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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May 04. 2023

곰의 아름다운 선택

그림책으로 글쓰기


'결정장애'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성격을 표현하는 신조어입니다. 의학적으로 '질병'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쉽사리 결정을 못해 어려움을 겪습니다. 누가 대신 해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 부담은 천근만근입니다.


결정장애를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햄릿입니다. 햄릿은 자신의 부왕을 죽인 숙부를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해, 결국 사랑하는 연인과 자신이 희생의 제물이 됩니다. 우유부단이 부른 불행한 비극입니다.


일상에서야 햄릿과 같은 비극을 불러오지는 않겠지만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내리지 못하는 사람의 심정은 햄릿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부담스럽습니다. 결정해야 할 사안이 중차대할수록 그 부담감은 가중됩니다. 그건 이렇게 해야 해,라고 속시원히 말해 줄 사람이 옆에 있다면 모르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이만저만 답답한 노릇이 아닙니다.


누군가 그런 자신을 보고 “혹시 결정장애 아니에요?”라고 묻기라도 하면 그날 기분은 꽝입니다. 가뜩이나 애가 타서 괴로운데 불까지 지르면 왠지 모를 짜증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자신의 약점이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지기도 합니다. 이렇듯 선택과 결정은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얄미운 존재입니다.


강경수 작가의 그림책 <꽃을 선물할게>도 이와 유사한 주제를 다룹니다. 한 생명을 두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흥미롭게 그려집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수채화 그림이 주는 부드러운 색감과 다르게 내용은 진지하고 심각합니다.


무당벌레가 거미줄에 걸려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마침 곰이 옆으로 지나가자 무당벌레는 자신을 구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곰은 냉정한 목소리로 이성적으로 대답합니다. 너를 구해주면 거미가 굶게 되니 자연의 이치를 어기게 되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곰이 또다시 지나가자 무당벌레는 간절히 부탁합니다. 하지만 곰은 똑같은 이유로 거부합니다. 무당벌레는 곰의 완고한 태도에 희망을 접습니다. 체념한 채 거미의 먹이가 될 순간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요, 곰과 무당벌레는 또다시 조우합니다. 세 번째 만남입니다. 무당벌레는 용기를 내어 전과 같이 자신을 구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자 곰은 그럴 수 없다며 그 이유로 거미는 성가신 모기를 잡아 주는 좋은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곰은 무당벌레의 부탁에 일관적이고 확고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결정장애 그림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사안에 한해선 논리적인 데다 자신의 주장을 무를 기색이 없어 보입니다.   

 

이때 무당벌레가 곰에게 묻습니다. 꽃을 좋아하냐고. 곰은 꽃을 싫어하는 동물이 어디 있냐며 반문합니다.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무당벌레가 입을 엽니다. 자신은 꽃이 피는 걸 방해하는 진딧물 잡는 일을 한다고. 곰이 말한 거미의 효용가치에 견주어 자신의 효용가치를 얘기합니다.    


이 말을 들은 곰은 고민에 빠집니다. 성가신 모기를 잡는 거미 편을 들 것인가, 꽃피는 걸 방해하는 진딧물을 잡는 무당벌레를 구할 것인가? 곰은 생각지 않은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림책은 곰의 결정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다만 거미의 짜증 섞인 외침과 함께 넓게 펼쳐진 마지막 페이지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꽃을 감상하는 두 마리의 곰과 함께요. 곰의 결정을 미루어 짐작케 하는  반전 팁입니다.


곰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는 곰의 자유의지입니다. 거미의 입장을 들어주든 무당벌레 입장을 들어주든 다 의미 있는 선택입니다. 생명이라는 측면에서는 다 명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곰은 무당벌레의 손을 들어줍니다. 곰이 중요하게 여긴 가치는 무엇일까요? 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곰의 성숙한 의식에 존경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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