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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Nov 10. 2022

엄마인 나도, 혼자 여기 오면 더없이 좋겠어

마흔을 살게 하는 다정한 것들

가을 날씨토록 포근하고 따뜻하다니 가을을 타야 할 남정네들이 서운해할 그런 날씨다. 낙엽이 쓸쓸하게 지기는커녕,  햇살에 반질반질 아름답게 바삭거린다.


오랜만의 출장에 여유롭게 길을 나섰다. 일찍 도착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어  숲 속 마을 카페에 들어섰다. 고급스러운 가을 재즈 선율이 일렁이는 실내에 자리 잡을까?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실외에 자리 잡을까?


나의 선택은?

햇살 아래 앉기로 했다. 가져온 책은 덮어두고 하늘을 바라봤다. 얼마만의 광합성인지 시들시들해진 얼굴은 조금씩 하늘을 향하기 시작했다.



하늘색 도화지 위에 하얀색 파스텔이 번져가고, 초록의 세심한 솔잎들이 자유분방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속으로 되뇌며 눈을 감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이 공간에 호로롱호로롱 산새들만 소리를 낼뿐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애들아 엄마. 여기 봐. 사진 찍자. 하나 둘 셋!!"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에게 포즈를 요구하며 어렵사리 사진을 찍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두 아이가 다 잘 나오는 사진을 건지는 건 정말 어렵다."

숲 속에 어울릴만한 순진한 아이들의 예쁜 모습을 담겼다는 일념 하의 젊은 엄마들을 보니 싱긋 웃음이 나왔다.

딸들의 어릴 때가 떠올랐다. '우리 딸들은 지금쯤, 학교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분들도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다른 포토존을 향해 걸어갔다.

다시 혼자만의 시간.

온 세상이 멈춘 듯 조용한 가을 햇살 아래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 마냥 널브러진 나.

말랑말랑 말갛게 익었으려나.



이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어째 순서가 뒤 바뀌었지만, 국밥이라도 한 그릇 먹어야겠다 싶었다.

천천히 느림보처럼 걷고 있는데 또다시 마주한 젊은 엄마들.

갑자기 한 분이 다른 엄마에게 속삭인다.

"난 여기 혼자 올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아....."


광합성 중이었던 나를, 말랑하게 익어가던 나를 눈으론 힐끔 보았지만, 마음으론 뚫어지게 쳐다봤었나 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 또한 혼자 있는 여인네를 보면 그토록 부러웠다. 친구랑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사치일 뿐, 그저 혼자서라도 조용히 카페에 가고 싶다 생각했다.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그때의 나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난 후, 조금은 여유로워질 마흔의 시간을 그리워했다. 분명히!


그런데 사람 마음은 이토록 간사하다.

마흔이 막상 되니, 내 옆에서 떠나진 않던 아이들 웃음소리가, 아장아장 걷던 소리가 그립다.

젊은 두 엄마의 날렵함(아이를 좇아 다니던)과 생기가 부럽다.

사람은 늘 자신의 시간보다 다른 누군가의 시간을 동경하고 부러워하나 보다.


마흔이 된 나를 누가 부러워할까 싶었는데 이렇게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구나.

지금 이 세월도 누군가에겐 부러움의 시간이요, 지난 후에 언젠가 내가 그리워할 날이기도 하겠구나.


그러니. 지금의 시간을 소중히 아끼면서 보내야겠다.

마흔을 살게 하는 다정한 시간, 혼자 있는 시간을 만끽하면서 말이다.


세월이 어느덧 이렇게 흘러 혼자서 걸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북적한 식당 안에 빼곡히 자리한 작업복 아저씨들 틈에서도,, 혼자서 국밥을 씩씩하게 먹을 수 있는 베포가 생겼다.

마흔, 참 구수하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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