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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Jan 17. 2023

현실과 다투지 말자

ㅡ자기주도적 삶과  자기수용의 지혜


영국인들의 인도 식민지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영국인들이 아름답고 멋진 골프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생합니다. 그 지역에 사는 원숭이들이 사람들이 골프를 칠 때마다 필드 안으로 들어오는 겁니다. 원숭이들은 골퍼가 공을 치면 재빨리 달려들어 공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는 엉뚱한 곳에 던지고는 달아나기 일쑤였지요.


그렇게 되자 골프 경기는 지연되거나 무효화되었고, 그 일로 다투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매번 원점에서 경기를 새로이 시작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골프장 운영자는 원숭이의 출몰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합니다. 울타리를 설치하거나 바나나 등으로 유인하여 다른 숲으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들은 울타리를 쉽게 넘어왔고, 허기가 채워지면 골프장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골프장 운영자는 총소리를 내어 쫓아보기도 하고 덫을 놓아 생포해보기도 했지만 모두 통하지 않았습니다. 원숭이들은 계속하여 나타나 전보다 더 날뛰며 공을 던지고 비명을 질러댔지요.


골머리를 앓던 영국인들은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특별한 규칙을 만든 겁니다. 그 규칙이란 원숭이가 공을 떨어트린 자리에서 골프 경기를 시작하는 것이지요. 원숭이들의 방해로 경기를 포기하기보다는 이미 일어난 상황을 인정하고 원숭이가 공을 떨어트린 곳에서 경기를 재개하기로 한 겁니다.  


이 새로운 놀이규칙은 놀라운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골프장을 찾는 사람들은 전보다 재미있는 골프를 치게 되었고, 원숭이 덕분에 생각지 않게 행운을 잡는 사람도 나타나면서 골프 치는 색다른 묘미를 경험하게 된 겁니다. 이 얘기는 류시화 시인이 엮은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에 나오는 인도우화 중 한 편입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일을 겪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닥쳤지, 라며 어이없는 상황에 한숨 쉬고 울분을 토하기도 합니다. 평소에 생각지 않은 일이 벌어졌으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건 당연한 노릇입니다. 어떤 이는 ‘신은 꺼져!’라고 소리치며 부정하기도 합니다.


그런 일들은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실연, 실직, 교통사고, 죽음 같은 것이 좋은 예입니다.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중병에 걸렸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는 일도 그중 하나일 겁니다. 제법 자기관리를 잘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고통은 더 심하겠지요. 누구든 몹쓸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으면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이렇듯 우리네 삶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골프장 원숭이들이 출몰합니다. 억울한 건 우리의 실수와 상관없이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정말이지 손쓰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으면 하늘이 노래집니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습니다. 분노하거나 체념하는 일이 전부랄까요.  그런데 이 방법들은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곱씹을수록 생각 속에 갇히게 되니까요.


히브리어로 병은 ‘마할라(mahaIa)’라고 합니다. 이 말의 원래 뜻은 ‘원을 그리다’ ‘원을 만들다’입니다. 즉 병은 원을 그린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병을 앓는 사람들을 보면 생각의 원에 갇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 속에서 원을 점점 깊고 두텁게, 크게 그려 나갑니다. 그럴수록 병은 낫기는커녕 더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골프장 운영자들이 보인 태도는 지혜롭습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써봤지만, 도무지 자연재해와 같은 원숭이 떼의 골프장 출몰을 막을 길이 없었죠. 화가 나 원숭이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겁니다. 만약 이들이 원숭이들과 계속 싸우려고 했다면 그들 역시 스트레스로 신경쇠약에 걸렸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지를 발휘합니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원숭이들에게 저항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러자마자 놀랍게도 새롭고 재미난 게임의 규칙을 발견합니다. 이 규칙은 원숭이들을 물리쳐야 대상이 아닌 게임에 참여시키는 방식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게임의 룰을 만든 것이지요.


우리의 통제 영역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는 늘 발생합니다. 어떤 사건은 불가항력적이기도 하지요. 이런 사건들이 일어날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 어떻게 관계 맺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미 일어난 현실과 다툴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수용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기꺼이 현실을 수용하면서 즐겁고 새로운 룰을 만들 것인가? 우리의 삶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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