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시절과 아버지

사랑의 형태 01

by 민돌

나는 내 마음속 닫힌 서랍 안에 감춰두었던 기억들을 정리하려고 글을 적기 시작했다.

나의 불안정한 마음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


이제부터 적게 되는 이야기는 자주 술에 취해 담배 냄새에 절어있는 가난하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어리고 생활력이 강하지만 힘든 상황에 만난 첫아이에게 더 애착을 가진 어머니, 나에게 상처를 줬지만 아픈 손가락이었던 친오빠 밑에서 자란 나의 기억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1995년 가을에 태어났다.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부모님의 온전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 한, 자신도 모르는 상처를 가진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게 된 나는 두 번의 결혼으로 이미 세 아들이 있던 아버지에게는 40살에 태어난 귀한 늦둥이 딸 이자 어린 나이에 결혼한 어머니에게는 귀엽고 장군 같은 둘째 딸이었다.


슬프게도 내가 태어나면서 우리 집은 더 가난에 가까워졌다고 했고, 태어나기 전에 뱃속에서 죽을뻔한 상황도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고 커다랗게 3.5kg로 태어났다고 했다. 1995년도 우리 외갓집엔 3명의 아이가 태어났는데 유일한 딸인 내가 제일 컸으니 크게 태어났다는 건 확실하다.


하얗고 동그란 얼굴과 동그란 눈을 가진 예쁘게 생긴 아이. 애교도 흥도 많아서 보는 사람마다 칭찬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걸 보니 어딜 가나 사랑받는 아이였던 거 같다. 그렇게 사랑만 받으며 보통의 아이처럼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아버지는 목수였다. 흥이 많고 꾸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맨 정신일 땐 요리도 잘하고 살림도 깔끔하게 하는 멋진 사람이었지만 즐겁게 하루를 보내다가도 술에 취하면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기 십상이었고, 정확하진 않지만 부모님의 싸움에 대한 첫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3살 즈음 기억인 것 같은데 도자기로 된 신랑, 신부 저금통이 던져지며 깨진 일 그게 시작이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기분 좋게 나를 안고 잠들기도 했지만 고성이 오가는 밤들도 잦았던 걸로 기억한다.


자녀를 이유 없이 때릴 순 없었던 건지 직접적인 가해를 가하는 대상은 어머니였고, 큰 다툼이 끝난 새벽이면 우리 집 싱크대에 붙어있던 라디오는 노래가 나오는 알 수 없는 채널이 가장 큰 볼륨으로 틀어져있어야 했다. 왜 그랬던 건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시끄러워서 우리가 잠에서 깨거나 잠에 들지 못하면 엄마가 속상해하기 때문이었던 걸로 생각된다. ( 그래서인지 나는 그때도, 지금도 라디오를 싫어한다. )


내가 처음 비행기를 탔던 기억은 아마 부부 싸움을 하고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지방으로 내려갔던 일이 있었다. 나름의 여행이라고 생각했던 여정은 나를 볼모로 엄마를 협박하는 용도였고, 사실 어디로 갔던 건지도 모르고 아버지의 지인이 운영하는 불 꺼진 식당에서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잠을 자고 나는 몰래 집에 전화를 걸다가 걸려 엄청 혼났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들어보니 등본 상의 주소까지 지방으로 이전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나를 비행기에 태웠고 본인과 여행하는 좋은 기억을 줬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좋아하는 텔레토비 머리띠를 샀던 일 말고는 사실 굉장히 무서웠던 기억이다.


아무튼 부모님의 부부 싸움이 초등학생, 중학생 남매에게 당연해질 즈음 싸움은 점점 격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주먹질 그 이상의 해를 가하진 못하겠던 건지 본인을 해하기 시작했고 그 싸움 이후부터는 경찰이 도착해야 상황이 종료되었고 새벽 2-3시가 되어야 어머니와 잠에 들 수 있었다. 또 어느 시점 이후 싸움부터는 상황이 심각해져 두 남매만 집에 남아 어질러진 집을 치워야 했다.


아버지가 스스로 몸을 해 한 흔적들을 치우던 날에 냉장고에 있던 콜라를 병 채로 먹다가 바닥에 흘린 콜라를 닦으며 피는 콜라로 잘 닦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농약을 입에만 물고 삼키지 않으면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것. 약을 많이 먹어도 사람은 쉽게 죽지 않고 오히려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될 확률이 더 높다는 것. 폭력과 알코올 중독은 강제로 치료할 수 없고 스스로 깨닫고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점점 심해져 주변 사람들 마저 피폐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상황이 점점 나빠져 친가 쪽 가족들의 동의하에 알코올중독 치료센터에 아빠를 입원시켰는데 갇혀있어야 했던 상황이 답답했던 아버지는 나아진척하며, 꺼내달라고 애원하는 짧은 시간들이 지나고 마음이 약해진 어머니가 아버지를 퇴원시켰다. 그 결정을 한 뒤 어머니는 도망을 결심해야 했다.


아버지는 다시 병원에 끌려갈까 걱정이 되었던 건지 본인의 재주로 날카로운 자해 도구를 만들었고 또 갈등의 상황이 생겼을 때 내 앞에서 그 도구를 꺼내 목에 거는 아버지를 보던 그날 어머니는 우리 손을 잡고 그 지옥 같은 1.5룸의 임대 아파트에서 탈출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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