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라도 좋은 점을 상대에게서 찾다 보면 그들의 잠재력과 아름다움도 볼 수 있다. 못됐다거나 악하다는 꼬리표, 부정적 이미지에 얽매이는 대신 그들이 지닌 인간미를 볼 수 있다. 상대가 지닌 긍정의 특징을 봄으로써 우리는 평화와 협력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이건 내가 (마르틴 루터) 킹에게서 배운 여러 교훈 중 하나다.”(28쪽)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꼬리표를 붙입니다. 좋은 꼬리표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정적인 꼬리표를 더 많이 붙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수 없다”라고 퉁치곤 하지요.
긍정적인 꼬리표든 부정적인 꼬리표든 모두 낙인 효과를 불러옵니다. 낙인을 찍으면 그 사람이 가진 다른 점들은 간단히 생략되어 버립니다. 애써 상대의 좋은 점을 찾아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지요. 그 누군가는 낙인이 찍히는 동시에 구제불능이 돼 버립니다. 무시무시한 폭력입니다.
그런데 꼬리표를 붙이거나 낙인을 찍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있습니다. 싫거나 미운 사람에게서 좋은 점을 찾으라는 과제입니다. 꼴 보기 싫은 사람, 우리를 곤란한 지경에 빠트리는 사람에게서 장점을 찾으라는 건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감정적인 동요로 마음이 작동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말처럼 좋은 점을 찾을 때 상대의 인간미를 발견하게 되고, 평화와 협력으로 나아갈 있다는 건 동의합니다. 또 상대가 우호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 상대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때 문제해결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런데 머리로 이해한다 해도 몸이 따르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상대에게 좋은 점을 찾아보라고 해도 안 되는 이유입니다. 억지스러움이 느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보다는 상대의 좋은 점 찾기를 거부하는 내 마음을 조사하는 게 먼저입니다. 나의 어떤 신념, 나의 어떤 불안이 그렇게 하기를 반대하는지 묻고 살펴봐야 합니다. 그런 다음 내 안에서 충분히 숙고의 과정을 거쳐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이래저래 해야 한다는 당위 역시 때때로 폭력이 됩니다. 그전에 충분히 자신이 가진 생각과 신념을 조사해 보는 과정을 주는 게 필요합니다. 그게 배려이고 비폭력입니다. 비폭력은 억지와 친한 사이가 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