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의 빈자리
쾌청한 어느 밤, 큰 달이 떴다.
문득 지구가 사라진다면 달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지구가 사라진 달은 지구의 품을 벗어나 태양을 중심으로 새로운 궤도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달이 태양을 공전하던 지구의 궤도를 따라가게 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사라진 지구의 발자취를 따라, 그 자리를 대신하려는 모습이 인류의 가족과 닮았다고 느꼈다.
달은 언제나 지구의 품 안에 있다.
마치 부모 곁에서 자라난 자녀처럼 그 중력에 길들여져 살아간다.
자녀는 부모를 바라보며 자란다.
달이 지구처럼 태양을 공전하며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 건,
자녀가 자신의 인생의 궤도를 걷기 시작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 안에는 여전히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중력, 궤도, 영향이 녹아있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었을 때, 자연스레 부모를 닮아간다.
하지만 흉내 낼 순 있어도 달은 행성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부모님의 자리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 또한 비슷하다.
그 사람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장이 된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었다.
가장의 중요성과 책임감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가장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지만 동시에 아버지의 그리움도 많이 느껴졌다.
가장의 자리를 메운 그였지만, 아버지가 남긴 공허함까지는 메우지 못했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남긴 빈자리는 대체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처음엔 지구가 사라진 달은 우주에서 외롭게 방향을 잃을 것 같았다.
그러나 사라진 존재의 자취를 따라 묵묵히 그 길을 이어가는 모습은 슬프지만 강인한 그를 떠올리게 했다.
모행성의 궤도를 따라가듯, 아버지의 궤도를 따라가던 사람.
나는 그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지만,
머물 수 없다는 걸 알아버린 스쳐가는 소행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