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4, Barcelona, Spain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이야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이문세 - 옛사랑 中
타파스 집을 나와 에스파냐 광장을 가로질러 카탈루냐 미술관을 향해 계단을 오른다. 고개를 들자 중앙에 보이는 4개의 원기둥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보았던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 모습을 빼다 박았다. 방금 전에 지나친 광장 입구를 지키고 있는 붉은 사각기둥 2개의 외관을 보며 왠지 모르게 트로이 목마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이쯤 되면 바르셀로나와 그리스와의 문화 사이에 직간접적으로라도 일말의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게 한다.
계단은 이미 야경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오늘은 그 유명한 몬주익 분수쇼도 없는 날인데 생각보다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그 틈을 파고들어 꽤 좋은 전망을 확보하고 있는 곳에 낑낑거리며 자리 잡는다.
에스파냐 광장의 모습이 펼쳐진다. 오후의 칙칙했던 풍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조명발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구름의 어둠과 늦은 오후의 어둠은 같은 어둠임에도 회색빛 도시에 전혀 다른 옷을 입히고 있다. 이제야 마음이 조금은 흡족해진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여행 전, 한국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그저 이곳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뭉클해지고 두근거렸었는데. 날이 흐리건, 비가 오건, 춥건, 바람이 불건 그것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는데. 왜 처음의 순수한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를 사사로운 욕심이 채울까. 왜 자꾸 무언가를 더욱 바랄까.
카탈루냐 미술관은, 그리고 에스파냐 광장은 늘 그대로 있었다. 80여 년간 수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이며, 그리고 떠나보내며. 그렇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런 존재에게 구태여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동요가 일어난 것은 나였을 뿐이다. 나의 마음을 탓했어야 했다. 왜 그땐 너를 탓하고 있었을까.
중요한 건 마음이었다. 그냥 이것을 바라보는 것이, 이 옆을 잠시라도 지키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속고 있었다. 나 자신에게. 나는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그곳에서 찍은 좋은 사진을 건지려, 그곳을 가봤다는 증거물들을 남기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대체 무엇을 좋아했던 걸까.
낮아진 기온에 차가워진 손등을 샹그리아 덕에 살짝 붉어진 볼에 갖다 댄다. 한겨울에 이불을 처음 끌어안을 때의 느낌이다. 그 서늘한 촉감이 상기된 마음을 어느 정도 진정시키는 것 같다.
시간은 흘러 어둠이 서서히 우릴 끌어안으려 다가온다. 그리고 어둠을 거스르려 여기저기 솟은 건물들의 조명에 점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비로소 어둠과 어둠을 거스르는 자들의 힘의 균형이 1:1로 맞춰지는 그 순간. 명과 암. 2 등분된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방관자는 최고의 풍경을 맞이한다. 어부지리의 상황이다.
이렇게 아침까지 있고 싶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지치는 모습을,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결국 한 걸음씩 내빼고 양쪽 모두 화해한 모습을 보고 싶다. 기어코 아침의 맑은 하늘을 보고 싶다.
내가 그렇지 못해서일까.
결국 이렇게 돌고 돌 일이었는데, 조금만 기다리면 환한 아침이 올 일이었는데. 그러다가 언젠가 어둠이 닥쳐오더라도 곧 다시 아침이 왔을 텐데.
적막 속에서 한참을 있었다.
이 날은 유독 밤이 길었다.
에스파냐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몬주익 경기장 언덕 아래에 자리한
카탈루냐 미술관
난 카탈루냐 미술관을 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일까
에스파냐 광장을 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일까
나는 너를 좋아했던 걸까
아니면 혹시
너를 둘러싸고 있던 것을
좋아했던 걸까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Spain, France] by.mind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