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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moon Feb 20. 2017

여행의 시작. 그리고 첫 식사

Day 1-3, Madrid, Spain


#간지러운 바람 웃고 있는 우리
 밤하늘에 별 취한 듯한 너
 시원한 Beer Cheers
 바랄 게 뭐 더 있어

San E, 레이나 - 한여름밤의 꿀 中



솔 광장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위치한 우리의 숙소. 2박에 약 16만 원. 이번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에어비앤비를 이용한 곳이다. 위치, 가격, 시설, 청결 모두 완벽했던 곳.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15시간 비행에서의 피곤이 싹 날아날 정도였다.


Estudio con estilo en el centro, AirBNB


발코니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선선하면서 눅눅한 공기가 들어온다. 코에 느껴지는 그 느낌은 늦여름밤 특유의 향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그곳에 서서 멍하니 거리를 구경했다. 솔 광장에서 가까운 곳이라 유동인구가 상당했고, 그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나 눈길을 끄는 것은 어떤 노랫소리와 무리들의 행렬이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싶어 핸드폰을 꺼냈다. 곧이어 눈에 바로 띄는 검색어 순위 1위. '마드리드 2  :  1 셀타 비고'


그랬다. 오늘은 프리메라리가 경기가 있던 날이었고, 불과 몇 시간 전에 레알 마드리드는 홈구장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이게 유럽 축구의 열기이구나.'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어서 저기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만큼 그들의 열정적이고 뜨거운 분위기는 여름밤과, 그리고 갓 여행을 시작하는 여행자의 마음과 일맥상통하는 뭔가가 있었다.


우린 그 열기에 동참하고자 했다. 밖을 나서기 전, 화장실에 들어가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놀랐다. 떡져 눌린 머리와 기름이 줄줄 흐르는 얼굴. 확실히 우린 무언가를 하기엔 지쳐 있긴 했다.



Rosi La Loca, Spain


현지 시간 00:00. 우린 미리 점찍어 둔 음식점으로 향했다.

밖은 역시나 축제 분위기였다. 길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빽빽함은 여름밤의 기온을 좀 더 상승시키는 것 같았다. 그 후덥지근한 열기는 오랜 비행에 쪄들은 살결에 그대로 달라붙었지만, 곧 들이킬 맥주 한잔과 샹그리아 한잔을 상상하며 우린 빠른 걸음을 내디뎠다.


곧 도착한 Rosi La Loca.

그런데 세상에나. 이 시간에 우린 대기를 해야 했다. 00:00을 넘은 시간에 말이다. 길게 늘어선 음식점 중에 유독 여기만 사람이 많았다. 나름 이것이 약간 반갑기도 했다. 이는 제대로 된 음식점을 찾아왔다는 반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린 천천히 자리가 나길 기다리며, 메뉴를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며 시간을 때웠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다양한 메뉴를 고르는 재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처음 그 느낌을 받아들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무(無)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기다리는 시간은 마드리드를 유심히 관찰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우린 마드리드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드리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 미리 주문을 넣은 덕에 바로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

레어로 시킨 스테이크와 샹그리아. 버터향이 물씬 풍기는 핏빛 스테이크 육질과 뼈에서 지글지글 끓고 있는 기름 거품들. 그리고 포도주의 시원한 향을 그대로 간직한 샹그리아.

이 고기 한 점과 한 잔의 조화는 그간의 모든 피로를 씻어내는 기막힌 능력이 있었다. 씹을수록 찰진 스테이크의 쥬시한 육질은 문어만큼의 쫄깃한 식감을 갖고 있었다. 약간 질기다 싶을 정도였는데 이것은 근육 덩어리의 소가 연상되는 그런 맛이었다.


우린 그 분위기에 점점 빠져 들었다. 그 사이 샹그리아 잔은 계속해서 쌓였다. 중간중간 맥주잔도 쌓이고, 클라라 잔도 쌓였다. 그렇게 스테이크 한 접시를 다 먹을 무렵 우린 꽤나 많은 잔을 비웠고 알딸딸한 상태에 이르렀다. 첫날부터 과하지 않나 싶었지만, 기분 좋은 취기라는 것이 딱 이것을 말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 이 순간은 완벽했다.


포만감과 피로가 가져다주는 노곤함.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경쾌한 그것이 있는 스페인어. 유럽 특유의 노란 조명 속에서 우린 동시에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중요하다는데, 만약 그것이 정설이라면 우리의 여행은 이미 완벽한 수순을 밟고 있었다. 그 만족감에 취해 자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우린 무작정 걷기로 했다. 그렇게 우린 식당을 나왔다.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Spain, France]                   by.mind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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