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6, Barcelona, Spain
#수많은 불빛 그 속에 모두
사랑하고 미워하고 실망하고
그중에 내 것도 하나
윤종신 - 야경 中
나는 높은 곳을 상당히 좋아한다. 여행을 가게 되면 꼭 야경을 본다. 그것도 도시 전체가 보일 만큼의 상당히 높은 곳에서.
이전에는 깜깜해진 후에 보는 야경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해가 지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도시의 면면과 해질 무렵 하늘의 색깔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그 길게 늘여진 순간들이 참 좋다.
그리고 유리창이나 난간이 가로막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장소가 좋다. 바람은 바람대로 불고, 온도 차이는 저 밑 지상과는 전혀 다른,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장소. 거짓 없이 순수하게 서로를 맞이할 수 있는.
오사카의 '우메다 공중정원',
홍콩의 '빅토리아 피크',
태국의 '시로코'
나가사키의 '이나사야마 전망대',
상하이의 '하얏트 뷰바' 등. 지금껏 내가 찾았던 장소는 다 이런 곳이었다.
쉴 새 없는 쿵쾅거림.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와서일까 긴장의 고조 때문일까
드디어 '벙커'에 도착했다.
탁 트인 바르셀로나가 눈에 들어온다. 좌우로 목을 돌려 전경이
한눈에 들어올만한 그런 방향을 찾는다.
감동을 받을 때의 그 순간.
몸에 전기가 흐른 듯한 떨림. 그리고 목으로부터 시작해 머리 위까지 느껴지는 뜨거움과 살짝 습도가 올라가는 눈까지. 이 순간만큼은 아직 내가 인간으로서 생생히 살아 있음을 상기한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새삼 다시 깨닫는다.
한참 동안을 서있었다. 정말 이곳에 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머릿속에 벙커라는 이미지가 어느 정도 각인될 무렵, 미리 준비해온 맥주 한 캔을 꺼냈다. 절벽과도 같은 맨 끝 가장자리로 이동한다. 허공에 다리를 내어주고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한 모금을 홀짝인다. 목에 넘어가는 청량감만큼이나 시원한 장면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자리 잡는다.
아무 말도 필요가 없었다. 쿵쾅거림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차분함이라는 감정이 대신 채운다.
몇 시간이 지나면 떠나야 하는 바르셀로나. 마지막 밤. 시간이 정지한 것 마냥 근 두세 시간을 그렇게 있었다.
마지막을 맞이하기에 최적의 장소가 아니었나 싶다. 해가 지는 하늘만큼 천천히 스쳐 지나가는 바르셀로나의 기억들. 저 멀리의 바르셀로나네타 해변에서부터, 환상적이었던 시에테 포르테스의 부자 빠에야. 반전의 몬주익 성과 이렇게 또 한참을 있었던 까탈루냐 미술관. 가우디를 찬양했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지중해를 느꼈던 시체스 해변까지. 켜켜이 쌓인 추억들과 아쉬움 사이에서 옅은 쓴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어둠이 내려앉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발버둥을 치는 것처럼, 조금만 더라며 계속해서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결국 놓아주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프랑스의 일정이 남아 있다. 새로운 시작이 있다.
어떤 일이 끝이 나고, 그 순간 다른 일이 시작된다면 그것은 끝이 아니다. 우리가 끝이라 생각하는 것은 다른 시작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끝에 찾아온 여유가 공허함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끝은 그곳이다.
아쉬움은 그곳에서 가져야 한다.
'벙커'
바르셀로나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
높은 곳에 오르면
근심, 걱정은 줄어드는 대신
늘어날 대로 늘어난 생각들이
감당하기 벅찬 고민들을 만들어 낸다
하나 근심이나 걱정과는 느낌이 다른
좀 더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고민들
고민들이 지속적으로 팽창하여
앞으로의 생에 자양분이 될 수 있기를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Spain, France] by.mind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