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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Jan 17. 2023

사춘기 아이와의 관계에서 알아차림을 한다는 건

<깨어있는 양육>




어제 갓 졸업식을 거행한 아이와 교복점에 들어섰다.


허리까지 길렀던 긴 생머리를 싹뚝, 귀밑까지 자르고 교복을 맞추러 갔던 그날의 첫 설렘과 떨림이 여전히 아득하게 남아있는데... 어느새 나만큼 자란 아이가 교복을 맞추는 날이 오다니, 이또한 감회가 새롭다.


"이건 예중 교복인데?!"


통학거리가 꽤 먼 중학교에 배정된 탓에 불만 반, 걱정 반 섞였던 아이의 볼멘소리는 교복하나에 곧장 생기가 돌았다. 이처럼 단순하고도 행복한 사춘기라니.


교복을 입혀보니, 이제 진짜 언니같다.



내친 김에 단둘이 데이트에 나섰다.

유명 짬뽕 순두부 맛집을 찾아 옆 자리 손님과 다닥다닥 붙어 앉은 자리.

맛있는 짬뽕 순두부 한그릇에 웃을 수 있는 이들과의 복닥거림은 나쁘지 않았다.

우리도 그들의 분위기에 취해, 한껏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건넨 한 마디에 아이는 갑자기 기분이 상했다.


그 자리에서 화난 목소리로 엄마에게 따져대는 아이.

이처럼 변덕스럽고 화가난 사춘기라니.

고작 양 옆자리와는 10센치 남짓한 거리였는데...

"난 엄마가 그러는게 정말 싫어." 라고 끊임없이 투덜거렸다.

옆자리 사람들이 다 들릴 정도로. 내 얼굴은 민망함으로 점점 타올랐다.


이에 질새라, "네가 이렇게 엄마에게 버릇없이 한다면 네가 원하는 걸 해줄수가 없어." 라고 협박아닌 협박을 내뱉었다. 옆자리에 사람이 바글바글하니, 소리는 지를 수 없었지만 잔잔하고도 매서운 톤이었다.


힐끔힐끔.

양 옆자리의 눈길이 느껴진다.

'저 엄마는 아이 하나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나? 저렇게 버릇없이 해대는데...'

'아이 낳기가 이래서 무섭다니까.'

'사춘기 애들은 무서워서 건드리는게 아니야.'


............


내면에서는 이미 패배자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내가 이렇게 키운게 아닌데.... 이러려고 여기까지 온게 아닌데...'

유명맛집이라 그런지, 긴 줄까지 마다않고 서있는 이들은 화기애애한 행색이었다. 그 사이 불청객처럼 낑겨서는, 좁디 좁은 식탁에 마주앉은 우리에게는 서늘한 냉기가 흘렀다.


............ 이 자리에 계속 앉아 있다간, 서로의 골이 깊어질 것 같았다.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





밖으로 나오니 겨울햇살은 모으고 싶을만큼 따사로웠다. 내 마음은 투덜투덜. 시큰시큰.

내마음과 상관없이 저멀리 수평선 만큼은 잔잔히 흘렀다. 그리고 이내 내 마음안에 ... 그대로 멈춰섰다.



짬뽕 순두부는 먹어야지.

다시 들어와 짬뽕 순두부에 고개를 쳐박는 순간, 아이가 말한다.

"엄마. 내가 엄마한테 여기서 버릇없이 대든건 미안한데.. 나도 엄마가 ~~ 해서 속상했어. 내가 지난번에도 과거 이야기는 하지 말아달라고 했잖아."

"엄마는 네가 걱정되서 그렇지."

"엄마가 나 믿는다고 했잖아. 지난번에도. "

"그럼. 엄마가 이제 진짜 널 믿어도 돼?"

"응"

"그럼 약속하자! 엄마도 널 믿을게."


짬뽕 두그릇을 사이에 두고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짬뽕 국물 한 입을 꿀꺽 삼켰더니 뜨거운 짬뽕 탓인지, 매콤한 짬뽕 탓인지 , 눈물이 찔끔 흘러내렸다.

어쩌면 안도의 눈물일 수도 있겠다.

서로 등돌리지 않아서... 다시 회복할 수 있어서...


"깨어있는 양육은

아이와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둔 채

알아차림이라는 요소를 더하는 것이다.

.....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지적활동이 아니라

단순하고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순간순간의 교류이다.   깨어있는 부모 중에서"



이 모든 일이 불과 한 시간 내에 일어난 일이라면 믿겠는가.


<깨어있는 부모>의 셰팔리 차바리 작가의 말처럼, 아이와의 관계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고, 순간순간의 교류 속에 시시각각 변덕투성이다. 깔깔 웃었다가, 버럭 화를 냈다가... 이런 순간이 시도때도 없이 찾아온다.


이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바로, 알아차림이다.


알아차림(awareness)이란 상담이론 중 게슈탈트와 수용전념치료에서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개념이다. 알아차림을 쉽게 설명하자면, 어떤 상황에서 나의 마음(감각, 생각, 감정, 충동, 욕구 등)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좀좀 더 학문적인 설명을 더하자면, (1) 내가 느끼고 있는 것, 감각적인 것 혹은 생각하는 것을 아는 것 (2)내 존재에 닿을 수 있고 내 주변이나 내부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알고 환경과 타인 및 자신과 연결할 수 있는 능력 (3) 바로 이 순간에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Clarkkson & Mackewn, 1993). 여기에 수용전념치료에서는 비판단적인 태도를 강조한다. 비판단적인 태도로 나의 마음(감각, 생각, 감정, 충동, 욕구 등)을 알아차리고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아이와의 갈등 상황에서 나의 마음에 대해, 아이에 대해 알아차림을 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엄마의 걱정을 오히려 반격하며 대드는 아이를 향해 화가난 마음에 사로잡혀 가시돋힌 말들을 내뱉다보면 화는 겉잡을 수 없이 더욱 커져만 가고, 알아차림은 어려워진다.


그때 그 순간, 잠깐 멈춰서본다.

'나는 아이의 태도에 왜 이렇게 화가날까? 얼굴이 왜 이렇게 달아오를까?'


남에게 피해주는 것을 싫어하는 나,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초점을 맞추는 나, 아이를 잘 키웠다 으시대고 싶은 나가 오버랩됐다. 이미 내 관심은 아이가 아닌 주변 사람의 눈초리였다.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외면하고 내 체면을 먼저 차리고 있다니....


이렇게 알아차리자 날뛰던 마음이 좀 진정되었다.

아이의 눈을 바라본다. 아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엄마와의 데이트가 좋아서 재잘거렸을텐데...


이제야 못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우리에겐 늘 기회가 있으니까.

모난 모습을 보여도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회.

모난 모습을 보여도 서로 용서하고 안아줄 수 있는 기회.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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