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3, Barcelona, Spain
#이렇게 모든 게 아직 그대로인데
왜 나는 스무 살 때와 변한 게 없는데
박새별(Guitar Feat. Thomas Cook)
- 아직 스무 살 中
바르셀로네타 해변을 찾았다. 정박해있는 수많은 요트들을 지나간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과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바다이다. 손을 뻗어 모래 한 줌을 손으로 흩날려본다. 고운 모래 입자의 느낌이 참 좋다.
모래사장 중간으로 다가갔다. 바다를, 그리고 사람들을 찬찬히 훑기 시작한다.
날씨가 좋지 않아 생각보다 바다가 맑아 보이지 않았다. 원래 맑지 않은 바다인데 유럽 바다는 다를 것이라는 멍청한 기대였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런 이유로 발이라도 담가볼까 하는 생각은 이내 잊고 모래사장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볼거리는 많았다. 비키니를 입은 처자들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울룩불룩한 근육을 가진 현지 남성들의 모습에 괜히 위축되기도 했다. 여름 바다의 재미가 늘 그렇듯.
확실히 날이 맑지 않으니 몸도 축축 처진다. 더 이상 걷는 것을 포기하고 모래밭 한가운데 주저앉았다. 그냥 이렇게 있을까 하다,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꽤나 시간이 남아서 해변가에 위치한 작은 주점에 들어갔다. 샹그리아 피처 하나를 시키고 천천히 해변을 곱씹는다.
마지막으로 본 바다가 언제였는지.
20살에 갔던 경포대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친구 8명과 함께 한. 다시 회상하게 된 그날의 모습은 웃음도 나지 않을 만큼 참혹했다. 이상한 장발 곱슬머리 하며 큼직한 피어싱에, 집에 누워있다 담배 사러 잠시 밖에 나온 것만 같은 옷차림까지. 어떻게 한번 여자들과 놀아보겠다고 푹푹 찌는 한여름에 긴팔 셔츠를 입고, 서로 머리를 만져주며 괜찮다고 파이팅을 외치던 20살의 여름바다.
당연히 잘 될 리가 없었다. 8명이라는 인원수는 둘째 치고라도, 몰골이 끔찍했으니. 지금 친구들을 보면 앞의 20년보다 뒤의 9년 동안 참 잘 자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우리도 뭐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나도 누구처럼 한번 놀아봤다. 이런 얘기를 떠벌리고 싶었던 거다. 20대 초반 남자들 특유의 허세 비슷한 것. 뭐 잠깐이라도 난생처음 보는 이성과 술 한잔한다면 그 이야기에 살이 붙고 붙어, 으쓱하며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 같이 술 마신 이야기가 1이라면 붙는 이야기가 9이다.
'아 사귈뻔했는데, 집도 멀고 그래서 그냥 거기서 헤어졌지' 이런 식이다. 설령 그 여자분이 10분 남짓 같이 있다가 약속이 있다고 하며 휑하니 떠나버렸다 해도.
9년이 지난 지금은 좀 달라져 보일까.
아니 달라졌을까?
외적으론 이젠 더 이상 이상한 머리를 할 수 없는 직장인이 되었고, 피어싱은 6년 전에 마지막으로 끼었던 것 같다. 살이 좀 붙었고 최소한 사람같이 옷을 입고 다닌다. 물론 이것은 오로지 내 생각일 뿐이다.
그걸 제외하면 아직 그때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 괜스레 바다에 오면 설레고, 누군가와 눈빛만 마주쳐도 설마 하는 혼자만의 기대감을 갖는. 여전히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 걸기 쑥스럽고, 혹여 누군가와 말이라도 섞게 된다면 동네에 돌아가 부풀어질 대로 부풀어진 이야기를 할 것만 같은. 아무 일이 없더라도 크게 상심하지 않으며,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모든 급만남에 실패하고 터벅터벅 돌아와 소주를 먹던 경포대의 그날과, 지금 바르셀로나 해변에서 샹그리아를 먹는 내 모습이 데칼코마니처럼 포개진다. 눈앞에서 손사래를 치는 여자와 끈질기게 말을 거는 어떤 남자를 보고 그때 생각에 한참을 히죽히죽거렸다.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Spain, France] by.mind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