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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moon Mar 23. 2017

개선문, 그리고 행복에 관하여

Day 6-5, Paris, France



#해는 유리 거울로

  달은 그림자 너머

  별은 벌거벗는 이

  가슴에 깊어지라고 더 깊어지라고

  평화롭게 반짝이면서 안으로 뜨네

  이소라 - 가을 시선 中



개선문.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이 공을 쏟은 곳은 다름 아닌 개선문이었다. 파리하면 에펠탑이지만, 그건 뭐 숙소에서도 가깝고 언제든지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개선문의 일정은 여행 계획이라기보다 설계에 가까웠다고 표현하고 싶다. 저녁 7시 에서 9시 사이에 난 개선문 위에 무조건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이것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었고, 동행한 친구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했다.


이를 위해 꽤 비싼 돈을 지불하고 샤를 드골 공항에서 시내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고, 구글맵으로 동선과 소요 시간을 파악하며 파리 시내의 길을 외우다시피 했다. 또한, 파리 시내 일몰 시간을 수십 번을 검색했으며 저녁 식사 장소를 4번이나 바꾼 후에야 안심했다. 엄청난 집념이자 집착이었다. 분 단위로 여행 계획을 세우는 나를 보고 친구들이 미쳤다고 잔소리를 할 정도였으니.



Triumphal Arch



가끔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한 가지에 꽂히게 될 때가 있다. 이때만큼은 시야 자체가 내가 바라보는 방향, 그 한쪽으로만 쏠려 버린다. 주변을 바라보는 신경이 아예 닫혀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결정은 매우 충동적이고 신속하게 진행된다.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는 제안을 던지고,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괴롭힌다. 이 상황에서 피해를 보는 쪽은 늘 주변 사람의 몫이다.


결국, 지칠 대로 지친 상대에게  “너 마음대로 해라”는 대답을 받아낸다. 물론 뒷감당은 오로지 내 몫이다. 그 결과에 대해 용서를 구하건, “거봐.”하며 득의양양하건.

개선문 역시 그런 경우였다.


 

Chez Gabrielle



개선문에서 도보로 약 3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식당. 치즈의 풍미가 훌륭했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밖을 나오자, 꽤나 짙어진 하늘은 지금이 7시 언저리에 왔음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완벽했다. 시간도 날씨도 기온도 마음도 컨디션도. 드디어 널 만나는구나.





지하도를 통과해 개선문 입구에 도착했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272개의 나선 계단과 마주한다. 끝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하기도 힘든 계단을 오른다. 돌고 돌고 돌고.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관광객들을 제치고 계속해서 오른다. 숨이 조금 차오를 만큼, 그리고 허벅지의 근육이 조금 땡기기 시작할 즈음 옥상에 다다랐다.


도시의 바람이 세차게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티셔츠 안의 땀이 초가을 저녁 공기와 만나 생성된 냉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어디부터 보아야 할지 고민하다 사람이 많은 곳을 향한다.





그래, 이거였다. 이 모습이다. 고집불통 기질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시원하게 방사형으로 뻗은 거리. 이곳은 세상의 중심이다. 마치 거미줄의 한가운데처럼 세상으로 통하는 모든 길이 이곳으로부터 뻗어져 나왔다. 지구를 과녁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곳이 과녁의 정중앙. 퍼펙트 골드이다.


파란 하늘이 더욱 짙어지며 조명이 들어온 에펠탑이 눈에 들어온다.

헛웃음이 난다. 무너져 내렸다. 그동안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번민들이 아스라이 바람에 쓸려나간다. 얽매인다는 말이 부질없을 정도로 수많은 감정 조각이 한순간 바스러져 사라진다. 최고의 순간을 경험한다.

   

자연의 생리가 피고 짐의 연속이라면, 나의 핌은 생명의 깃들어진 순간인지, 이런 순간인지. 혹여 후자를 택하여 내 삶 전체라는 전제로 이야기한다면 지금 이 순간은 ‘가장’ 활짝 핀 날이라 하고 싶다.


그리고 이를 위해 숱하게 겪을 시들음을 고민한다 해도 나는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 피고 짐을 이루고 있는 순간들의 양과 질에 대한 비율이 맞지 않아, 후에 투정을 부린다 해도.               





수선스러운 길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다 스산한 기분이 든다.     


행복이라는 마취제의 약발이 점점 다하고 있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 시간이 지나고 이곳을 나와 계단으로 내려가는 순간부터, 이 최고의 행복은 깨지는 것인가. 뭐든 감내할 수 있다던 이전의 자신감은 사라진다. 문득 걱정스러웠다.


‘가장.’ 이런 식으로 최상급을 지칭하는 단어를 내뱉고 나면 공연히 걱정스럽고 불안하다.  여행 해본 곳 중에 어디가 가장 좋았어?” 누군가의 물음에 한참을 고민하다, “뭐, 다 좋았지?” 얼버무리며 우물쭈물 되묻는 그런 느낌.


‘가장’이라는 단어를 어딘가에 갖다 붙인다면 그것과 관련된 나머지는 그저 그런 것으로 전락해버리는 것 같아서.


영화도 있었고 소설도 있었다. 너무나 행복한 연인, 그러던 어느 날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는 여주인공. 아무 날도 아닌 날, 갑자기 지금 이 행복이 끝날 것 같아 두렵다며 울먹이던 그 장면. 토닥이는 남주인공 품에 안겨 더욱 쏟아내던 눈물.


지금 느낌이 그런 것 아닐까.     

막연한 두려움이다. 지금을 능가할 만큼의 긍정적인 사건이 나에게 또 찾아올 수 있을지. 고점을 돌파한 행복을 보낸 후, 어떻게든 삶은 음의 그래프를 그릴 테니까. 그런 불안함인 거다.


나는 분명 행복이란 절대치가 아닌 상대적 감정이라는 핑계로, 쓸데없이 저울을 달아 불평할 것이다. 분명히 나쁜 기억이 아니라 덜 좋았던 기억임에도.


이런 식이라면 가장 행복한 순간의 눈물은 감동의 결정체가 아닌 두려움에 대한 공포일지도 모르겠다.     




      

하나 분명한 것은 남은 생에 부정적인 요소들이 심각하리만큼 개입하지 않는 한, 그런 날은 분명히 또 올 터였다. 내 경험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고, 이건 그렇게 되길 소망하는 작은 바람이기도 했다. 거기엔 더욱 격한 행복을 기다리는 셀렘과 잊혀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혼재할 것이다. 그리고 이 행복은 겹겹이 쌓일 무수히 많은 추억들 속에서 점점 안쪽으로 밀려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더욱 큰 기쁨을 위해 나는 크고 작은 무언가를 희생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완벽히 개운하지는 않지만, 위안은 된다.





‘가장’ 행복했던 2016년 09월 01일 21시 21분을 기억한다. 이 시간을 새롭게 쓸 다음 추억은 언제일까. 그때까지 나는 또 다른 곳을 찾아 얼마나 헤맬 것인가.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씩 웃으며 친구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거봐.”






개선문
[Triumphal Arch]     
프랑스군의 승리와 영광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문. 내가 프랑스에 온 이유이자, 가장 공을 들였던 곳.

즐겨 가던 음식점에 발걸음이 뜸해지고
즐겨 듣던 노래가 이젠 그저 그렇고     

‘역치‘라는 말이 있다.
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

점점 그것이 높아지고 있다
무던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무뎌짐일까
단순한 감각의 노화일까

그간 나의 여행은
계속해서 역치를 올리는 행동이었을까

이러다 무엇을 보더라도
시큰둥해지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Spain, France]         by.mind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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