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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Apr 16. 2024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일

지금, 여기


옛날 인도에 끼사고타미(Kisāgotami)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나 재산 많은 남편에게 시집갔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한껏 받으며 화목한 가정을 꾸렸고, 자식까지 생기자 삶이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애지중지하던 아들이 걸음마를 뗄 무렵 병에 걸려 죽고 맙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은 그녀의 삶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녀는 애통해하며 식어가는 자식의 몸을 끌어안고 울부짖습니다.


아들의 죽음이 믿기지 않은 그녀는 사람을 붙들고 아들을 살려달라고 빌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아이를 보고는 이미 죽었으니 단념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되살릴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고 사방을 돌아다녔습니다. 거리를 헤매는 그녀는 미친 여자와 흡사했습니다.   


어느 날 붓다의 제자가 안타까운 마음에 그녀를 불러 세우고 말했습니다.


“누이여, 그 아이의 병은 무겁다. 세간의 의사로는 어림없다. 다만 한 사람, 여기에 그 병을 고치실 분이 계신다. 그는 지금 다행히도 기원정사에 머무르고 계신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녀는 얼굴이 환해져서 기원정사로 달려갔습니다. 바로 붓다 앞에 엎드린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붓다는 조용하면서도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여인이여, 이 아이의 병은 고치기 쉽다. 겨자씨를 대여섯 알을 먹이면 된다. 거리로 나가 얻어 오너라.”


붓다는 겨자씨를 구해 오면 아들을 살려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다만 겨자씨는 단 한 번도 죽음을 겪지 않은 집안에서 얻어 와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죠.


“여인이여, 겨자씨는 아직 한 번도 장례식을 올린 일이 없는 집, 다시 말해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에서 구해 와야 하느니라.”


그녀는 아들을 살리고픈 마음에 붓다의 말을 마음 깊이 새기지 못했습니다. 거리로 뛰어나가자마자 대문을 두드리며 겨자씨를 구걸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기꺼이 주겠노라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다음 말, 즉 집안에 죽은 사람이 있었느냐고 묻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불운하게도 죽은 사람이 없다고 말한 집은 하나도 없었지요. 성안을 구석구석 뒤지며 모든 집을 두드려 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단 한 번도 죽음을 겪지 않은 집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요.


이상히 여긴 그녀는 곧 연유를 알게 됩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치고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귀여운 자식뿐 아니라 소중한 부모와 남편,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죽는다는 것, 자신 또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왜 자신이 그 흔한 겨자씨를 얻지 못했는지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녀는 며칠을 품고 다니던 아들을 땅에 묻고 기원정사로 붓다를 찾아갑니다. 붓다의 발아래 엎드린 그녀는 하염없이 웁니다. 그녀의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려 붓다가 입을 뗍니다.   


“덧없이 흐르고 변한다는 것

한 집안, 한 마을, 한 나라만의 일 아니네.

목숨 가진 중생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반드시 꼭 겪어야만 하는 일”


그 후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영원한 것은 없다는 무상의 이치를 깨치고, 출가하여 비구니가 됩니다. 나중에는 깊은 수행 끝에 아라한의 경지에 오릅니다.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끝없는 물음표와도 같습니다. 누구도 가 본 적이 없는 미지의 세계입니다. 사람들이 죽음이, 죽은 뒤의 세계가 이렇다 저렇다 말해도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고, 우리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끼사고타미 이야기는 삶과 죽음을 어떻게 봐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러줍니다. 무상함의 이치를 거울삼으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임옥당 시인은 ‘무덤들 사이를 거닐며’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죽음과 그렇게 가까운 것을 보는 순간 / 즉시로 나는 내 생 안에서 자유로워진다.”


시인은 죽음이 가깝다는 것을 안다면 역설적으로 삶은 자유를 얻는다고 말합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죽음이 주는 자유를 알 때 삶을 삶답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숙고명상

우리는 죽은 뒤의 세계에 관심이 적은 편이다. 아무래도 죽음이 주는 이미지가 어둡고 꺼려지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회피 전략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죽음을,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려는 노력이 더 실용적이고 바른 태도에 가깝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삶은 좀 더 자유롭고 소중해진다. 죽음은 곧 삶이다. 당신은 죽음에 대해, 죽은 이후의 세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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