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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Oct 25. 2022

고작 10개월, 우리가 함께 한 시간


 



아빠 입장에서 생각하면...  둘째 딸 얼굴을 겨우 10개월만 보고 죽었다고 생각하면 왠지 서글프다. 누워서 옹알거렸을 내가, 갓 뒤집기를 하고 기어 다니며 말썽을 부렸을 내가, 퇴근하고 들어오면 오뚝이처럼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기어갔을 내가 얼마나 눈에 밟혔을까? 마지막까지 차마 눈을 감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빠가 세상과 인사하던 그때를 떠올려 보면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다. 매섭고도 차가운 병실의 공기가 온몸으로 타고 들어와 자꾸 움츠려 든다.     

       

아빠가 죽게 된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된 건 내 나이 서른이 훌쩍 넘어서이다.      

굳이 묻지 않았고, 굳이 얘기하지 않았다. 

생애 첫 기억을 할 수 있는 다섯 살 나이엔 이미 아빠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떠올릴 추억거리도 없었다. 가족의 불문율처럼 이미 한참 전에 떠난 아빠에 대해 우린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궁금해하지도,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엄마는 엄마 나름의 삶을 살았고, 우린 우리 나름의 삶에 익숙했기에 우리 곁에 없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남편 품에 꼭 안겨 새근 잠든 아이를 보고 엄마는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너희 애들 보고 정말 좋아하셨을 거야!'란 말과 함께 아빠 이야기를 꺼냈다.      

30년 , 간 수도 없이 상상에 상상을 더했던 시간이 마침내 마무리될 때가 되었나 보다.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인즉슨 이러했다.

      

 나의 아빠는 포클레인 기사였고, 서툰 일이었지만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셨다고 한다. 어떻게든 쪽방을 벗어나기 위해 회사에서의 일뿐만 아니라, 퇴근 후 다른 현장을 찾아 일을 돕곤 하셨단다. 그날도 어김없이 저녁에 다른 일을 하셨고 피곤했는지 아니면 실수였는지... 포클레인이 앞으로 꼬꾸라지면서 사고가 났다고 한다.... 처참했기에 엄마조차 시신을 볼 수 없었다고...

            

 30년 넘게 아빠는 왜 돌아가셨을까 궁금했다. 

단순히 교통사고라고 생각했는데 이보다는 더욱 묵직한 재난이었다. 엄마에게 묻지 못했던 이야기가 흘러 넘 칠 순간, 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우스갯소리로 '아빠가 지금까지 포클레인 기사로 살아계셨음 우리 부자였겠네.', '일찌감치 아파트 살아봤겠다.'란 말을 흘리며 철없이 웃었다. 나이 서른이 넘은 내가 하는 반응이 고작 이것밖에 안됐다니 참 안타까울 뿐이다.      


한동안 포클레인에 시달렸다.

... 아빠가 돌아가신 이유를 알게 된 후, 한동안 아파트 공사 현장의 주황색 포클레인만 봐도 온몸이 뻣뻣하게 긴장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가 있지도 않았던 그때의 그 장면들이 눈앞에 그려져 눈을 감고 또 감았다. 한참을 눈을 감고 머물러 있어야 했다. 도망갈 수도, 그렇다고 거대한 포클레인과 싸울 수도 없어 그저 온몸이 얼어붙은 채로, 그 자리에 선채로 침을 꼴깍 삼킬 뿐이었다.      


인간의 기억이란, 인간의 생각이란 참 알 수 없다. 인간의 뇌란 참 알 수가 없다. 어제까지 별생각 없던 포클레인이 뭐라고 이토록 두려워진단 말인가.


나의 뇌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그렇다. 트라우마 공포 앞에서 우리 뇌는 이렇게 작용한다.)

뇌에서 생존을 담당하는 변연계는 감정, 무의식적 반응, 가장 중요한 생존 본능의 제어판 구실을 한다. 그리고 전두엽은 언어, 추상적 사고, 이성, 의식뿐 아니라 경험을 관리하고 해석한다. 포클레인이 트라우마로 감지되는 순간, 나의 변연계가 격렬하게 작동하게 된 것이다. 보통 변연계가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생존본능이 작동되면서 위험을 준 위험물에 대해 투쟁하거나 도피하거나 얼어붙게 된다. 

 

 나에게 포클레인이라는 위험물은 투쟁하자니 투쟁조차 할 수 없었고(보이는 족족 부숴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포클레인을 보고 놀라서 도망치기엔 어쩐지 이상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얼어붙는 것, 숨쉬기도 힘들어지고 경직되어 몸이 굳고 생각이 굳어버리는 것뿐이었다. 

 

이 상태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외상 후 생존자들이 경험하는 트라우마가 나에게도 생긴 것이다. 

다행히 아이와이 놀이를 통해, 모래 속에 포클레인 장난감을 처박는 일을 하면서 조금씩 무감각해져 갔다. 그나마 나 같은 경우엔 직접 마주한 광경이 아니니 시간의 흐름 속에 괜찮아졌지만, 직접 목격한 경우라면 아마 달랐을 것이다. 

 

세상에 죽음의 이유는 흘러넘친다. 사고도 흘러넘친다.      

그 사고 속에 그래도 남은 우리 가족은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외상 후 생존자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고작 10개월이지만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아빠는 내 마음에 살아 있다. 10개월간 아들 노릇을 할 딸을 기대하며 예뻐해 주셨던 아빠의 사랑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거나 죽을 경우 아동은 이제 더 이상 그 사람과 함께 나눌 기회가 없다는 냉엄한 진실에 직면하게 된다.. 위니캇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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