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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Mar 15. 2023

모모는 방랑자가 아니라 평화주의자이다

ㅡ수행이 필요해


경청​ / 정현종

불행의 대부분은 /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비극의 대부분은 /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아, 오늘처럼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대통령이든 신(神)이든 / 어른이든 애이든 / 아저씨든 아줌마든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

모든 귀가 막혀 있어 / 우리의 행성은 캄캄하고

기가 막혀 / 죽어가고 있는 듯.

그게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제 이를 닦는 소리라고 하더라도,

그걸 경청할 때 / 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

한 고요 속에 / 세계는 행여나

한 송이 꽃 필 듯.



종종 기업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휴먼 스킬 강의를 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제때에 프로젝트를 완수할 것인가를 늘 고민합니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최고의 변수는 사람입니다. 조직원들이 제 역할을 다해준다면 그들이 원하는 ‘성공’, ‘완수’라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원하는 마침표와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조직원과의 협업체제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는 중요한 관건입니다. 그러려면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시너지를 만들어 가야 하는데 그게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됩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따릅니다.  


조직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야 프로젝트를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압니다. 하지만 매번 성공보다 실패 횟수가 더 많고 잦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듣는 것보다는 말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참을성 있게 상대의 말을 들으면 좋겠지만 자기 하고픈 말을 하기도 바쁩니다. 독재자처럼 말을 독점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오래전 공자가 살았던 시대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공자는 “말을 배우는 데는 2년밖에 안 걸리지만 듣기를 배우는 데는 60년이 걸린다”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듣기는 말하기보다 까다롭고 힘든 난제입니다. 듣기 훈련이 되어 있지 않는 한 온전한 소통이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깨어있는 시간 중 가장 많이 하는 활동이 듣기입니다. 메라비언 법칙에 따르면 듣기는  쓰기(9%), 읽기(16%), 말하기(30%)에 비해 무려 45%나 됩니다. 이 말인즉슨 듣기를 잘 하면 일상에서의 소통이 원활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미카엘 엔데가 지은 소설 《모모》의 주인공 모모는 남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신통력을 부리거나 초월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모가 잘하는 것은 동네 사람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는 겁니다. 어느 날부터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모를 찾아와 얘기를 털어놓게 된 비결입니다.  


모모가 사람들의 말을 듣는 방식은 간단하지만 적극적인 방식입니다. 일단 마을사람들이 찾아오면 따뜻하게 맞이합니다. 그들이 누구든 환대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어떤 얘기라도 듣겠다는 사인을 주어, 마을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격의 없는 대화를 하도록 해줍니다.


그런 다음 모모는 그들의 얘기를 온 마음으로 듣습니다. 듣는 것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여 듣는 겁니다.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세심하게 살피며 반응해 줍니다. 요즘 말로 하면 공감적 경청, 적극적 경청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놀랄만한 기적(?)이 종종 일어납니다. 따뜻하게 맞이하고 온 마음으로 들어주었을 뿐인데, 마을사람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치유가 일어납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고, 수줍음이 많던 사람은 대담한 사람이 됩니다. 불행한 사람, 억눌린 사람은 마음이 밝아지고 희망을 갖습니다. 모모는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기만 했을 뿐인데 마을사람들은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길을 찾아갑니다.

  

모모의 듣기 방식은 초대하고, 주의 깊게 들어주고, 피드백하는 3단계 공감적 경청과 닮았습니다. 어린 소녀 모모가 이걸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그들의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방식대로 듣기를 실천함으로써 마을사람들을 변화시킨 것만은 분명합니다.

 

정현종 시인은 <경청> 이란 시에서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듣기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불행과 비극을 맞았다고 개탄합니다. 모두들 귀가 막히는 바람에 기가 막혀 이 행성마저 죽어가고 있다고 애통해합니다. 듣기만 잘해도 이렇게까지 되지 않을 거라며 경청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경청이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노래합니다. 그가 전하는 희망은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내 안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러한 경청의 결과로 시인은 ‘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 한 고요 속에’ 머물게 되고, 마침내 ‘세계는 행여나 한 송이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경청을 통해 내 안의 꽃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꽃도 피울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명상은 질주하는 삶의 속도를 늦추고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내 안의 목소리에 안테나를 세우는 것이지요. 그것은 작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삶을 균형 있게 만드는 일이면서, 동시에 주도적인 삶으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명상을 통해 내 안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되고,  시인의 바람대로 우리 사는 세계를 꽃으로 피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꽃은 우리가 꿈꾸는 삶, 우리가 염원하는 평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가 명상인류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명상은 경청의 힘을 기릅니다. 경청의 달인 모모는 방랑자가 아니라 이 세상을 ‘좋게’ 만드는 평화주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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