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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Jan 16. 2023

레몬이 알려준 세 가지 인생법칙

ㅡ내 삶이 경전이다

고양이 레몬이가 우리 집에 온 지 일 년이 지났습니다. 길고양이에서 흔한 말로 가족이 되었습니다. 귀염둥이이고 기쁨의 원천이지요. 조금만 눈에 띄지 않아도 “레몬이 어디 있어?” 라고 묻는 게 가족의 일상이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물론 때때로 성가실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귀여움과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있습니다.


여전히 녀석은 전과 같이 놀아달라고 떼를 쓰고 저녁이면 특유의 활동성이 살아나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기도 합니다. 탁월한 점프와 기민함으로 집안의 고지란 고지는 다 정복했음에도 호시탐탐 올라갈 곳이 없나 두리번거리고, 그게 무엇이 됐든 박박 긁는 것도 달라지지 않았지요. 대신 정도나 수위는 조금 낮아졌습니다. 다행이지요.


크게 달라진 변화는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는 겁니다. 집안 구석구석에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어놓고 수시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되풀이하지요. 어느 때는 하루 종일 종적을 감추기도 합니다. 대략 서너 군데 되는 것 같은데 겉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는 은밀한 공간입니다. 레몬아, 하고 부르면 그제야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게 어슬렁거리며 눈을 비비며 모습을 드러냅니다. 고양이가 나이 들면 으레 그런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녀석도 그 경향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레몬이를 키우면서 직, 간접으로 배운 게 참 많습니다. 먼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정공법 외에 다른 방법도 있다는 겁니다. 레몬이는 밥통에 올라가는 게 취미라고 할 정도로 자주 올라갑니다. 밥통을 감싸는 따뜻한 온기를 편안하게 여기는 듯합니다. 문제는 밥 때가 되어 밥통에서 밥을 푸려고 할 때입니다. 녀석이 자기 자리인 양 버티고 앉아 비켜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번쩍 들어 올려 옮기면 될 터이지만, 그러려고 들면 날카로운 앞발을 좌우로 휘두릅니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 싫어’ 라는 의사표시입니다. 그럴 때마다 난감합니다.


그래서 희생을 감수하고 강제로 들어 올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녀석을 들어 올려 내려놓는 정공법 대신 다른 방법을 쓰는 겁니다.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북어트릿’이 들어있는 통을 흔들어 유인하는 방법으로 바꿨습니다. 그러면 녀석은 완고한 태도를 바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쏜살같이 뛰어내려옵니다. 이 방식은 백발백중, 매우 효과적입니다. 살다보면 정해진 원칙이 있지요. 그러나 상황에 따라, 마음먹기에 따라 다양한 선택지가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다음은  원하는 목표를 정하면 그것을 이룰 때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녀석은 ‘북어트릿’을 좋아합니다. 밥보다 더 자주 찾는 간식이지요. 녀석은 가족 중 누가 되었든 제일 먼저 일어난 사람에게 소리 없이 다가갑니다. 그리고는 징그러울 정도로 온몸으로 다리를 휘감으며 냉장고를 향해 성큼성큼 앞서 걸어갑니다. 자신의 뜻대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연거푸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끝내 자신의 의사를 관철합니다. 간절한 눈빛으로 ‘북어 트릿’이 있는 냉장고를 올려다보고, 그 자리에서 연좌시위(?)를 벌입니다. 때때로 드러눕기도 하며 지나가는 이를 발로 감싸 안기로 합니다.


이쯤 되면 가족 중 누군가가 어쩔 수 없이 녀석에게 항복하고 냉장고 문을 엽니다. 그러면 녀석은 2미터 떨어진 지정된 자리에 먼저 가서  기다립니다. ‘북어 트릿’을 던지라는 것이지요. 이렇듯 녀석은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자원을 동원할 줄 압니다. 집요하기도 하지요. 뭔가 성취하려 한다면 녀석처럼 하면 됩니다. 주의와 집중, 집요함은 필수입니다.


마지막은 아무리 친한 사이더라도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원칙을 지키는 겁니다. 녀석은 가족 중 누구하고도 친하게 지낼 정도로 친화력이 짱입니다. 집사인 딸아이를 유독 따르고 애정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가족을 차별하지는 않지요. 담요를 덮고 앉아 있으면 자신의 자리인 냥 가만히 올라와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면 더없이 평화롭고 순한 양입니다.


그런데 녀석에게는 이런 모습만 있는 게 아닙니다. 양 같은 모습이 녀석의 전부가 아니란 얘기입니다. 차갑게 대할 때는 시베리아 동토 저리가라입니다. 귀엽다고 머리와 등을 쓰다듬으면 골골 소리를 내며 잠들었다가도 갑자기 돌변하여 손을 물기도 합니다. 그런 행동을 보는 순간 덜컥 겁이 나고, 심지어 깊은 배신감까지 느끼지요. 물론 녀석이 고약한 의도를 가지고 행동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녀석의 냉정한 태도는 지금까지 보낸 제 애정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하기엔 충분합니다.


또 녀석이 뽀뽀하자고 하면 기분이 좋을 땐 순순히 코를 앞으로 내밉니다. 그럴 때마다 녀석에게 존재를 인정(?)받았다는 마음에 가족 앞에서 우쭐거리게 됩니다. 그런데 녀석이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거부당하기 일쑤입니다. 머리를 아래로 숙이며 너랑 뽀뽀하고 싶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표시합니다. 그간의 정을 얘기하며 여러 차례 인정에 호소해보지만 녀석은 흔들리는 법이 없습니다. 굳건한 바위가 따로 없지요. 이럴 땐 일관되고 한결같지 않은 모습에 얄밉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건 다분히 저의 관념일 테니 녀석과는 상관없는 일이겠지요.


녀석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생래적으로 터득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은 제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아무리 친하다는 부모와 자녀, 선생과 제자, 사람과 사람 사이라 하더라도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건 필요한 법이니까요.


길고양이에서 이젠 어엿한 반려묘가 된 레몬. 녀석과 지내며 깨우치게 되는 지혜는 저에겐 큰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녀석은 제가 자신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이 글을 읽는다면 뭐라고 할지 궁금합니다. 녀석과 한 집에서 살을 맞대며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삶이 고맙고 반갑고 기대가 됩니다.


#김기섭의수행이필요해

#인생법칙

#고양이_레몬

#정공법#주의집중#불가근불가원

#명상인류를위하여

#MBHT인문치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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