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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 자수 Nov 22. 2021

아이처럼 꿈꾸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마흔에 그려보는 나의 노년기 with 그림책 <내 안의 나무>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앙드레 말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고3 수능 시절. 다이어리에 손글씨로 쓰고 마음에 새겼던 명언이다. “꿈”이라는 단어는 고단하고 지친 수험생에게 매일같이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하루하루 꿈을 그리면 내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리라 생각했다. 진로를 준비하던 대학 시절. 싸이월드 미니홈피 프로필에 알록달록 색 글씨로 이 명언을 타이핑하고 삶에 새겼다. 미니홈피에 방문했던 중년의 어떤 분께서 프로필을 보고 ‘꿈만 꾸지 말고 이제는 꿈을 이루는 삶을 살라’고 하셨다. 이 말은 그때 당시, 나에게 참 무겁게 와닿았다. 세상의 현실은 꿈을 그리는 사람이 아닌, 꿈을 이룬 사람만 환대하는구나 싶어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십 대.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을, 되고 싶은 것을 꿈꾸는 것조차 무게감 있는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꿈을 이룬 삶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빼곡히 적어 내려갔던 일기장 속의 “나의 꿈들(장래희망)” 중 하나를 성취하는 것일까? 단순히 ‘꿈=직업’이라면, 내가 원하던 직업을 갖게 된다면, 꿈은 이제 사라지게 되는 걸까? 꿈이 사라지는 삶은 너무 무미건조하고 생기가 없을 것 같았다.


수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나에게 있어 꿈이란 단순한 직업적 성취가 아니다.’ 나에게 있어 꿈이란 언제 어디서든 하고 싶은 일을 꿈꾸고, 가고 싶은 곳을 그리는……. 생동감 있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먹어도 평생을 꿈꾸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다짐에 누가 되지 않게 30대에도 나는 여전히 꿈꾸는 사람으로 살았다. “선생님은 미지로의 여행을, 낯선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을 하는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스쳐지나가듯 잠시 나를 알았던 분이 해주셨다. 눈을 반짝이며 수많은 꿈을 쉴 새 없이 이야기하곤 했지만, 그 꿈들이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내 안의 나무


그림책 "내 안의 나무(코리나 루켄/ 김세실 옮김/ 마음별)"에는 핑크빛의 알록달록한 열매들, 꿀벌, 벌레, 씨앗, 꽃들이 가득차 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저절로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나에게 있어 "내 안의 나무"는 내안에 꿈틀되는 수많은 꿈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내 안의 꿈나무'를 바라보면 이제 조금씩 씨앗이 움트는 꿈, 고개를 빼꼼 내미는 꿈, 이미 자라나 열매를 맺은 꿈들이 핑크빛의 화사한 색으로 영글게 그려진다.  이 광경에 흠뻑 취해 웃음지을 때가 많다.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




꽉찬 마흔임에도...내 안에는 꿈틀꿈틀 자기를 만나주길 바라는 꿈들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누구도 나에게 꿈이 무어냐 묻지 않지만 가끔 스스로 묻는다.

 “네 안의 꿈나무는 지금 무얼 이야기하니?”

 “음……. 나는 말이야. 늙어서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아이처럼 꿈꾸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10살, 12살 아이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커서 이걸 할까? 저걸 할까? 수의사가 될까? 성우가 될까? 발레리나가 될까?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꿈을 이야기할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세상 온갖 설렘과 희망이 아이들의 얼굴에 담겨있다(물론 이 나이 때는 장래희망에 가까운 꿈 이야기지만…….). 아이들과 꿈을 이야기하며 웃는 것처럼, 할머니가 되어서는 손자, 손녀들과 꿈을 이야기하며 웃고 싶다.      




 마음속에 그려본다.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창가의 포근한 소파에 앉아 놀러 온 손자, 손녀들에게 할머니가 꾸었던 꿈을 모험담과 함께 재미나게 이야기한다. 할머니 이야기가 지루하다며 투덜거린다면 손자, 손녀가 꿈꾸는 세상에 대해 기꺼이 들어줄 것이다. 거센 비바람이 치는 어두컴컴한 날에는 울고 있는 손자, 손녀를 품에 안고 할머니가 울었던 실패담도 이야기한다.


 양 백 마리에게 안긴 듯 포근함이 가득한 조용한 공간을 마련하고 누군가를 기다린다. 찾아온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마음이 아픈 사람의 삶을 위로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짓밟힌 일상에 꿈을 불어넣는다.

때론 조금은 주저하겠지만 ‘나빌레라(글 Hun, 그림 지민)’의 심덕출 할아버지처럼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기꺼이 도전해 보리라. 자식들의 숱한 반대와 주변의 차가운 시선에도 때로는 용기를 내어 시도해 보리라. 새롭고 낯선 세상이 궁금해지면 익숙함에서 떠나볼 것이다.


흔히들 꿈은 젊은이의 것이고, 노인에게는 사치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늙더라도 여전히 아이처럼 꿈꾸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다 살아내지 못하더라도 하나하나 꿈꾸고 음미하고 싶다.  

20대 때, 30대 때 사실, 40대의 삶을 그려보지 못했다. 그럴 시간이 없어 후루룩 지나갔다. 아쉬움 속에서 40이 된 지금, 조금은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20년 후인 노년의 삶을 그려본다. 현재를 열심히 살기도 하겠지만, 노년을 조금이라도 그려본다면 꿈처럼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나는 결코 되고 싶은 사람이 다 될 수 없고

원하는 삶을 모두 살아볼 수도 없다.

원하는 기술을 모두 배울 수 없다.

그런데도 왜 그러길 바라는가?

난 내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경험의

모든 음영과 색조와 변주를 살아내고 느끼고 싶다.

-실비아 플라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해이그 저)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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