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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Mar 19. 2023

그녀도 누군가의 엄마였구나.



분주하고도 정신없는 새 학기를 반영하듯,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푸석푸석해졌다. 윤기라곤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머리카락에 생기를 부여하기 위해 오랜만에 미용실로 향했다. 햇살이 영글어지는 이 봄날, 상큼한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잰걸음으로 달려간 10차선의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데 내 옆에는 하늘색 리본, 검은색 트렁크를 손에 쥔 어여쁜 그녀가 서있었다. 화장 하나 하지 않고 머리를 질끈 묶은 차림새의 아줌마와 상반되게 아리따운 그녀. 그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한항공의 승무원이었다.



'아. 주말 이른 아침인데도... 참 고운 그녀네. 예쁘다.'

대놓고 넋을 잃을 순 없어, 힐끔힐끔 쳐다봤다. 아름다운 자태가, 고운 그녀의 화장기 어린 눈이 부러웠다.

"00야! 엄마야~"
고운 그녀는 쉴 새 없이 자동차가 쌩쌩 거리며 달리는 10차선 도로의 정반대 끝에 서있는 누군가를 향해 힘껏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횡단보도 끝을 바라보니, 저만치 먼 곳에 5살 남짓한 사내아이와 젊은 아빠가 서있었다.

"엄마!"



아. 그녀도 누군가의 엄마였구나.

단정히 차려입고 비행을 가는 아가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비행을 마치고 부리나케 달려온 엄마였다.

이른 아침비행을 마치고 돌아왔다면 꽤나 피곤할 텐데 저 멀리 아이가 외치는 소리에도 소머즈처럼 듣고 대답하는 그녀였다. 연신 손을 흔들며 야속한 신호등이 재빨리 바뀌길,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신호등아 어서 빨리 바뀌어라. 파란 불아 어서 켜져라."

그녀의 손 흔드는 리듬에 맞춰 파란불이 켜지길, 목놓아 부르는 아이와 엄마가 빨리 만날 수 있길,

응원하고 또 응원했다.



......... "뚜뚜뚜뚜.. 뚜뚜 뚜두.." 드디어 파란불이 켜졌다.

검은색 캐리어는 그녀의 뜀박질에 맞춰 이리저리 흔들렸다. 마음 같아선 내가 끌고 갈터이니 어서 빨리 아이를 만나라고, 없던 오지랖을 부리고 싶었다.

허나, 엄마 들은 우싸인볼트가 아니던가.

그녀는 이미 나보다 앞서 달려 나가 아이를 만나 품에 꼭 안았다.

"엄마 빨리 오라고. 엄마 빨리와~~~그랬어. 00야"



몇일만에, 혹은 몇 시간만에 다시 만났는지 모르지만 .. 모자는 설렘 안은 기다림 속에 드디어 상봉했다.

아이는 아빠가 사준 장난감, 자랑거리를 늘어놓고, 엄마는 아이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며 고운 두눈으로 아이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드라마가 세상에 있을까?



..................

일하는 워킹맘의 발걸음은 늘 분주하다.

일하는 워킹맘에겐 늘 아이가 눈에 밟힌다.

그러함에도 아이와 떨어져 왜 일을 하느냐 묻는다면 그건.....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아이가 염려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누군가는 한없이 오르는 물가상승률이 덜컥 겁이 나,
도저히 외벌이로는 감당이 안되는 생활비에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기도 할테고..

누군가는 자신이 이룬 꿈을, 걷고 싶은 길을 차마 손놓을 수가 없어 일을 하기도 할테다.



...학계에서는 한국 가족을 둘러싼 사회변화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증가를 제일 먼저 손에 꼽는다. 아이들과 노인들에 대한 돌봄을 해왔던 여성이 일을 하면서 현대가족의 돌봄 기능에 적신호가 커졌다고 이야기하는 맥락에선... 어쩐지 일을 하는 여성의 한 사람, 일을 하는 엄마로서 불편함과 죄책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주말마다 수퍼비전을 받으러 다니던 몇년 전, 동기 한명이 '주말에도 아이를 두고 나와 아이에게 참 미안하다.'라고 이야기했던 날, 교수님이 "여기 모인 엄마인 우리 모두가 다 미안하지."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 한마디에 미안한 엄마인 우린, 훌쩍 거렸다.



얼마전에도.. 우리집 둘째가 "엄마는 우리를 두고 강의 다녀오면 미안하지 않아?"라고 묻는데....

참...

엄마는 미안함을 지닌 존재, 숙명인가보다.



.... 그러함에도 워킹맘으로 살고 있는 나.

그런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 여전히 불쑥 아이들에겐 미안하다.



... 아이들이 엄마의 빈 공백을 상처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훗날 엄마를 떠올렸을 때..

"우리 엄마 참 열심히 살았었지.
꿈을 향해 달렸던 열정적인 엄마였지.
누군가를 돕고자, 후학들을 열심히 가르치고자,
그렇게 외쳤던... '배워서 남주자'를 삶에서 실천했던 엄마였지.
뚜벅뚜벅! ... 곧게 곧게 걸어갔던 엄마였지.
그래도... 우릴 사랑했던 엄마였지."

라고 기억해준다면 .... 그럴수만 있다면 .... 더할나위 없겠다.



세상에는 ........

우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며 미용실에 나와 손님들의 머리를 예쁘게 매만져주는 미용사 엄마도 있을테고,

마음이 아픈 이들과 함께 마주 앉아 삶을 나누는 상담사 엄마도 있을테고,

내 새끼보다 더 많이 만나는 학교에서의 엄마가 되어, 학생들을 마음 다해 가르치는 선생님 엄마도 있을테고, 하루 종일 서있느라 부은 발을 밤마다 두드리면서도, 다음날 또다시 계산대 앞에서 서서 물건을 계산하는 엄마도 있을테다.





그녀들... 모두 오늘 밤만큼은 미안한 마음은 접어두고 곤한 단잠을 자길..

10차선을 마다하고, 높은 구두 굽에도 아이를 향해 씩씩하게 뛰어갔던 승무원 엄마도

오늘만큼은 아이와 나란히 누워 행복한 꿈을 꾸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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