정을 다루지만 애도와 회복의 과정을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비춘다. 그가 남긴 죽음의 잔재(유산이나 출판물)를 제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행보를 이어나간다. 어딘가 정신이 나갔나 싶을 정도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영화는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쉽지가 않다. 알 수 없는 장면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 같고 표저에서 드러나지 않아 불친절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러한 설정 자체가 그녀의 알 수 없는 행동들을 뒷받침한다.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그 시선을 잠시 거두고 바라본다면 모번이라는 인물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상실을 자신의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그 모습이 기괴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서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영화는 그녀에게 어떤 결말이 닥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 모번의 현재만 담아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