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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moon Feb 22. 2017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Day 2-3, Toledo, Spain



#아마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내가 사랑하는 사람 모두

 저 하늘과 같은 마음이겠지

 바다와 하늘 서로 멀리 있지만 
 늘 언제나 함께 하는 수평선을 만들 듯

리쌍 - 831 中



나는 기독교와 천주교의 차이도 잘 모르는 종교 문외한이다.

전 세계 다양한 형태의 신들 중 누구 하나 믿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별로 믿을 생각도 없다. 창조론보단 진화론 쪽에 기우는 내 사고도 물론 한몫했겠지만, 실망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 잠잠해질 때쯤 터지는 종교인들의 스캔들. 금전적인 부분이나 성적인 부분에서 일어나는 성직자들의 부도덕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믿음은 과연 무엇을 향해야 하나 싶다.


몇몇은 지극히 일부 사람들에게서 발생하는 특수한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나의 섣부른 판단이 낳은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다. 그러나 종교를 인간이 창조해낸 하나의 믿음의 방식이라 생각하는 내 입장에선 그저 결국은 사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나에게 있어서 신은 그렇다. 누군가가 있을 테고, 그 누군가는 내가 착하게만 살아간다면 언젠간 내 바람을 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하는 정도이다.


그런 내가 성당에 들어갔다.

파리에 가면 에펠탑을 가고, 프라하에 가면 까를교를 가듯,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들어갔다.           





톨레도 대성당의 첫 느낌은 '매우 크다'였다.

그 시대에 어떻게 이렇게 크게 지었을까, 그리고 대체 왜 이렇게 크게 지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 큰 규모에 압도당하는 느낌. 개인이란 존재가 얼마나 나약하고 볼품없는지를 표현하고자 했다면 그 설계자의 의도는 100% 성공한 것이었다.


내부는 정말 엄숙했다. 조용히 하라는 싸인이 있기도 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적이 가득 찬 내부에서 들리는 것은 오로지 관광객의 카메라 셔터 소리뿐이었다.

높은 천장과 은은한 조명,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떨어지는 색색깔의 햇빛을 마주하고 있자니 어딘가에 있을 아무도 없는 고요한 가을 바다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았다.

길게 자리 잡은 천주교 특유의 장의자를 지나 중앙에 있는 십자가에 다가갔다. 왠지 모를 거룩함 속에서 신앙심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문득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성호를 그은 후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주제는 안녕이었다.

안녕을 바랐다. 나와 가족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바라는 기도.     

정말 신기한 것은,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는 로또 1등 당첨이라든지 미래 건물주가 되게 해달라는 등 오히려 현실에서 자주 이야기하던 일확천금의 행운에 대해선 이 순간만큼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기도였다. 가장 보편적이고 너무나 평범해서 뻔하게 잊고 지냈을 법한 그런 기도.

'나' 보단 '내 주변'을 위한 기도.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이 어떤 대가성을 원하는 것이 아닌, 순수함 그 자체의 기도.

이 진지함을 표정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꼭 감은 눈으로 온갖 인상을 썼을법한 기도.


물어보진 않았지만 옆의 친구의 기도도 비슷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성당을 채운 몇몇의 외국인 관광객들의 기도들도 역시.



Toledo Catedral




톨레도 대성당을 나와 버스 정류장까지의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이미 마음은 꽤나 빼곡하게 가득 찼다. 뱉은 기도만큼의 무언가가 다른 형태로 재워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굳이 담으려 애쓰지 않았다. 화선지에 먹이 물들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 안에 스며들게 내버려 두었다.

 

더 이상 스며들 것이 없을 정도로 짙게 배었을 때, 톨레도를 나섰다.

이내 아쉬운 마음을 마드리드의 밤이라는

또 다른 기대감으로 채우고서.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Spain, France]                   by.mind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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