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보다 무거웠던 건, 책임을 지고 싶었던 내 마음이었다.
주말에도, 명절에도, 나는 일했다.
메일이 오면 곧바로 회신했고,
보고서가 생기면 바로 처리했다.
내가 맡은 일은
팀 안에서 오롯이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대체 인력이 없었고,
있더라도 나만큼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래서 쉬는 날에도 일했고,
휴가 중에도 노트북을 챙겼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나는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언제부터였을까.
쉬는 것이 마치 무책임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건.
그러던 어느 날,
1주일짜리 휴가를 떠났다.
별일 없이 다녀올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하필 노트북 충전기를 깜빡했다.
메일을 확인할 수도,
파일을 열 수도 없었다.
그제야 제대로 된 ‘휴식’이 찾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자유가 편안하지 않았다.
불안했고, 조급했고,
회사에 괜히 미안했다.
‘지금쯤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
‘이 일, 내가 아니면 처리 못 할 텐데…’
‘복귀 후엔 분명 뭔가 터져 있을 거야.’
그렇게 휴가를 ‘감당’하다시피 보내고,
회사로 돌아왔다.
그러나 역시,
회사엔 아무 일도 없었다.
내가 빠진 자리는 누군가 채웠고,
보고서는 작성돼 있었고,
회의는 그대로 진행됐다.
아무도 날 원망하지 않았고,'
업무의 흐름은 매끄럽게 흘러가 있었다.
오히려 휴가를 잘 다녀왔냐는 안부 인사를 받았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가는구나.’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회사란 그런 곳이라는 것을.
누군가 빠지면 누군가 채우고,
일은 사람보다 오래간다는 걸.
그런데 그걸 몸으로 겪으니,
마음이 복잡했다.
허탈함, 안도감, 자책…
감정은 한데 섞여 묘한 무게로 남았다.
왜 나는 그렇게까지 일에 매달렸을까.
돌아보면,
나는 ‘책임감’이라는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안엔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었다.
나는 ‘필요한 사람’이고 싶었고,
내가 빠지면 큰일이 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야 조직 안에서 내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사실 그 자리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자리였고,
내가 아니어도 채워지는 자리였다.
회사는 ‘일’을 남기고,
사람은 ‘기억’을 남긴다.
그 기억이 꼭 누군가에게 남지 않더라도,
내 마음 안에 남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들인 진심과 공은
내 삶 안에, 내 마음 안에 분명히 남아 있으니까.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이란 뜻이 아니다.
그저, 모든 것을 나 혼자 감당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제는
쉬는 날엔 쉰다.
회사는 잘 돌아가고,
나는 나에게 돌아와, 나의 시간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