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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Nov 03. 2022

친절: 태권도 사범님은 운전도 잘하시지!!

누군가의 친절이 다가오는 날



11월.


이맘때가 되면 몸과 마음이 가라앉는다.

열정과 패기로 온몸 던져 한해를 투혼 한지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응이다. 20대 젊음도 아니고 '마흔 넘어선 조심 해야지!' 하면서도 아직도 청춘인지 알고 까불어댄다.



올해는 해도 해도 너무 했다. 책 출간, 박사논문 마무리와 졸업, 강의.. 쉴 새 없이 바빴다.

역류성 후두염, 눈밑 떨림이 괜찮아질 생각을 안 한다. 스트레스와도 관련 있는 몸을 달래기 위해 상담을 신청했다. 감사하게도 감정 노동이나 공감 피로에 시달릴 가능성이 많은 교사에게 무료상담의 기회가 있다. 교직원 공제회, 교직원 마음 상담 등 5회기씩 상담이 제공된다. 교직원 공제회는 너무 늦게 알아봐서 올해 예산이 벌써 소진되었고, 교직원 마음 상담으로 5회기 상담을 신청했다. (올해 사업은 11월에 마감된다고 하니, 서둘러 신청하세요.)



학교현장에서 아이들을 상담하는 나도 처음 누군가를 만나 마음속 언어를 내보이는 일은 참 쉽지 않다.

"무슨 말을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반자카파, 널 사랑하지 않아 중에서)

노래 가사가 절로 떠오른다. 어떤 이야기로 시작할까?

상담실을 찾아가는 길도 낯설고, 내 안의 언어를 꺼내는 일도 낯설다.

낯섦은 곧 채워짐으로 돌아올 거라 믿으며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속마음을 꺼내놓기가 이리도 어려웠던가?


주차장이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 좁디좁은 통로와 구불구불한 길. 가는 길이 험난하다. 지하 2층, 저 밑바닥 끝까지 겨우 도착했다. 겁도 없이 들어왔다. 앞쪽에도 차가 서있고, 주차할 수가 없다. 뒤차가 따라 들어와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갇혀 버렸다.


약속한 상담시간이 되었다. 지하에 갇힌 차도, 내 마음도 꺼낼 수가 없을 것 같아 울상이 되었다.

'힘을 내보려고.. 온 건데.. 시작도 전에 집에 가고 싶어. 아 내 맘도 몰라주고.'





그때 그 순간!

"여기 세우려고 하시는 건가요?"

"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제가 해 드려도 될까요?"

태권도 소년이 나타났다.

탕준상과 같은 헤어스타일과 눈매. 참 잘생겼다.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형..


구세주가 나타났다.

해 드려도 될까요가 아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이다.

그때부터 내 차를 뺐다가 태권도 차량을 뺀다.

쉽지 않은지 여기저기 전화를 돌린 후 태권소년 2명과 태권 아저씨(관장님?)가 나타나셨다.

내 눈엔 태권브이 저리 가라다.


해주시는 것도 감지덕지한 판에, 정중하게 내게 의견을 구하며 돌렸다 뺐다를 반복해서 겨우 주차를 했다.

상황을 보니, 태권도 차량 두 대를 세워야 했고... 그러다 보니 주차할 곳을 가로막기 일쑤였나 보다.

"정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인사를 전하니

"아.. 아닙니다. 진짜 아닙니다. 바퀴는 지금 틀어져 있으니 나중에 나올 때 조심히 나오세요. 그리고 혹시 저희 태권도 차가 가로막고 있다면 꼭 연락 주세요!"


매일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이라면 지치고 짜증 날 법도 한데 끝까지 허리 숙여 인사하는 태권도장 사범님들. 이분들에게 배우는 아이들이라면 예의 바르고 씩씩할 것 같았다.

안도감에 엘리베이터를 타니 내 허리춤만 한 6살 내지는 7살로 보이는 꼬마 아이가 서있다.

아니나 다를까.

씩씩하게 큰 목소리로 인사한다. "사범님! 안녕하세요. 어쩌고 저쩌고!"


그것도 허리를 90도 숙여가며.

서로 마주한 어른과 아이는 그렇게 서로를 존중하며 90도 허리 인사로 반가움을 표현하였다.



나또한 그들의 친절로 이미 마음의 무거움은 반쯤 덜어내고 용기 있게 상담실에 들어섰다.

우리 마음은 이리도 쉽게 무너졌다가 누군가의 친절로 금세 살아 돌아온다.

세상이 이렇게 작은 일상으로 가득 찬다면 내 마음속 소진도 금세 회복될 것 같다.



누군가를 향한 친절과 예절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수업을 하러 가기에 바빴을 사범님들.

이 좁디좁은 주차장에 차를 넣었다 뺐다를 수도 없이 반복할 오늘 하루가 그들에겐 어떤 하루일까?



지겨울 법도 한 일상에도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방법을 태권도라는 운동에서 배울 수 있다면...

마흔이 넘은 나여도 기꺼이 배우고 싶다.

친절과 예절을 배우는 나이는 늦는 것이 없으므로.


나에게도 있을 선하고 다정한 친절을 내 주위 가까운 이들뿐 아니라,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도 베풀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이 들어갈수록 움츠려드는 관계와 마음을 벗어제끼고 당당하게 다가가고 싶다.


..그리고 ...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친절하고도 튼튼한 태권소년들이 이태원 1번 출구, 핼로윈 거리를 지켜주었다면.. 그랬더라면...

여전히 마음은 그곳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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