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기적, 긴 여정의 시작
마음의 상처는 대개 ‘믿음’에서 비롯된다.
혼자 잘못 해석한 믿음을 우리는 ‘착각’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착각을 깨닫는 순간, ‘믿음에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아프고 힘들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는 이유도, 그 말의 ‘의미’보다 ‘내가 속으로 생각한 답’과의 불일치 때문이다.
사랑의 상처도 마찬가지다.
현실 그 자체보다, ‘그럼에도 끝까지 사랑할 줄 알았던’이라는 믿음이 무너질 때 상처는 생긴다.
결국 상처는 ‘그 사람의 배신’보다는 ‘내가 세운 믿음의 붕괴’에서 온다.
사랑은 애초에 서로에 대한 환상과 믿음으로 시작된다.
그 믿음이 틀릴 수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다시 믿는다.
사랑은 믿을 때만 존재할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피곤한 일이다.
누군가 때문에 일희일비하며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탄다.
정말이지 지독히도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과 무난히 만나고, 무미건조하게 헤어졌던 것 같다.
그런 무딘 연애에 너무 오래 길들여져 있었던 걸까.
다시 연애 시장에 들어선 나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결혼적령기'라는 시간의 벽 앞에서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은은한 저주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뜻밖에도 한 사람이 생겼다.
우리는 애초에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짧게 만났고, 더 노력해 볼 여지도 없이 끝났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그 순간이 기적 같았고, 짧아서 아쉬웠다.
하지만 기적이었기 때문에 짧을 수밖에 없었다.
오래 지속되는 기적은 더 이상 기적이라 부를 수 없다.
긴 기적은 결국 ‘현실’이 되어버린다.
사람들은 보통 ‘이루어진 사랑’을 기적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과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가 나의 기적이 되었다.
그를 좋아하는 일은 버거웠지만, 나는 다시 사랑을 하고 싶다.
아무리 피곤한 일일지라도.
이제 나는 '피곤할 결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