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2, Barcelona, Spain
#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산울림 - 너의 의미 中
바르셀로나 대성당을 나와 보케리아 시장을 방문했다. 이곳 역시 활기가 넘친다. 산미구엘 시장에서 느꼈던 그 북적거림과 소란스러움이 이곳에서도 계속된다.
보케리아 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1.5유로의 저렴한 생과일주스이다.
시장 구석구석 알록달록한 과일들이 시선을 잡아챈다. 채도가 매우 높은 선명한 과일들의 색감은 별로 목이 마르지도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먹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또 선택 장애에 빠진다. 어디로 가야 하지. 사실 생과일주스가 거기서 거기일 텐데.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팁. 입구 쪽은 비싸니 시장 내부에서 고르라는 어떤 블로거의 말을 충실히 따라 안쪽으로 이동한다.
무수히 많은 생과일주스 점포. 한 여인이 눈에 들어온다. 본능적으로 민소매의 살에 시선이 간다. 보일 듯 말 듯 살짝 드러난 타투가 매력적이다. 두 명의 의견이 정확히 일치한다. 별다른 고민 없이 이곳으로 정한다. 이럴 때는 선택 장애가 말끔히 해소된다. 역시 남자들이란.
괜한 미소와 함께 평소보다 목소리를 한껏 낮춰 주문을 한다. 그런데 이 여성분, 매우 사무적이다. 딱딱한 표정으로 앞에 놓인 과일 주스 중 우리가 주문한 것을 집어 건넨다. 눈앞에서 바로 과일을 갈아줄 줄 알았는데. 뭔가 속은 기분이다.
아주 잠시 동안 나 홀로 상상했던 로맨스는 단숨에 끝이 났고, 애초에 아무 의도 없었다는 듯 무심히 생과일주스를 들고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구석으로 이동했다.
한 모금을 들이켠다. 인위적인 달콤함과 시원함이 뇌를 찌릿하게 관통한다.
딱 1.5 유로만큼의 행복함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단박에 알아챈다. 과일 간 것에 설탕 비스름한 뭔가가 섞여있다고. 단 것을 싫어하는 나로선 인상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다. 대체 왜 유명한 건지. 편의점에서 산 음료와 별다를 것 없는데.
아마 여행 후기를 남기는 사람 대부분이 최소의 예산으로 장기간의 유럽 여행을 하는 젊은 사람들이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매우 주관적인 결론을 내린다. 시장에 왔으면 뭔가를 먹어봐야 하긴 하는데 술은 비싸고, 타파스를 먹자니 그 돈으로 저녁 식사를 근사하게 먹는 게 나을 것 같고.
그리고 그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관계 성립이라 하고 싶다. 비록 1.5유로의 생과일주스 하나라지만 그 매개체를 통해 보케리아 시장과 나와는 좀 더 특별한 관계가 성립되기에. 그저 지나갔더라면 남지 않았을 기억들. 1.5유로의 교환을 통해 얻었던 그날의 비록 사소한 경험이 관계라는 끈이 되어 유의미 해지니까. 현실로 돌아와선 문득 떠오르는 소중한 그리움으로 변하니까.
요새도 쥬씨를 보면 보케리아 시장이, 그 여인이 가끔 떠오른다.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Spain, France] by.mindmoon
-1, Barcelona, Sp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