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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Feb 22. 2023

별을 훔친 사내의 쓸쓸한 이야기

수행이 필요해


간혹 별을 떠올리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낭만적인 기분에 젖게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때는 왜 그렇게 하늘에 별이 반짝이고,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사라지던 유성은 왜 그리 많았던가요. 별 볼일조차 없는 도시에 살게 되면서 이제 이런 기억은 빛바랜 추억이 되었지만 여전히 별은 과거로 회귀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작가는 별을 모르고 사는 삶은 세상의 아름다움의 반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는데 꽤 일리가 있는 말이란 생각이 듭니다.      


만약에 밤하늘에서 별이 한두 개쯤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변괴를 알아차릴 사람은 주구장창 하늘만 바라보는 천문학자 외에는 없겠지만 이런 가당치않은 상상을 글로 풀어낸 사람이 있습니다. 시인 파블로 네루다입니다. 그는 별을 훔친 사내의 이야기를 시로 썼는데,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의 상상 속에서는 아름답고도 쓸쓸하게 펼쳐집니다.     


그림책《안녕, 나의 별》은 바로 파블로 네루다의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엘레나 오드리오솔라가 그린 작품입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별을 훔친 사내가 차마 별을 감당하지 못해 포기하고 마는 이야기의 결말은 우리에게 소유와 행복의 관계,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전해줍니다.  

 

간절히 별을 원하던 사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내는 별 하나를 밤하늘에서 조심스레 떼어내 집으로 가져옵니다. 그러는 사이 허리춤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고, 벌을 받는 느낌마저 듭니다. 겁이 난 사내는 별을 침대 밑에 숨겨보지만 별빛은 천장과 지붕을 뚫고 퍼져 나갑니다. 연이어 이상한 일도 벌어지는데, 갑자기 집안의 물건들이 낯설어지고 생활 자체가 흔들립니다. 게다가 사내는 셈하는 법, 밥을 먹는 일마저 잊어버립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별빛에 이끌려 사내의 집으로 모여듭니다. 더 이상 별을 가지고 있기가 힘들다고 판단한 사내는 별을 싸 가지고 집을 나옵니다. 맑은 초록빛 강에 다다르자 사내는  차가운 별을 놓아줍니다. 별은 이내 물속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사내는 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아쉬운 마음으로 별을 바라봅니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메시지는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시인은 많고 많은 소재 중에서 왜 별을 골랐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존재, 동경하는 존재로서 별의 의미는 뭘까요. 이 보통의 사내가 간절히 원했다는 걸 보면 별은 사내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원하는 욕망의 투사로 읽힙니다. 누군가에게 별은 부나 명예, 권력, 사랑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별을 훔친 것까지는 좋았으나 감당을 하지 못한다는 데 있지요. 그 이유가 뭘까요. 그리고 사내가 셈하는 법, 밥 먹는 일까지 잊어버리게 되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자신의 능력 이상 가는 대상을 소유한 데 따른 부작용, 또는 한계일까요?


정확한 비유인지는 모르지만 로또 복권 당첨으로 갑자기 횡재를 한 사람들의 말로가 썩 행복하지 않다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건 때로 재앙이 되기도 하니까요.  


밤하늘의 별은 만인을 평등하게 비춥니다. 그렇기에 별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따라서 별은 누군가가 사사로이 취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할 방법도 없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억지를 부려 이를 취하려 한다면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 되겠지요.


부나 명예, 권력, 사랑도 이와 똑같지 않을까요. 모두가 바란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설령 소유했다고 해도 만족감은 오래가지 못할 테니까요. 운이 좋아 만족할 만큼 다 가졌다 해도 이를 오랫동안 유지하기란 또 어려운 법입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 더 그럴 겁니다. 그림책 제목처럼 언젠가는, 누구도 예외 없이, 그것들과 안녕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고려 후기의 문인인 이곡이 쓴 한문수필 ‘차마설’의 요점은 이 세상은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게 없고, 세상의 부귀와 권세도 본래부터 내 소유물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빌린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어리석은 사람들이 이를 망각하고 자기 소유인 양 착각하여 산다는 게 이곡의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이곡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같을까요 다를까요? 불행하게도 소유하고 움켜쥐려는 사람의 본성은 다를 바 없을 것 같습니다. 이곡이 저승에서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떤 마음일까요. 별을 훔친 사내의 이야기에서 한 수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소유는 행복으로 가는 열쇠가 아니라 불행으로 가는 열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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