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람과 고기> 리뷰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관람하게 된다. 그것은 곧 나의 미래이자 지금 우리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 같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노인의 삶은 더더욱 단일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누군가는 파크골프를 치며 여유를 즐기고, 누군가는 시니어 일자리로, 또 다른 누군가는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유지해 간다. 준비된 노후와 그렇지 못한 노후의 간극만큼 삶의 풍경은 제각각이다. 양종현 감독의 신작 <사람과 고기>는 가장 불안정하고 노후를 대비하지 못한 노년의 삶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오는 10월 7일 개봉을 앞둔 이 작품은 노인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언젠가 맞닥뜨릴지도 모를 현실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줄거리
형준과 우식은 폐지를 주으러 다니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서로 폐지를 줍다가 싸우고 화진을 만나면서 함께 '공짜로' 고기를 먹으러 다닌다. '무전취식'이나 다름없는 공짜 고기는 처음엔 죄책감이 들었지만 혼자가 아닌 셋이서 나누는 고기 한 점은 생의 온기를 찾아준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했던 공짜 고기 파티는 덜미가 잡히면서 끝이 나고 만다.
고기는 필수 섭취 식품이라 할 정도로 영양분이 풍부해서 노인들이 더더욱 섭취해야 하는 음식 중 하나다. 하지만 고기는 돈과 여유가 있어야 먹을 수 있고 혼자 먹기엔 아쉬운 음식이기도 하다. 싸움으로 시작된 관계였지만, 어느덧 음식으로 가까워진 세 노인은 고기 한 점을 같이 먹기 위해 모이게 된다. 처음엔 소고기 뭇국을 함께 하며 충만한 식사와 따뜻함을 느꼈고, 어느새 오래 잊고 있었던 살아있음이라는 기쁨과 세상과 연결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세 사람이 함께 하는 순간만큼은 삶의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느껴지지 않았다. 회피인 것인지 그것이 꿈이라는 듯이 냉혹한 현실이 닥쳐온다.
분명 그들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고 극 중 그들의 행위를 심판하고 처벌하는 내용도 나온다. 이들의 행동은 범죄였기에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해졌다. 그 차가운 법은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약한 자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여길 만큼 가슴이 조금 뜨거워졌다. 그럼에도 이들의 관계는 멀어지지 않는다. "형님이랑 여사님이랑 고기 먹을 때가 제일 좋았어"라고 말할 만큼 가까워졌다. 고기의 영양분처럼 사회에 필요한 영양분이 고루 퍼지고 있는지에 대해 자문한다. 자식과 손자에 대한 화해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으로 묘사한다. 사연을 들어봐도 도저히 안될 것 같다. 멀어지거나 소통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쉬운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명시한다. 현대사회의 세대 간 간극이 얼마나 벌어져있는지를 보여줬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인들에게 한국은 결코 친절한 사회가 아님을 되짚어준다. 일부 청년들이 노인을 도와주는 모습도 분명 있었으나 노인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등쳐먹고 차갑게 하는 모습이 훨씬 더 많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노인을 중심부에서 없애 구석으로 내모는 느낌이 들었다. 한때 한국을 이끄는 중심이었을 텐데, 왜 이렇게 된 걸까. 이런 모습이 나의 미래라면 별로 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사람들이 젊음에 열광하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일부 노인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편견을 가지기도 한다. 그런 마음을 가졌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만큼 노인 빈곤과 복지의 실태에 대해 더 늦기 전에 돌아봐야 한다.
웃음 나고 때론 슬프고 먹먹하기도 하지만 사람냄새가 가득한 영화였다. 올해 주목해야 할 한국 영화이자, 한국 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노인을 연민의 시선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그들을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의 시선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노인을 소재로 한 영화중에 이렇게 입체적이게 그린 영화는 또 없었다. 고기 한 점에서 피어난 세 사람의 정을 표현한 부분은 따뜻했지만 그뒤의 냉혹한 현실을 그려낸 부분은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다. 영화는 노인에 대한 이야기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 또한 언급하고 있다. 한 끼를 함께 나눌 사람이 있는가.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웃을 수 있는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관계와 일상적인 식사가 사실은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고기 한 점이 만들어낸 소소한 연대가 때로는 법과 제도보다 더 인간답게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된다. 그래서 <사람과 고기>의 제목이 노인과 고기가 아니라 사람과 고기인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의미와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세 사람의 우정과 따뜻한 웃음을 마음속에 오래도록 새길 수 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