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나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샤워를 마치고 거울을 보다가 멈칫했다.
"너 왜 그렇게 생겼어."
농담처럼 던진 말인데,
웃기지가 않았다.
거울 속 내 얼굴이 낯설었다.
어제 했던 말이 갑자기 부끄러워졌고,
아침에 보낸 카톡 문장이 자꾸 떠올랐다.
'내가 왜 저렇게 썼지?'
별것 아닌 건데, 자꾸 신경 쓰였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었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그런데 나는 유독 내 실수만 오래 기억한다.
"그때 왜 그랬을까."
"조금만 참았으면 됐는데."
지나간 일을 자꾸 되짚는다.
그러다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인가 보다.'
다짐도 해봤다.
이번엔 다르게 해보자고.
그런데 또 똑같은 패턴으로 무너졌다.
작은 실수 하나에 금세 의욕을 잃는 나.
한 번 틀어지면 다시 시작하기 어려운 나.
계획은 거창한데 실행은 늘 부족한 나.
그렇게 '못하는 나'만 자꾸 보이면,
결국 나는 나를 믿을 수 없게 된다.
친구가 실수하면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누구나 그럴 수 있어."
그런데 내가 실수하면?
"너 왜 그랬어. 진짜 바보 같아."
똑같은 일인데,
나한테만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제일 못되게 구는 사람이 나라는 걸.
24시간 붙어 있으면서,
가장 많이 비난하고,
가장 쉽게 실망하고,
가장 차갑게 평가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몇 년 전 내 모습을 떠올리면 부끄럽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지금 보면 어리석은 결정들이 보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그게 최선이었다.
내가 가진 정보로는,
그날의 감정 상태로는,
그 순간의 나로서는
그 선택밖에 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더 잘 아는 건,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자랐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를 욕할 게 아니라,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걸
인정해줘야 하는 거였다.
예전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착하고, 배려 깊고, 실수 안 하는 사람.
그런데 그러다 보니
정작 나는 나한테 너무 소홀했다.
싫은 것도 "괜찮아요"라고 했고,
힘든데도 "저 괜찮아요"라고 웃었고,
무너지고 있는데도 "아니 멀쩡해요"라고 버텼다.
왜 나는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였을까.
이제는
누군가에게 완벽해 보이는 것보다
나 스스로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나랑 잘 지낼 수 있어야,
다른 사람과도 제대로 지낼 수 있다는 걸
조금은 알 것 같다.
변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할수록,
지금의 나는 자꾸 '부족한 존재'가 된다.
더 나은 내가 되면 모든 게 달라질 것 같아서,
지금의 나를 부정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이미 많은 걸 견뎌냈다.
힘든 순간도 있었고,
후회되는 선택도 많았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어떻게든 버텼고,
내 방식대로 해냈다.
변화는 자책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지금의 나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래, 나는 지금 이 정도야.
그런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이 문장이 변화의 시작점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의 작은 습관도 귀엽게 보인다.
실수해도 "그럴 수 있지 뭐" 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나한테는?
작은 실수도 용납이 안 됐다.
왜 나는 나에게만 그렇게 차가웠을까.
이제는 이런 말을 나한테도 해주고 싶다.
"오늘도 수고했어."
"그래도 괜찮아."
"너 생각보다 잘하고 있어."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도,
내가 나한테 그렇게 말해주면 된다.
그 말 한마디로,
나 자신이 조금은 덜 낯설게 느껴질 것 같다.
가끔은
'왜 나는 이것밖에 못할까'라는 생각이
파도처럼 덮쳐올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이제,
그 생각을 따라가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내 전부를 설명하는 건 아니야."
그렇게 속으로 말하면,
파도는 조금씩 잦아든다.
중요한 건 그 생각을 멈추는 게 아니라,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
감정은 그냥 지나가는 날씨 같은 거니까.
제시간에 일어난 것.
오늘 하루를 버텨낸 것.
따뜻한 밥 한 끼 먹은 것.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게 쌓이면 나를 믿는 힘이 된다.
큰 성과를 내지 않아도,
누구보다 멋진 사람이 아니어도,
나는 매일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다짐한다.
"나는, 나를 다시 좋아해 보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여정은
나 자신에게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그 길을 걷는 데는
시간도, 용기도, 수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 그 길의 끝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이대로 괜찮아."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야."
그 순간부터,
관계도, 삶도, 미래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다른 누구의 사랑보다
나 자신의 사랑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변화가,
나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