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3, Barcelona, Spain
#음 술이란 마법 같지
근사한 양복 신사
허름한 청바지 학생도
취하면 모두 동무
세상 사람들 술 한잔에
웃기도 하고 눈물짓네
Toy(With 이승환) - 애주가 中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기도 했고, 문득 들이닥친 심경의 변화에 술 한 잔이 필요해서 에스파냐 광장 바로 앞의 타파스 바로 이동했다.
이번에도 샹그리아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확 중에 하나는 샹그리아의 매력에 푹 빠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샹그리아는 레드 와인에 과일이나 과즙, 소다수를 섞어 차게 마시는 가향 와인이다. 경우에 따라서 까바(샴페인)이나 화이트 와인을 베이스로 하기도 한다.
타고난 소주파에다 동시에 단것을 유독 싫어하는 내가 이런 술 같지도 않은 술에 빠질 줄이야. 새로운 만남은 이렇게 사람을 무장해제시키기도 한다.
한국이었으면 약간의 경계를 했을 법한 문신 투성이의 한 남자가 호기롭게 샹그리아를 들고 테이블로 다가온다. 그 겉모습 때문인지 오히려 유독 미소가 밝아 보인다. 졸졸졸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샹그리아. 청명한 오렌지색의 까바 베이스의 샹그리아는 굳이 맛을 보지 않았는데도 이미 혀에서 느껴지고 있다.
쨍, 청명한 잔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오늘을 기념하는 잠시의 휴식이 시작된다.
새콤달콤한 액체가 이가 시릴 만큼 시원하게 입안에 가득 찬다. 그다음, 어쩌다 입안으로 들어온 과일 조각을 씹으며 천천히 목으로 넘긴다. 어떠한 걸림 없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곧이어 눈에는 찡긋한 주름이,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나는 술을 좋아한다. 술은 참 매력 있는 존재이다. 가끔 과해서 문제지만.
처음 술 마실 때가 생각이 난다. 푹푹 꺼지는 땅과, 핑핑 돌아가는 시선. 비틀거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동시에 얼굴이 빨개져 토악질을 하는 친구를 향해 이 정도 가지고? 하며 으쓱했던 철없는 우월감까지. 지금 생각하면 참 귀엽다. 어릴 적엔 소주의 그 쓴맛을 이겨내지 못해 무조건 국물 안주가 필요했던 나였는데. 시간은 흐르고 흘러, 아무 안주 없이도 소주쯤이야 하며 목구멍으로 술술 털어 넘기는 나를 보고 있다. 이 애증의 것을 나는 대체 왜 좋아하는 것일까.
술로 인해 느슨해지는
경계들과 생각들.
그 기회를 틈타 늘어놓는
진솔한 이야기와 악의 없는 장난.
세상 어떤 추한 것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
유연하게 이루어지는
감정의 고조와 이완.
그게 좋았다.
그리고 그게 필요했다.
낯을 가리는 성격.
타인에게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무심함.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
까칠한 인상, 툭툭 내뱉는 말투. 속을 잘 내비치지 않는 과한 신중함.
내가 쉽게 다가가지도 못하지만 상대방이 쉽게 다가오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에게 술은 수단이 아닌 매개체로서 꼭 필요한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서른이 다 되도록 완벽히 깨우치지 못한 아직 서툰 감정 표현을, 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조금씩 풀어놓는다.
어색한 미소와 함께 인상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한 변명에서부터, 약간 벌게진 얼굴로 용기 낸 붙임성까지.
그렇게 알코올이 흡수되는 순간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비로소 온전히 흡수한다.
누군가가 그랬다. 술은 비와 같다고.
비가 오면 진흙밭은 진창이 되어 버리지만 좋은 흙이라면 꽃을 피운다고.
나와 그 사람들 사이에 있던 그 흙은 과연 어떤 흙이었을까. 그리고 무엇이 피었을까.
무수한 잡초 사이로 꽤 많은 꽃이 선명하게 피어있는 장면이 뇌리를 스친다.
이쯤이면 충분할 것도 같은데 욕심이 생긴다. 언젠가는 다 채울 수 있지 않을까.
더 많은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이건 앞으로도 술을 마시겠다는 아주 그럴듯한 핑계이다.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Spain, France] by.mind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