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학살의 신> 리뷰
우리는 어디까지 고결할 수 있을까. 2011년 작 <대학살의 신>은 우아한 대화의 장이 대학살의 전장이 되어버린 어느 거실을 비춘다. 아이들의 싸움을 해결하러 모인 네 명의 어른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교양’이라는 외피가 얼마나 쉽게 벗겨지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놀이터에서 벌어진 사소한 다툼으로 인해 부러진 아이의 앞니 두개를 두고 피해 아동과 가해 아동의 부모가 만난다. 당사자가 아닌 부모가 만나 화해를 목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 그들이 거실에 모였을 때, 대화는 예의와 관용으로 화해를 모색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양'이라는 얇은 가면은 금방 벗겨지고 만다. 정중한 사과와 세련된 중재안을 제시하던 두 부부는 서로의 바닥을 긁어내고 상처를 파헤치는 대학살의 전장으로 관객을 끌고 들어온다. 피 한 방울 튀지 않지만 말과 눈빛으로 상대를 난도질하는 이 소동극은 문명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야만성을 비추고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이 ‘대학살’이 고정된 대결 구도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아하고 고결한 모습이 전반부였다면 진흙탕에서 서로를 헐뜯는 모습이 후반부다. 이렇게 대비되는 모습과 진영이 끊임없이 변하면서 이 '대학살'극은 더욱 격렬해진다. 처음엔 가해자부모와 피해자 부모라는 명백한 대결구도로 시작하지만 위스키를 마신 이들의 감정이 격해지며 전선은 기묘하게 뒤섞이기 시작한다. 남편들은 아내들의 예민함에 은근한 동질감을 나누고, 아내들은 남편들의 무심함에 분노하며 성별에 따른 일시적 연대를 맺기도 한다. 부부라는 보호막을 벗어던지며 밑바닥 감정을 배설하기 시작하는 장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웃음이 터져나온다.
우스꽝스러운 코미디는 그들이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던 문명의 상징들이 무너질 때 극대화된다. 지적인 자부심을 표출하며 정치적 올바름을 전파하던 페넬로피의 고결함은 낸시의 '구토'가 거실 한복판을 오물투성이로 만드는 순간 산산조각난다. 인류애를 논하던 그녀가 도록에 묻은 이물질에 히스테리를 부리는 모습은 그 고결함의 실체가 얼마나 얇은 가식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평범하고 선량한 이웃 같던 마이클 역시 위스키를 마신 후 억눌러온 본성을 드러내며 아내의 강박과 이 상황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다.
이 난장판의 정점은 앨런이 권위의 상징처럼 붙들고 있던 휴대폰이 물속에 처박히는 순간이다. 휴대폰은 본래 소통을 위해 존재하지만, 극 중에서는 시종일관 대화를 끊고 상대를 무시하는 '불통의 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엘리트의 품격을 유지하던 앨런이 기계 한 대에 매달려 비명 섞인 패닉에 빠지는 모습은 처절하면서도 묘한 통쾌함을 선사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문명의 이기가 파괴되고 나서야 그들은 비로소 서로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게 된다. 감독은 이 우스꽝스러운 파괴 과정을 통해 우리가 믿고 있는 도덕적 윤리와 사회적 지위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보여주며 "진정한 소통은 가식적인 문명의 도구들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사실을 냉소적으로 드러낸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아 엉망이 된 상황에서 비로소 대화가 된다는 것이었다. 초반이 정중한 거절과 빈말로 서로의 진심을 숨겨왔다면 모든 가식이 벗겨진 후반부에는 "당신 정말 재수 없어"라는 직설적인 비난이 오가면서 네 사람은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가면이 찢겨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상처뿐이지만 그것은 가짜 화해보다는 훨씬 정직한 소통의 시작점이었다. 정직한 인간의 민낯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대화가 사실상 침묵에 가까웠음을 드러낸다.
영화의 끝은 다소 허무하다. 화해로 시작한 어른들의 대화는 파멸로 이른 채 끝이나지만 거실 밖 놀이터를 비추며 끝이 나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거실이라는 전장에서 '가해'와 '피해'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는 동안 정작 당사자인 아이들은 이미 화해한 채 천진난만하게 뛰놀고 있었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이 소동극은 무의미하고 공허한 자기만족이었던것이다. 어른들이 사과와 합의라는 아주 간단하지만 어려운 사회적인 기술을 발휘하는 동안 사건의 당사자인 아이들은 그런 기술이 없어도 화해가 쉬웠다. 어른들이 만든 도덕적 지옥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만든 무질서한 평화가 훨씬 고결하다는 사실이 이 코미디를 더욱 씁쓸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