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의 시선
공공조직에선 종종, 전문성보다 존재감이 권력이 된다.
회의보다 잡담이, 논리보다 목소리가,
성과보다 분위기가 더 큰 힘을 가진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옳은 말보다 큰 목소리가 통하는지,
왜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이 점점 말을 아끼게 되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이 조직이 진짜로 원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 ‘아무 일도 없는 하루’ 라는 걸.
깊은 상담보다 무사한 하루,
변화보다 민원 없는 기록이
더 큰 안전을 보장했다.
좋은 상담은 오히려 위험했다.
내담자의 감정이 기록되고,
기록은 질문을 낳고,
질문은 갈등을 만든다.
그래서 모두가 “적당히”를 배웠다.
너무 공감하지 말고, 너무 개입하지 말고,
그냥 말해준 만큼만 들어주자고.
그때부터 ‘전문가의 기준’은 조용히 입을 다물게 되었다.
목소리를 낮추고, 리스크를 피하는 게
이곳에서는 더 현명한 태도로 여겨졌다.
그 속에서 나는 자주 불쾌했다.
틀린 기준이 옳은 척하는 걸 봐야 했고,
체계보다 친밀이 힘을 가지는 걸 지켜봐야 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엔 하나의 문장이 자라났다.
“이곳은 옳은 사람보다 편한 사람이 이기는 곳이구나.”
이제는 그 사실을 원망하지 않는다.
대신 그 구조를 기록하기로 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왜 공공의 이름 아래에서
전문성이 점점 무력해지는지를.
나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보고 듣는다.
내가 공공조직에서 배운건, 아무 일도 없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휘말리지 않는다.
이제 나는 이 구조를
‘이해하려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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