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이 머무는 곳
우리는 매일 수없이 ‘결심’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결정’ 하지 못한 우리는 결국 같은 자리에서 제자리걸음을 반복한다.
마음속 결심은 나 혼자와의 타협으로 끝나지만, 결정은 타인에게까지 영향을 준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결정을 내리는 걸 두려워한다.
우리는 그들을 '결정장애'라는 다소 싱거운 표현으로 웃어넘긴다.
결정을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단순하다.
미련이 결정을 가로막고 있다.
결정을 내리는 순간, 미련은 머물 곳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학창 시절 ‘10분만 쉬고 공부해야지’라는 결심은 ‘조금만 더 쉬자’는 미련에 막혀 결국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나는 평소에 결정을 잘한다.
작은 선택에도 망설이지 않는다.
하지만 유독 결정을 망설이게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 앞에만 서면 미련이 많아지고 결심하는 법을 잊어버린다.
나는 지금도 ‘결심’의 문턱에서 ‘결정’이라는 문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미 끝난 그를 마음에서 보내기로 결심했지만, 정말로 떠나보내야 하는 ‘결정’은 끝내 내리지 못했다.
그는 나를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을 하지 못한 나는 아직도 그 결정이 어떤 결심에서 비롯된 건지 알 수 없다.
'결심'은 마음속에서 시작되지만, '결정'은 누군가를 떠나보내며 완성된다.
결심은 진행형이고 결정은 완료형인데 나는 반대에 서있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그를 잊으려는 결심 속에서, 잊지 않으려는 결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심으로 시작한 사랑은 이별이라는 결정으로 끝난다.
결정의 문턱엔 사랑과 이별이 동시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