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블루> 리뷰
사람은 완벽하지 않지만 아이돌은 완벽해야 한다. 그 모순된 이미지는 화려함 이면의 어둡고 폭력적인 시스템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미마'가 아닌 현실이 '미마'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을까. 1997년 작품 <퍼펙트 블루>는 귀엽고 순수한 아이돌 미마가 배우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리며, 흔한 아이돌 성장 드라마가 아니라 연예계의 이면과 아이돌 산업이 개인을 어떻게 상품화하고 소비하는지를 보여준다. 잔혹한 현실에서 완전한 우울에 빠져들 것인지, 진짜 자신을 찾을 것인지는 자신의 손에 달렸다.
미마는 걸그룹 참의 리더다. 그룹의 인기는 높지 않았고 소속사의 권유로 가수활동을 중단하고 배우로 전향하게 된다.
아이돌에서 배우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이미지 변신이 필수였고, 많은 팬들이 실망하게 되는 결과를 불러왔다. 미마는 작은 역할을 맡다가 소속사 사장의 노력으로 점차 큰 역할을 맡게 된다. 하지만 그 역할은 강간 장면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미마는 거부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인지도를 쌓기 위한 것이었지만 미마 개인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온 사건이나 마찬가지였다. 스토커의 존재, 미마의 방에서 떠들썩하는 자신에 대한 말로 인해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으니까. 그 후, 아이돌로서의 자아와 배우로서의 자아에서 혼란을 겪던 미마에게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이돌 그룹은 생명이 짧다. 특히나 아이돌 산업은 유사연애 감정을 기반으로 하기에 미마의 파격적인 행보는 팬들에게 큰 배신감으로 돌아온다. 스토커는 아이돌 생활을 충실히 했을 때는 보이지 않은 존재지만 배우 생활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좋아한다는 감정에서 시작된 집착은 당사자를 악몽에 빠뜨렸다. 안 그래도 배우로서의 길로에서 불안감을 안고 있던 미마는 스토커로 인해 더욱 혼란을 겪게 된다.
미마가 아이돌 그룹에서 배우로 전향하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연신 충격적인 장면이 이어진다. 화려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어두운 산업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이것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었다. 한국 영화계에서도 숱하게 벌어졌던 여성 배우들의 강제 노출 요구와 성적 대상화의 장면은 아름다운 예술로 포장한 폭력적인 현실을 드러낸다. 감독과 작가는 배우를 상업적으로 적극적이게 이용하지만 미마는 그것을 거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이다. 다만 이 작품의 연출 역시 그러한 장면을 강조함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착취의 시선을 재현한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예술로 포장된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
<퍼펙트 블루>의 시대적 배경은 훨씬 이전이라 sns가 발달된 지금보다는 덜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온라인 커뮤니티 격인 미마의 방에서 조금씩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물론 인터넷이 아니더라도 대중과 팬이 만들어낸 가상의 이미지가 현실의 인물을 덮어 씌우는 현상으로 괴리감이 더해진다. 미마는 대중들이 바라보는 자신(아이돌 자아)과 실제의 자신(배우 자아)을 구분하지 못하는 형국에 이른 것이다.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점점 흐릿하게 만들며, 결국 누가 실제로 살인을 저질렀는지조차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게 관객은 혼란 속에서 ‘진짜 미마’가 누구인지 묻게 된다. 세밀한 작화와 치밀한 연출은 작품 전체의 불안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특히 자극적인 반전이나 미스터리를 보여주면서도 그에 완전히 기대지 않고 현대 사회의 폭력적 시선과 정체성의 소멸을 예리하게 비판한다. <퍼펙트 블루>가 여전히 심리스릴러 애니메이션의 고전으로 남은 이유다. 당신이 몰랐던 진짜 미마, 그래도 사랑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