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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Jul 10. 2022

사십춘기가 사춘기를 다시 만나다


먼지와 때가 켜켜이 쌓인 상자를 열었다.

오랫동안 주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홀로 잠자고 있던 나의 이야기들.

이 이야기들을 마주하고 싶었던 건..

사춘기 증상이 나날이 심해지는 딸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싶어서다.


갑자기 멀리 떠나고 싶다고 외갓집에 가자던 아이.

찬바람이 싸늘하니 마음에 스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사춘기 아이를 만난다.


오랜만에 인사동 아름다운 길에서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해도 휙 하니 돌아서서 앞서 가버리는 아이.

사진 찍는 것도 귀찮고 엄마의 말이 다 귀찮은 사춘기 아이를  만난다.


아기자기한 레이어디 반지를 끼고 좋아하는 엄마를 보며 "별론데" 찬물을 확 끼얹는 아이.

시니컬 하니 예쁜 것도 아름다운 것도 없는 듯 자기 마음에 갇힌 사춘기 아이를  만난다.



사춘기 시절, 그때의 난 어땠을까?

가시 돋친 공처럼 톡 쏘아붙이며 어디로 튈지 몰라 서성였던 아이.

세상의 부조리함에 불현듯 화를 내며 분노했던 아이.

매일 일기장에 울먹이며 글을 쓰고, 친구와의 교환일기에 친구의 편지에 웃던 아이.

작은 일 하나에 마음이 흔들려 울며 웃었던 아이.


그 아이는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다.

내 안의 켜켜이 묵은 앙금과 어설픔, 가시를 걷어내고

어떤 일에도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떤 일에도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를 지닌 어른이 되고 싶었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 혼자서도 우뚝 설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 그런 어른이 된 사십춘기의 나는 여전히 거친 면도 있고, 여린 면도 있다.

물론 예전보다 덜 운다. 예전보다 힘든 일이 생겨도 조금은 덤덤하다.


어찌 되었건...

둥글고 둥근 마음을 지닌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둥글고 둥근 배와 몸통을 지닌 아줌마가 되었다. 

아 슬프다.


20년도 더 지난 사춘기의 나를 만나면.. 사춘기 우리 딸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까?

20년도 더 지난 사춘기의 나를 만나면.. 다시 반짝임을 찾을 수 있을까?


20년 전의 나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끝없이 날이 서 있던

어릴 적 나의 소원은

내 몸에 돋은 가시들 털어내고

뭐든 다 괜찮아지는

어른이 빨리 되는 것

모든 걸 안을 수 있고 혼자도 그럭저럭 괜찮은

그런 나이가 되면

불쑥 짐을 꾸려 세상 끝 어디로 떠나려 했지


사람을 떠나보내고

시간을 떠나보내고

그렇게 걷다 보면 언젠가

홀가분해질 줄 알았네

그래도 되는 나이가

어느덧 훌쩍 지나고

웬만한 일엔 꿈쩍도 않을 수 있게 돼버렸지만

무난한 하루의 끝에

문득 그리워진 뾰족했던 나

그 반짝임이


사람을 떠나보내고

시간을 떠나보내고

그렇게 걷다 보니 이제야

나를 마주 보게 되었네

울어 본 적이 언젠가

분노한 적이 언제였었던가

살아 있다는 느낌에

벅차올랐던 게 언젠가

둥글게 되지 말라고

울퉁불퉁했던 나를 사랑했던 너만큼이나

어쩌면 나도 그랬을까



내 안의 움찔거리는

그게 뭔지는 몰라도 적어도

더 이상 삼키지 않고

악을 쓰듯 노랠 부른다


https://youtu.be/f3pnrg2gB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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