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5, Barcelona, Spain
#A thing is a thing
Not what is said of that thing
영화 Birdman 中
예정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한 바르셀로나. 다음 일정인 구엘 공원까지 얼마 시간이 남지 않은 상황.
비용과 시간의 기로에서 우리는 시간을 택했다. 오랜 시간이 걸릴 버스를 포기하고 모리츠 맥주 공장에서 맥주 한잔을 걸치고 택시를 타기로 했다. 스페인에서의 첫 택시. 얼마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지금 당장의 시간이 더욱 중요했다.
오리지널 Moritz 1L와 크로켓 주문.
역시나 맥주 공장에서 바로 마시는 갓 뽑아낸 맥주는 실패할 확률이 0%이다. 깨끗하게 넘어가는 맛. 프로랄 계열의 풍부한 향은 한 모금, 한 모금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매콤한 소스가 올라간 크로켓 역시도 특유의 기름진 풍미가 맥주와의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시간에 쫓겨 버스를 탔다면
느끼지 못했을 이 여유와 행복함.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중에
시간과 행복이 있다지만,
나는 이 순간 시간과 행복을 돈으로 산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금세 한 병을 비우고 모리츠 맥주공장을 나와 택시로 십여 분을 달려 구엘 공원에 도착했다. 예상치 않게 택시비로 지출되었던, 시간과 맞교환한 몇 유로의 지출은 가성비의 측면에서 꽤 괜찮은 거래였다는 생각에 기분이 흡족해진다.
가우디 건축의 진수라는 그곳. 과자의 집이라고도 불리는 구엘 공원. 실제로 마주하자 그 동화 같은 광경은 자신의 애칭이 꽤나 적절한 비유였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초콜릿 시폰 케이크 시트에 정성껏 올려놓은 하얀 생크림. 그리고 그 단조로운 구성에 포인트를 주는 색색깔의 스프링클. 백화점 지하 1층 진열장 어딘가에 있을법한 먹음직스러운 컵케이크의 모습이다. 왠지 이곳에는 녹진하고 달콤한 향이 나는 것 같아 입구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런 향은 전혀 나지 않았지만, 고지대의 맑은 공기는 구엘 공원을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하는, 오감을 깨우기 위한 재료로서는 충분했다.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인원만이 입장 가능한 칼 같은 원칙은 구엘 공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고지식한 원칙 덕에 일찍 도착한 이점을 온전히 누리지는 못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질서 정연함과 문화재를 대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시선을 엿볼 수 있었다.
구엘 공원의 프리 존에서 15분 정도를 기다린 후, 입장 줄에 선다. 15분 전, 단호하게 NO를 외치던 검표원의 입가에 이제야 환영의 미소가 번진다. 드디어 가우디의 마음속 순수함이라는 공간, 그 한편을 엿보러 간다. 그가 현실로 불러들인, 그가 창조해낸 또 다른 세계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입구 정중앙의 과자의 집을 지나서 계단을 오르자 구엘 공원의 트레이드 마크인 도마뱀이 나를 반긴다. 이미 그 앞은 문전성시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그 도마뱀과 사진 한 장 찍어보려 안달이다. 그 번잡스러움이 싫어서, 급히 사진 몇 장을 남긴 후 공원의 맨 꼭대기로 오른다.
바르셀로나가 내려다보이는 맨 끝으로 다가갔다. 구엘 공원 옥상 정원의 가장자리를 에두르고 있는, 타일로 이루어진 의자의 중간쯤에 앉았다. 길게 연결되어있는 의자, 불규칙적으로 휘어있는 연결 곡선은 뱀이 멋대로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다. 그 덕인지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긴 의자였다고 한다. 비록 새로운 기록을 수립한 어떤 의자에 의해 과거의 한 영광을 빼앗기긴 했지만, 가우디가 세계에서 가장 긴 의자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기에 안타까움이 남지는 않는다.
가우디의 설계 방향의 1순위는 조화였다. 사람과 사물, 그리고 자연까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의자는 그 딱딱한 속성에 불편함을 야기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뒤엎고 수려한 곡선을 통해 지친 여행자의 허리를 유연하게 흡수한다. 그리고 자연을 빼다 박은 모자이크 타일 조각의 색깔은 지중해와, 야자수를 품은 주변의 풍광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의자 곳곳의 구멍은 우천 시 높은 지대의 물을 흘러내려 보내는 배수구 역할을 하며 아래의 분수대로 이어지게끔 한다. 자원의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깨진 병과 타일 조각을 재활용하여 모자이크에 적용한 것과 같은 궤이다. 이렇듯 구엘 공원의 의자는 미적 요소뿐 아니라 실용적인 요소까지 겸비한 가우디 철학의 집약체였다.
현실성 없는 동화 같은 상상력 안에 담긴, 지독히 현실적인 증거들은 마음을 괜히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자신의 궁극적 의도와 다른 몇 등의 기록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쩌면 가우디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 편안한 의자가 아닌, 단지 긴 의자라는 타이틀에 서운해 무덤 속에서 통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쉽게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 편한 의자는 있을 수 없다. 그 주관적인 속성은 대다수의 동의를 받는다 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객관성을 확보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매우 주관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좋은 의자라는 타이틀을 내어줬다. 가치 판단에 있어서 정량적인 측정 요소에는 한계가 있고, 세상만사의 의도와 의미는 늘 일치할 순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구엘공원을 찾았던 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누군가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에.
그 편한 의자에 완전히 몸을 기댔다. 양쪽으로 손을 뻗어 그의 노고를 쓰다듬듯 타일에 갖다 댄다. 서늘한 타일의 맨질맨질함과 타일 사이의 까끌까끌함을 건너 건너 어루만진다. 안온한 그 느낌이 너무 좋아 고개를 뒤로 푹 꺾었다. 유독 맑은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그의 큰 그림을 속인들이 미처 따라가지 못해 미완성된 습작처럼 공사는 중단되고 일부만이 남았지만, 구엘 공원의 의자는 내가 지금껏 만났던 의자 중 가장 완벽한 의자였다.
프랑스의 상징,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한 에펠탑
스페인의 상징,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구엘공원
안토니오 가우디
왜 당신은 그 이름 하나 당신의 건축물에 남기지 못했습니까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Spain, France] by.mind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