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너머의 종말, 사실 희망을 바라는 청춘들.

영화 <피크닉> 리뷰

by 민드레


블랙이와이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인 <피크닉>은 이와이슌지 감독의 1996년 연출작이다. 우울하고 파괴적인 청춘의 초상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담아낸 영화다.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트라우마와 사회 비판 의식이 돋보이며, 블랙이와이 중에서도 가장 어둡고 실험적인 결을 띤다.



줄거리


코코는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즉, 가족에게 버려진 것이다. 코코는 그 병원에서 츠무기와 사토루를 만나게 된다. 병원 뒤편에는 세상과 연결된 담장이 있는데, 나갔다가 들키면 보호소에 갇히기 때문에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없다. 처음엔 모험을 떠나자며 담장을 넘게 됐고 두 번째는 성경 속의 지구의 종말을 보기 위해 담장을 넘게 된다. 대책이 없어 보이는 이들의 탈출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바로 담장을 넘어가 땅바닥에서 걷지 않고 담장 위를 걷는 것이었다. 그들의 현실 (정신병원)이 아닌 진짜의 현실 (도시)의 공감을 침범하지 않는 경계를 지키기 위함인 걸까. 잠시나마 얻을 수 있었던 순수한 자유와 해방의 공간에서 그들은 자유를 만끽한다.



세 사람이 본격적으로 피크닉을 떠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첫 번째 모험을 떠났던 츠무기와 코코는 신부를 만나게 됐다. 신을 믿지 않았던 츠무기에게 성경을 건넸고, 츠무기는 그에 감명을 받아 신을 믿게 되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며 성경을 계속 읽어 내려간다. 성경에는 종말을 뜻하는 구절이 있었고 그 시기는 1998년 7월 10일이라고 오해한다. 그들은 세상의 종말을 마주하기 위해 다시 담장을 넘어가게 된다. 과연 이들은 세상의 종말을 눈으로 목격할 수 있을까?



저마다의 트라우마가 있었다. 영화 속에서는 자세히 다뤄지지 않지만 그들의 내면을 갉아먹는 족쇄가 되어 '희망'보다는 세상의 '종말'을 바라게 된다. 그들이 떠나는 피크닉 또한 세상의 종말을 구경하기 위함이다. 그들이 마주했던 혹은 마주하고 있는 공간은 거짓된 낙원이나 마찬가지였다.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주입하는 '행복의 이미지'와 '소비에 기반한 평화'의 실상은 꾸며진 것이었다. 그렇게 담장 위를 걸으며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말을 꿈꿨지만 사토루는 해방의 여정에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고 코코는 자신의 죽음을 세상의 마지막이라 믿었으며 츠무지는 남겨진다. 자신이 바랐던 구원이 쉽게 허락되지 않았으며 트라우마와 상실을 극복하며 살아남아야 하는 숙명을 맞이한다. 소외된 청춘들이 자신들을 병들게 한 세상에 향해 분노를 표출해도 허공에 쏜 총알이 어디도 맞추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의 외침은 허공에 흩어진다.



영화에서는 직접적으로 사연을 드러내지는 않아 그들의 감정에 깊게 몰입하거나 행동의 이유를 파악하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를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피해자이지만 가해자가 되어버린 그들이 통제된 공간에 갇혀 행동을 제약받고, 정신적인 치유와는 거리가 먼 활동을 통해 더욱 내면을 갉아먹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특히 영화 처음부터 시작되는 장미꽃을 수놓는지만 한 번에 뭉개지는 장면이 연결되면서 이들의 비극을 예고하는 듯한 모습은 더욱이 절망스러웠다. 종말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해방을 꿈꾼 그들이지만 세상의 비정상적인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는 이들의 몸부림이야 말로 제대로 된 '저항'임을 영화에서는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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