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의 자수 Jan 27. 2022

그해 우리는...웅이는 왜 건물만 그렸을까? (대상관계

웅이(고오 작가)는 왜 건물만 그렸을까?


 여름날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청량한 햇살처럼 풋풋한 사춘기 시절의 사랑이야기

 <그 해 우리는> 드라마가 어제 막을 내렸다. 사춘기 언젠가의 그 시절, 찬란하고 아련했던 첫사랑을 떠올리게 해 준 것만으로 충분히 감성적인 드라마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우리 마음을 위로했던 건, 주인공들의 이야기(narrative) 아녔을까. 가난하고 초라했던 나의 삶이 구질구질해서 남자 친구들에게 이별을 고했던 나의 이야기가 연수에게 담겨 있었다. 홀로 생계유지를 하느라 밤늦게 돌아와 눈길조차 줄 여유가 없었던 우리 엄마. 그리고 따뜻한 엄마의 품이 못내 그리웠던 나의 이야기가 김지웅에게 담겨 있었다. 버림받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던 20대의 나의 이야기가 최웅에게 담겨 있었다.   


 고오 작가의 그림에는 사람을 볼 수 없다. 건물, 나무, 집 그림만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변하지 않고 흐르지 않는 걸 사랑한다.

 사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도 시간도 내 작품엔 없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자신을 버리고 떠나간 첫사랑 국연수에 대한 원망과 상처가 담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도 건물 그림을 주로 그렸다......

고오작가




그는 왜 움직이지 않는 건물 그림만 그렸을까?

 사람은 생후 18개월 즈음, 대상 영속성(Object Permanence)을 갖게 된다. 대상영속성이란,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더 이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찾아 나서는 능력이다. 처음 아기를 키웠을 때를 생각해보면 난감한 순간이 여러 차례 있을 것이다. 가장 기억나는 건, 똥이 너무 마려운데 아이가 아이 때문에 화장실을 가기 힘든 순간이다. 자기 눈앞에서 엄마가 사라지면, 엄마가 완전히 사라진 것인 양 대성통곡하며 울어대는 아이로 인해 난감했던 순간. '엄마 똥도 못 싸게 하면 어떡해?'라고 볼멘소리를 내면서도 우는 아이를 어찌할 수 없어 아이를 안고 화장실을 가곤 했다. 아직 대상영속성이란 인지적 능력을 지니지 못한 아이는 잠깐의 헤어짐이 온 세상이 무너질 듯 두려운 경험으로 다가온다. 아주 잠깐도 견디지 못했던 아이는 자라면서 엄마가 내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찾아 나설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런 인지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아이는 자라면서 정서가 버무려진 대상항상성(object constancy)을 지니게 된다. 대상항상성은 중요한 애착 대상인 엄마가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는 심리적 상태이다. 매일 같이 엄마 옆에 있고 싶은데 엄마는 일을 하러 간다. 엄마가 비록 지금 내 곁에 없어서 나를 좌절시키지만, 내 눈앞에 보이지 않아 속상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여전히 존재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믿는다. 아침마다 헤어졌지만, 저녁이 되면 다시 돌아와 나를 안아주고 사랑해주는 엄마와의 좋았던 관계 경험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충분히 좋은 관계 경험들이 쌓여야지만, 아이는 화나거나 엄마에게 실망해도... 엄마와 떨어지게 돼도... 좋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렇게 대상항상성이 획득되면 아이는 엄마가 없는 동안에도 심리적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엄마와 한동안 떨어져 있게 돼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난다. 이 대상항상성은 한 사람의 인생에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웅이는 부모와 좋은 관계 경험이 없었기에 대상항상성을 획득할 수 없었다. 엄마는 없었고, 아빠는 무참히 나를 버렸다. 어린 시절, 길바닥에 누워 아주 높은 건물 층을 세워보라던 아빠는 아이만 남겨두고 그렇게 떠나갔다. 버림받은 웅이는 얼마나 세상이 두려웠을까? 버림받은 웅이는 얼마나 사람이 무서웠을까? 버림받은 웅이는 얼마나 아빠가 원망스러웠을까? 웅이는 그렇게 '버림받은 아이'라는 자기표상(self-representation)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사람에 대해서 '떠나는 존재, 나를 버릴 수도 있는 존재'라는 대상표상(object-representation)을 지니게 되었다. 연수가 이별을 고했을 때, "넌 꼭 힘들 때 나부터 버리더라. 내가 그렇게 제일 버리기 쉬운 거냐"라고 물었던 그의 질문은 겨울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드러난 그의 내면이다.


그해 우리는

그렇게 그리게 된 그림이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는 건물 그림이다. 사람은 변하고 떠날 수 있다. 사라질 수 있다..... 버려진 아이, 엄마로부터 따뜻한 위안이나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무생물에 관심을 더 갖게 된다. 사람에게 상처받은 아이는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접고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람은 슬프고 힘든 나를 위로할 수 없는 존재, 다가가면 뒤로 물러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웅이는 부모와의 버려진 관계 경험, 첫사랑과의 이별 경험으로.... 사람에게서 더욱 멀어져 갔다.


텅 빈 그림,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어린아이의 낙서

 "다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마주할 자신이 없거든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웅이는 애정을 표현하는 따뜻한 양부모님을 만났지만, 또다시 버려질까 두려웠다. 죽은 자식을 대신한 '나'란 존재가 사랑받기 위해, 크게 욕심부리지 않았다. 조용히 그 자리를 지켜냈다. 따뜻한 양부모님을 닮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그 속에 자신을 가둬버렸다. 완벽한 가족에 어울리는 가족이 되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들키지 않기로 했다...... 는 대목에서 그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눈물이 핑 돌았다.


회피 애착의 많은 아이들은 '거짓 자기(A False self)로 살아간다. 상처를 받거나 좌절된 상황에서도 고통을 표현하지 않는다. 웅이처럼 그저 묵묵히 감내해낸다. 누아가 그림을 훔쳐도, 비난해도 그저 가만히 있는다. 인기 있는 건물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지만, 불면증에 시달렸다. 따뜻한 사랑과 애정을 쏟는 양부모가 있었음에도 자신을 '죽은 아이를 대신하는 아이'로 여겼던 웅이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틀에 맞춰 생활한다. 자발적이고 살아있는 참 자기(A true self)로 살지 못하고, 마치 연극을 하듯 거짓 자기로 살아왔다.


겉으로 보인 웅이의 모습은 어떠한 공격에도 침착해 보였지만, 그의 내면에는 힘들 때 의존할만한 누군가를 찾지 못하는 나약한 아이가 있었다. 그런 모습이 결국 세상에 드러나고 말았다. 경쟁상대였던 누아는 텅 비어 있는 그림이라고 비난하였고, 평론가도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어린아이의 낙서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하였다.



그해 우리는 쫑쫑이

참자기(A true self)를 찾아 떠나는 웅이

 웅이는 강아지 쫑쫑이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산책로에서 버림받았던 잔인한 트라우마로 인해 쫑쫑이는 그토록 좋아하는 산책을 하지 못한다. 웅이 역시, 잔인한 세상 속에 홀로 버려질까 두려워한 쫑쫑이처럼 또다시 버려질까 두려워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웅이는 자기처럼 여겨졌던 쫑쫑이를 찾아간다. 시름시름 앓다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쫑이가 다른 이들과 신나게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스스로 극복한 쫑쫑이를 보고 "배신자"라고 말하며 피식 웃는다. 그의 얼굴엔 아지랑이처럼 용기가 피어오른다.


그렇게 웅이는 사랑하는 연수에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버림받은 그날의 상처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마음을 이야기하였다.


"보고 싶었어. 연수야....

나 좀 계속 사랑해 줘. 놓지 말고(버리지 말고) 계속 사랑해. 부탁이야."



그해우리는


그리고 참자기를 찾는 여정을 시작하였다. 자기만의 고유한 방식과 속도에 맞춰 한 걸음씩 나아간다. 드디어 인생에서 처음 욕심내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였다. 누군가의 요구가 아닌, 자발적인 충동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최웅과 국연수. 각자의 걸음으로 세상으로 나가지만, 서로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준다....

이들이 마지막 회기에 보여준 꿈과 사랑

이것이 참자기의 살아있음(Aliveness)과 관련된 모든 경험이지 않을까? 

그는 '움직이지 않는, 변하지 않는 건물'만 그리는 것에서 벗어나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인물도, 변하는 사람의 감정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그 해 우리는.. 드라마가 우리에게 힐링으로 다가오는 건.. 우리 각 사람에게 필요한 상처를 치유하고,  참자기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섬세하게 잘 그렸기 때문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이코지만 괜찮아> 드라마를 통해 보는 정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