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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Nov 05. 2021

마흔에는 단발머리

With 그림책 "나는 한 때(지우 그림책/ 반달 그림책)"

“00 샘~ 까악. 대박. 야 쌤 머리 잘랐어.”

급식실에 밥 먹으러 갔더니 2학년 아이들이 소리 지르고 난리다. 짱 박혀 있는 상담실에서 지내느라 이렇게 많은 아이들의 관심을 받을 일이 만무한데 오늘 점심시간을 잘못 선택했다. 일찌감치 내려와 먹을걸. 가뜩이나 어색해진 헤어스타일이 민망할 지경인데 속도 모르는 아이들은 내가 밥을 다 먹고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샘~ 완전 완전 잘 어울려요.”

“아니야. 샘은 언넝 기르고 싶어. 맘에 안 들어.”

“아니에요. 진짜. 계속 단발해요. 긴 머리보다 백배 잘 어울려요.”

단발로 머리카락을 자른 내 속사정은 모른 채 아이들은 연신 예쁘다고 난리다. 그래도 뭐 울며 겨자 먹기로 자른 머리가 잘 어울린다니 다행이다 싶다.      


내 사십 인생에 단발은 단 3번뿐이었다. 버티고 버티다 이번에 큰맘 먹고 단발로 잘랐다. 내가 머리를 자르게 된 배경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만 40세 생일에(이젠 만 나이로도 40) 친구들과 모여 밥을 먹었다. 친구 한 명이 묶은 내 머리를 보더니 “우리 00이 머리가 진짜 많이 없어졌네.”라고 내내 말했다. 머리 묶은 걸 보니 한 줌도 안된다며 작년에 비해 너무 머리카락이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만났을 때도 이야기한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스트레스였다. 아침에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하면 한 줌. 저녁에 자고 일어나면 침대 위 한 줌. 아 내가 머리카락이 이렇게나 빠질 줄 몰랐다. 남편은 속도 모른 채 여자들만 있어 머리카락 투성이라며 청소하기 힘들다고 투덜거린 지 꽤 됐다.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탈모에 관한 검색을 해보니 머리를 짧게 자르란다. 40에도 긴 머리를 하고 싶어 최대한 최대한 미룬 건데... 친구가 볼 때마다 머리카락이 없다고 하도 이야기해서 잘랐다. 큰 맘먹고 잘랐다. 여자의 아름다운 변신을 위해 단발을 한 게 아니라, 요즘 유행한다는 단발병에 걸려(아이들 말로는 중딩은 단발병에 자주 걸린단다.) 긴 머리카락을 자른 게 아니라.... 머리카락이 빠져 어쩔 수 없이 잘라야 한다니 마음 한편이 괜스레 슬펐다. 이런 게 나이 먹는 거구나 싶어 괜스레 서글펐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 별명은 말총머리였다. 한 주먹 거리는 된다며 머리숱이 많다고 다들 부러워했다. 그때는 머리숱이 많은 게 왜 부러운 건지 잘 몰랐다. 특히 어른들이 머리숱 많은 나를 부러워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분들은 40대였나 보다. 나처럼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고민 한가득인. 여하튼 초등학교 내내 긴 생머리를 유지하고 중학교 때 어쩔 수 없이 잘라야 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색함에 머리를 수없이 매만지고, 귀 뒤로도 넘겨보고 앞으로도 빼보고. 머리를 언제나 묶을 수 있을까 수없이 묶으려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엄마도 몇 년간 고이 길러온 내 머리카락이 아쉬우셨는지 뚝 잘라낸 머리카락을 달력 종이에 싸서 고이 모셔뒀었다. 이사 다닐 때도 가지고 다닐 정도로 애지중지하시다 언젠가 어딘가에 기증하셨다.     



그나마 두발 자유화였던 고등학교 때부터는 머리카락을 길렀다. 그러니 내 인생에서는 긴 머리카락이 친근하다. 23살, 사정상 몰래 사귀었던 남자 친구와 갑작스러운 이별에 충격받아 단발로 잘라보고(이때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뭔가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실연당한 주인공 행세하느라 긴 머리를 잘랐다.), 결혼 후 스프레이가 더덕더덕 묻었던 머리카락이 싫어져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의미로다가 단발로 잘랐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긴 머리를 유지했었는데..... 아이 둘 낳으면서 조금씩 빠진 머리카락이 40이 넘으니 더욱 볼품없이 빠진다. 머리카락이 빠져 단발로 잘라야 한다니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00 선생님이 단발로 자른 이유’를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다.  




머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니 그림책 <나는 한때, 지우그림책>이 떠오른다. 인생이란 길을 걸으며 시절에 맞게 머리카락, 헤어스타일이 변한 내용이 무척이나 공감됐다. 누구나 사과머리 시절, 쪽쪽이나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있던 아가 때 사진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사진을 발견하면 이렇게 커버린 내가 징그러울 정도로 귀엽다. 그래. 내가 그렇게 귀엽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 사춘기가 되었을 땐, 세상에 눈을 마주치기가 두렵기도, 세상에 반항도 해보고 싶었던 시절의 깻잎머리와 커튼 머리. 여자는 엄마가 되어 등에 업힌 아이에게 무참히 쥐어 뜯기는 고삐가 되었다가 .... 어느새 머리는 휑해지고 바람이 애꿎은 심술을 부릴 때면 한없이 작아진다. 아오. 요즘 머리 빠지는거 정말 고민인데 너무 리얼하게 담아서 폭소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언제나 삶에는 시절에 맞는 설렘이 있는 법일터. 간만에 외출로 우아한 기대를 담아 청춘을 돌려볼 때도 오겠지. 그렇게 평생 나와 함께 한 이 녀석도 무한한 변신을 하고 있다. 내 마음에 따라, 내 시절에 따라 이렇게 변해간다. 인생의 사유가 머리카락에도 담겨 있구나. 


나는 한 때
나는 한때



"그의 머리카락 숱은 적어지고, 나의 머리카락은 하얘집니다.

누군가의 머리카락은 색이 바뀌고, 

누군가의 머리카락은 여행을 떠납니다.

기억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좋은 것을 추억하려고 노력합니다.

'시간'을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기억하는 것만으 시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을 머리카락을 보며

한때 있었을 또는 한때를 맞이할 우리를 응원합니다. -나는 한때, 지우 그림책-


  

며칠 후, 선생님 한 분이 학생에 대해 상의하러 오셨다. 둘이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옆 방 사서 선생님이 상담실로 들어오셨다. 20대 중반인 젊은 사서 선생님은 저랑 이야기 중인 남자 선생님께 헤어스타일이 바뀌신 것 같다고 알은체를 했다. 선생님이 멋쩍어하며 이야기하신다.

“저 머리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요즘 머리가 엄청 빠져 가지고 안 그래도 신경 쓰이는데 이게 헤어스타일이 바뀐 걸로 보이는군요. 머리 빠져서 이래요. 그걸 이렇게 콕 집어서 이야기하시다니..”

우와. 반갑다. 동지다. 안 그래도 저보고 머리 왜 잘랐냐며 어울리네 마네 하던 분도, 남자 선생님들도 머리카락이 빠져서 고민하시는구나. 나도 질새라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저도 실은. 머리카락이 너무 빠져서 단발로 자른 거예요. 호호”

"에이~ 아직 풍성한대요 뭘~~~"

우리끼리 서로 자화자찬하며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순간, 20대  선생님은 당황한 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얼굴이 빨개지셨다.  


최근에 나온 에세이 책 중에 ‘40에는 긴 머리’라는 제목도 있던데 읽어보고 싶다. 어떻게 하면 40대에도 긴 머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영양제를 먹고 잔머리가 조금씩 나는 걸 보니 조금은 희망을 가져보고 싶다. 그 잔머리가 흰머리가 아니길 간절히 기도해본다.

그래도 정말 단발이 괜찮긴 한가보다. 나를 잘 따르는 몇 명 아이들이 나를 따라 긴 머리를 싹둑, 단발로 변신했다. 단발병이 유행이라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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