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먼 훗날 우리> 리뷰
이언과 켈리는 함께 할 수 없다. 사랑이 부족해서도, 마음이 변해서도 아니다. 어떤 관계는 끝나서가 아니라 더이상 같은 방향으로 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멈추기도 한다. 서로를 여전히 생각하고 사랑하지만 같은 자리에서 함께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사랑은 무력해진다. 2018년 넷플릭스 공개작 <먼 훗날 우리>는 이 사랑의 과정을 주동우와 정백연, 두배우의 얼굴을 통해 처절하리만치 아름답게 그려낸다. '만약에'라는 부질없는 가정과 이들의 사랑이 끝내 무채색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서글픈 이유를 따라간다.
2007년의 첫만남, 2018 먼 훗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베이징은 꿈의 도시다. 무엇이든 이룰 수 있고 무엇이든 꿈꿀 수 있는 곳. 살이가 고되고 힘들지라도 기회가 있으며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고양감을 준다. 샤오샤오와 젠칭에겐 그랬다. 반면, 고향은 젠칭이 나고 자랐지만 동시에 떠나고 싶은 곳이다. 그곳은 정체된 공간이며 춘절마다 돌아가는 여정은 자신의 비장한 포부와는 상반되는 비참한 처지를 확인하게 할 뿐이다. 샤오샤오에게 고향은 조금 더 쓸쓸한 곳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아무도 없는 빈집을 지켜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젠칭 덕분에 그의 아버지 가게에서 춘절을 보내며 그녀에게도 '함께하는 고향'의 의미가 생기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은 조건과 집안을 따지며 결혼하라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무뚝뚝한 겉모습 뒤로 아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배려가 숨어 있다. 불안정한 게임 개발보다는 가게를 이어받길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으나, 결국 자식이 바라는 삶을 살기를 묵묵히 응원한다. 그 온정은 샤오샤오에게도 번진다. "매년 오라"는 말과 "우리는 가족"이라는 말은 외로운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 온기였다.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지 않는다. 자신의 전부이자 아들을 키워낸 그 보금자리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고향이 될 수 없다"는 말은 공간의 이동이 아닌,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하다는 본질적인 외침이었을지도 모른다.
야오장 출신의 두 청춘. 샤오샤오는 성공을 위해 상경해 열심히 일을 한다. 그러면서도 베이징 출신의 '집 가진 남자'를 꿈꿨지만 실패를 거듭한다. 결국 조건이 아닌 마음이 와닿는 남자 젠칭을 선택한다. 반면 젠칭은 컴퓨터 전공자로서 게임 개발의 꿈을 품었지만, 현실은 지하철에서 불법 CD를 파는 신세다. 그런 그에게 샤오샤오는 현재의 비루한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게 만드는 동기이자, 지켜주고 싶은 유일한 존재다.
사랑도, 이별도, 꿈도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샤오샤오는 '집'이라는 조건이 없어도 젠칭 그 자체로 행복했지만, 젠칭은 사랑하기에 그녀에게 '집'을 사주고 싶어 했다. 이 간극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별은 젠칭에게 독한 성공의 동력이 되었고, 그는 마침내 베이징에 집을 마련한다. 하지만 샤오샤오가 원한 것은 '베이징의 집'이 아니라 '젠칭과 함께하는 집'이었다. 젠칭은 성공하면 샤오샤오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샤오샤오는 이미 그 과정에서 '우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샤오샤오와 젠칭은 '서로'를 두번째로 놓치게 되었다.
"그날 네가 떠나지 않았다면 달라졌을까?" 수많은 가정을 덧붙여도 이미 달라진 '우리'는 되돌릴 수 없다. 사랑이 아무리 거대해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게 될 때, 불안은 사랑을 갉아먹는다. 같은 속도로 걷지 못했던 두 사람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빛을 잃어 무채색이고, 과거는 가난했으나 서로가 있어 눈부시게 빛났던 거다. 게임 속 이언이 켈리를 찾지 못하면 세상이 무채색이 되듯, 젠칭은 그녀를 잃고 세상의 색을 잃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실을 동력 삼아 게임을 성공시키고 가정을 꾸렸다. 비록 아내가 있다는 설정이 관객에겐 안타까움을 주지만, 그것 또한 되돌릴 수 없는 '현실'임을 보여준다. 반면 샤오샤오는 홀로서기엔 성공했지만 여전히 가슴 한구석의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 젠칭의 시점으로 영화가 전개되기에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잘 살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서로를 뺀 완벽한 이름, 너와 나의 색채.
"이언은 영원히 켈리를 사랑해." 라는 말만큼 슬픈 말이 없었다.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두 사람이 너무나도 잘알고있기에 마침내 서로를 온전히 보내주었을 때, 무채색이었던 그들의 현재에 다시 색채가 생겨났다. 진정한 이별은 미련이 아닌 사랑으로 완성되는 것이었다. 함께하며 서로를 갉아먹던 유채색의 고통보다 떨어져서 서로를 추억하는 무채색의 애틋함이 낫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우리는 우여곡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대사처럼 살 수 없기에 인간은 더 처절하게 사랑하고 후회하는가 보다. 게임 시나리오를 연출에 녹여낸 감각적인 방식과 과거(유채색)와 현재(무채색)의 대비는 이 영화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든다. 2025년 12월 31일 개봉한 한국 리메이크작<만약에 우리>는 이 아련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