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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Mar 02. 2023

당신은 언제 노래를 불러 보았나요?

ㅡ수행이 필요해


며칠 전 열 명의 필자들 글을 모은 책 한 권이 나왔습니다. 비매품이지만 1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 글을 쓴 필자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묶은 글모음집입니다. 3년 가까이 매일같이 해오던 메일링을 중단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마침표와 같은 의식이면서 그간 수고한 필자들을 위한 기념품 같은 선물입니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책이 나온 걸 기념하여 필자와 독자들의 조촐한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필자의 한 명으로 기쁜 마음으로 참석했습니다. 모임은 평일 저녁 7시였고, 그 시간 전후로 기타와 젬베가 준비되었고,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막간 음악회가 펼쳐졌습니다.


먼저 두 사람이 나와 분위기를 돋웠습니다. 한 사람은 기타, 한 사람은 젬베를 연주하며 정태춘, 박은옥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따로 화음을 맞춘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호흡이 잘 맞았고 귀를 기분 좋게 했습니다.


이어서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과 싱얼롱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이런 노래가 있었나 싶을 정도의 노래였지만 40~50대라면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였습니다. 가수 임지훈이 노래한 ‘회상’이란 곡이었습니다. 익히 많이 들었던 터라 즐겁게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모임을 진행하는 측에서 악보를 준비해 와 어렵지 않게 따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노래를 부르니 분위기가 부드러워졌고 거리감도 좁혀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노래를 듣고, 아는 노래를 함께 불러본다는 것이 만들어낸 어울림 효과 같았습니다. 같이 노래 부르는 단순한 행위가 처음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데 힘이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노래를 부른다는 의미를 알게 해 준 사건이 한 번 더 있었습니다. 제가 진행하는 그림책마음챙김 수업 때였습니다. 이 수업에서는 그림책을 읽고 난 후 서로의 느낌과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때는 주인공과 등장인물, 또 그들의 말과 행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그날도 그림책의 주인공이 보인 행위를 가지고 얘기를 나눴습니다. 아주 특이한 캐릭터 소유자였습니다. 그는(사실은 고양이입니다) 원치 않은 일이 벌어질 때마다 성내고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그래서 기분이 나빴을 법한 일을 있는 그대로 수용합니다. 그는 그 수용의 의미로 노래를 부릅니다.


보통의 경우엔 기분이 잡치고 감정이 상하면 노래가 나오지 않겠지만 이 남다른 주인공은 그 상황을 인정하며 또 좋아한다는 뜻으로 노래를 지어 부릅니다. 조금 과하다 싶지만 한편으로 재미있고 웃음이 나왔죠.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일어난 사건을 붙잡지 않는다면, 온전히 지금 이 순간과 접촉할 수 있다면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마음을 빼앗기는 대신 지금 이 순간을 지킬 수 있다면 전혀 문제될 게 없겠단 생각이 들었죠.  물론 보통의 경지는 아닙니다.


그 시간 이후 노래를 부른다는 건 뭘까,를 생각하게 되었고, 우리는 언제 노래를 부를까,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로 차츰 생각이 번져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제 경우를 떠올려보았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 또한 기분이 나쁘거나 감정이 상할 때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습니다. 기분이 나지 않는데 노래를 부를 순 없었으니까요. 예외적으로 오랜 전에 시위하면서 분노의 감정을 담아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노래를 부르면서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런 적을 빼고 노래는 절로 신명이 날 때 부르거나 흥얼거렸던 것 같습니다.  


혼자 노래를 부른 적도 있지만 대부분 모임에서 같이 불렀습니다. 흥을 돋우고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노래를 불렀던 적이 많았습니다. 노래를 부를 때는 기분이 업되기 일쑤였지요. 누군가의 눈물을 빼기 위해, 기분을 망치기 위해 노래를 불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기분이 좋아서, 기분을 바꾸기 위해 노래를 불렀던 경험이 더 많습니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온전히 현재에 머물 때 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 자리에 자신으로 존재할 때 노래와 하나가 될 수 있는 거겠죠? 그림책 주인공이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기꺼이 오케이 하며 노래를 불렀다는 건 현재를 살기로 작정했다는 의미인 셈입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 사이에서도 종종 우울증 환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때 그 부족의 주치의인 주술사, 즉 샤먼은 우울증 환자에게 곧바로 약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고 하지요.


당신은 언제 춤을 춰봤는가?

당신은 언제 노래를 불러보았는가?


이 질문은 우울증과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연관관계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춤추고 노래를 부를 때는 현재와 접촉하며 살지만 그렇지 않다면 과거나 미래에 갇혀 살고 있다는 의미로 본 겁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이 많고, 현재와 접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때문에 증상이 더 심해지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디언 주술사는 우울증의 원인을 잘 짚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날 이후 하루에 한 번 반드시 노래를 부르리라 작정을 했습니다. 노래를 부른다는 건 지금 여기의 현존을 의미하니까요. 그 시간만큼은 어떤 부정적 기운도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오늘도 노래 한 곡을 멋들어지게 불렀습니다.


당신은 언제 노래를 불러 보았나요?


#노래

#현존

#수행이필요해

#명상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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