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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듕쌤 Aug 18. 2023

음식을 버리는 마음

좌절을 맛보았다.

(행복학 개론 연재글이 아닌 번외편입니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한 여름의 낮 최고기온이 30도가 넘어가면 "기록적인 폭염!"이라는 뉴스가 나왔던 게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제 여름에 30도는 당연지사가 되었고 습도가 높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엔 체감온도가 40도에 육박하기도 다.


이렇다보니 음식도 철저하게 관리해야만 했다.


초여름에 실수로 먹다 남은 국을 냉장고에 넣지 않았다가 다음날 아침 썩은내가 진동하는 냄비를 발견한 후로 바로바로 냉장고에 넣는 습관을 들였다.


그러다보니 여름의 냉장고는 겨울에비해 발디딜 틈 없는 만원 지하철보다 더 북적인다.


마치 테트리스를 하듯 매번 채소나 반찬을 넣고뺄 때에도 자기 자리를 찾지 않으면 무언가 하나는 낙오가 되어 밖에 나와있기 일쑤였다.


"좋아. 이번주는 냉장고 파먹기 주간이다!"


냉장고의 자리도 만들고 한도를 넘긴 이번 달 식비도 줄일겸 딱 일주일 동안은 식재료를 단 한번도 사지 않았다. 물론 외식도 하지 않고, 배달음식도 시키지 않았다.


그 결과 수박 반통을 통째로 냉장고에 넣을 수 있는 자리가 생겼고, 뭐가 있었는지도 모를 김치냉장고에 안먹고 있던 식재료들까지 발견해 버리기 직전에 전부 먹어치울 수 있었다.



남편은 음식을 버리는 걸 끔찍이도 싫어한다.


결혼 전, 오래된 주택에서 혼자살던 시절이었다. 그곳엔 내 키만한 작은 냉장고가 하나 있었다.


늘 자리는 부족했고 겹겹이 넣은 식재료는 상해서 버려지는 게 일상이었다. 신랑은 버려지는 식재료를 볼 때마다 화를 냈다.


"아니 대체 이런 건 왜 안먹고 다 버리는건데!!"


"살림 하다보면 어쩔 수가 없어서그래. 그정돈 눈 감아 줘야돼."


마치 제 집처럼, 자기 월급이 술술 빠져나가는 것처럼 신랑은 속상해 했고 그 때마다 나는 변명거리를 늘어놓아야만 했다.


하지만 신혼집에 이사와서 커다란 냉장고를 사면서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두꺼운 냉장고는 내용물을 알 수 없다며 비싼 키친핏 냉장고를 샀건만, 남편은 일주일에 한번 냉장고 검열을 하며 "이거 빨리 먹어야 되는거 아니야?"하며 오래된 음식을 기가막히게 찾아냈다.


나는 스스로 납득할 수 없었다.


왜 꼭 남는 음식이 생기는 걸까?

"먹으라고 둔 걸 네가 안먹고 그냥 둬서 그래!"


신랑 탓을 해봤지만 사실 음식을 버리는 건 아주 오래된 나의 나쁜 습관이었다.


이상하게 먹다 남은 음식을 버리지는 않는다. 꼭 다음에 먹을 거라며 냉장고에 넣어놓고는 먹지않고 썩혀서 나중에 버린다.


나는 이 습관을 바꾸고 싶었다.


1. 선입선출법


"자기야. 나 이제 요리 따로 안해둔다~ 밥 먹어야될 땐 미리 말해. 그날그날 만들어 줄게."


신랑이 배가고플 때 냉장고를 꺼내 먹을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실망하지 않도록 나는 늘 한끼분량의 음식을 남겨놓고 새로운 요리를 했다.


하지만 그가 바빠서 먹지 못하게 되면 냉장고 안에서 시간이 지나게 되고 맛이 없어지니 자연히 손이 가지 않아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그러다 상하면 버려지는 거고.


있는 걸 다 먹고나서 새로운 요리를 하기로 했다.



2. 한 번에 한 가지만.


나는 식재료를 살 때 2~3가지의 재료를 한 번에 사는 습관이 있었다.


로켓배송을 처음 쓰던 초반엔 5만원 이상 할인 쿠폰! 6만원 이상 할인쿠폰!이 자주 떠서 그 금액을 채우려 재료를 아주 왕창 사고 일주일이건 이주일이건 묵히고 먹었었다.


그러다보면 도저히 먹을게 많아서 손이 안가는 음식이 생기고 미리 요리를 해뒀다가 버리게 되는 음식들도 있었다.


이제는 딱 지금 먹을 요리 1가지만 할 수 있도록 메인 재료도 1가지만 사기로 했다.



겨우 이 두 가지 원칙만 지켰을 뿐인데 버려지는 음식의 양은 확기적으로 줄어들었다.


우리 2인가구가 살면서 수박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음식물쓰레기는 1주일에 2리터정도를 겨우 채워 버리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버려지는 음식 찌꺼기, 과일 껍질, 양이 많아 먹다 버리게 된 아주 조금의 음식 등을 빼고는 버리는 음식도, 식재료도 거의 없어졌다.



그러다 얼마 전,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입추가 지나고 새벽의 공기가 선선해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내일 먹을 닭한마리를 정성스럽게 끓였다. 닭의 핏물을 빼고, 육수를 갖은 양념으로 진하게 우려낸 뒤 양파 하나를 다 썰어넣고, 닭을 푹 삶아냈다.


마지막으로 남겨둔 닭가슴살을 넣어 살짝 끓여내고 냄비가 식을 때 까지 기다렸다.


그날은 유독 새벽의  공기가 꽤나 차갑게 느껴졌다.

"아침에 한 번 끓여서 바로 먹으면 되겠다~"생각하며 냄비를 냉장고에 넣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오늘 나 부평 가는데 같이 갈래? 바람도 쐬고 맛있는 것도 먹고~"

"구래? 언제 나가는데?"

"한... 10분쯤 뒤?"

"헐!!! 알았어 얼른 준비할게!!"


결혼식 사회일을 하는 신랑이 같이 가자는 말에 머리도 감지 않고 부랴부랴 준비를 했다. 양치하고 세수하고 이래저래 준비하는 동안 신랑은 먼저 나갔다.


"차에 가있을게 천천히 나와~"


나는 방 커튼을 열어젖히고 배송온 소고기를 냉장고에 넣고 정신없이 준비해 차에 탔다.


"나 안늦었어?!!"

"응 천천히 해도 됐는데."


그러나 난 너무 오래걸리면 신랑이 화를 낼 걸 알고 있다.


신랑이 일을 하는 동안 근처에서 글도 읽고 차도 마시고 쇼핑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일이 끝난 뒤엔 함께 태국음식도 먹고 신랑이 먹고싶은 돈부리까지 먹으며 식사를 두번이나 한 뒤, 신랑 지인이 하는 카페에 갔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신랑답게 지인은 소설책을 출간한 작가였고 그 친구가 키우는 포메라니안 과도 실컷 놀고 이야기도 오래 하다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오늘 저녁은 닭한마리 먹어야지이~~"


완벽한 하루라고 생각했다.


냉장고에 있는 닭한마리를 데워야겠다 생각하고 냉장고 문을 연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없어.. 닭한마리.. 설마....."


냉장고에 넣어뒀다고 생각했던 요리는 인덕션 위에 그대로 버려진 채 보글보글 거품을 내며 상해가고 있었다.


닭 1kg을 다 써서 만들고 한 입도 먹지 않은 요리였다. 너무 속상했다. 속상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절망감이 느껴졌다.


저녁 공연을 하러 또 나간 신랑에게 전화를 걸어 징징댔다.


"으어엉.. 내가... 닭한마리를.. 만들었는데.. 깜박하고.. 으어엉 ㅜㅜ 다 버려야되는데 못하겠어 끄억끄억 ㅜㅜ"


우는 것도 아니고 화내는 것도 아닌 이상한 신음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남편은


"니가 요즘 부엌 관리 제대로 안해서 그래."

라고 하고는 이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속상해 하지 말고 앞으로 관리 잘 하자고.


최근들어 이만큼 속상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고작 이걸로 뭐가 그렇게 속상하냐 싶을테지만 요리는 나의 작품과도 같다. 정성을다해 만든 작품이 실수로 한순간에 날아갔다. 원래도 평생 남는 작품은 아니라지만 요리의 본래 목적은 내 뱃속에 들어가 일용할 양식이 되고 혀에서 행복을 선사하는 것인데, 행복을 맛보려던 기대감이 와장창 깨어지는 그 순간의 좌절은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다.


오랜만에 단골집 짬뽕이 너무 먹고싶어 배를 쫄쫄 굶으며 1시간을 운전해서 갔는데 "금일 휴업"을 발견했다거나,


저녁도 못 먹고 야근한 뒤 냉장고에 남아있는 치킨을 데워먹으려 냉장고 문을 딱 열었는데 언니가 먹어버렸다거나,


내일 먹으려 최애 베이글을 하나 사서 냉장고에 넣어뒀는데 남편이 홀랑 먹어버렸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부평에서 태국음식을 먹으며 너무 맛있다며 행복해했던 내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음식 하나로 기분이 널을 뛸 수 있는 나란 사람, 참 단순하기 그지없다.


식재료를, 나의 소중한 요리를 다시는 낭비하지 않을테다 또 한번 다짐하며 눈물을 닦고 냉장고에 남아있던 순댓국으로 식사를 한다.


(이것도 맛있긴 하네. 훌쩍)


좌: 상해서 먹지 못하게 된 아까운 요리/ 우: 내 마음을 달래준 가지냉국 (순대국 사진이 없어서 사이드로 먹은 가지냉국 사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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