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
필리핀의 고산지대에 사는 한 부족에게는 ‘싫어하다’나 ‘미워하다’라는 말이 없다고 합니다. 또 어떤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에게는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단어가 없으니 그 감정이나 행위도 삶 속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말이 곧 생각이 되고, 생각은 믿음이 되며, 믿음은 다시 삶을 빚어내기 때문입니다.
황인숙 시인의 시 〈말의 힘〉은 이 단순한 진실을 보여줍니다.
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 보자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이 구절을 소리 내어 읽으면 마음이 한결 환해지고 밝아집니다. ‘파랗다’라는 단어는 하늘의 푸른빛을 떠올리게 하고, ‘후련하다’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의 가벼움을 불러옵니다. 시인은 언어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감각을 깨우고 기분을 바꾸는 힘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껴보라고 권하는 듯합니다.
말의 힘은 실험에서도 확인됩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노인’을 연상시키는 단어로 문장을 만들게 하자, 그들의 걸음걸이는 실험실에 들어올 때보다 눈에 띄게 느려졌습니다. 반대로 ‘청년’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로 문장을 만든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 빨라졌지요. 몇 개의 단어가 몸의 리듬을 바꿔놓은 셈입니다.
이렇듯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삶의 태도이자, 몸의 움직임까지 바꿉니다. 우리가 어떤 말을 쓸 때, 그 말을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은 우리 자신입니다. 이 사실을 떠올린다면 언어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말》은 이러한 메시지를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따뜻하게 들려줍니다. 책 속 주인공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말이 무엇인지 찾아 나섭니다. 그림책에는 ‘사랑해’, ‘고마워’,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같은 말들이 차례로 등장하지요.
“사랑해!”라고 말하면
가슴이 두근두근, 얼굴이 빨개져요.
괜히 기분이 좋아요.
자꾸 말하고 싶어요.
자꾸자꾸 듣고 싶어요.
사랑의 말이 어떻게 마음을 뛰게 하고,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지 이 짧은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집니다. ‘고마워’라는 말은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을 선물로 바꾸고, ‘괜찮아’라는 말은 실수 앞에서 움츠러든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은 주저하는 발걸음에 조용한 용기를 보탭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힘센 말’은 거창하거나 특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무심코 주고받는 짧은 말들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 말들은 사람을 살리고, 관계를 지탱하는 힘을 줍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에게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꼭 듣고 싶었던 말이 하나쯤 있었을 겁니다.
“너는 소중해.”
“있는 그대로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
누군가는 이런 말을 충분히 들으며 자랐고, 누군가는 한 번도 듣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건너왔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공감의 뿌리가 부모라는 말을 떠올리면, 어린 시절에 건네진 말 한마디가 얼마나 깊게 마음에 남을지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하루, 당신이 가장 많이 쓴 말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스스로에게는 어떤 말을 가장 자주 들려주었나요. 말은 바람처럼 흘러가지만, 동시에 씨앗처럼 오래, 깊게 남습니다. 오늘만큼은 말의 힘을 믿고, 자신과 타인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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