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내가 암에 걸린 이유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운’이 작동해야 하는 그 어떤 것들 중 스스로 ‘당첨운’은 없는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를테면 학교나 회사 워크숍의 경품 추첨에서 내 이름이 불린 적은 없었다. 단상에 올라가는 친구나 동료들이 하나둘씩 선물을 짚어가는 것을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만 봤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대형마트에서 1등 자동차, 2등 세탁기 하는 식의 경품 행사가 있으면 투명박스에 설레는 마음을 담아 쪽지를 넣어본다. 희소식은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복권을 사면 모두 ‘꽝’.
그런 내가 암에 당첨되었다.
난소암 1기 말 진단을 받은 건 2021년 4월 26일.
이 날은 일주일 전에 받았던 복강경 수술 스티치를 제거하러 내원했을 뿐이었다. 오른쪽 난소 안에 12cm가 넘는 크기의 근종이 갑자기 터지는 바람에 응급 수술을 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배가 가장 아픈 날이었다.
내 뱃속에 그렇게 큰 혹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복강경 수술로 낭종을 제거하고 배 안에 가득 차 있던 피를 빼내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되었고 회복도 빨랐다. 한창 회사 일이 바빴을 때라 일주일 회복 기간 중에도 재택근무를 했다. 그래서 이 날 나는 얼른 실밥 제거만 하고 가보겠소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 리 만무했다.
“오늘 좀 싫은 소리를 들으셔야 할 것 같아요. 조직 검사 결과가 아직 완전히 나오진 않았지만 구두로 먼저 설명을 드릴게요. 제거한 혹에서 미세하지만 암세포가 발견됐어요. 분화도가 좋지 않고 종류가 많이 희귀해요. 평생 암 걱정 안 하고 살고 싶으시면 난소, 난관, 자궁을 모두 들어내야 할 거예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암이 발견됐다니 말도 안 돼. 1초 동안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암은 유전적 요인도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아는 한 가족력은 없었다. 낭종이 터지기 전 까지는 별다른 *증상도 느끼지 못했었다. 머릿속은 백지장.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얼굴 근육이 고장이 났다.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써야 하니 얼굴을 가릴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 수술을 또 해야 한다는 말씀 이세요?”
“해야죠. (수술 사진 보여주시며) 낭종은 깨끗하게 잘 제거가 되었고 분명 당시에 모양은 괜찮아 보였어요. 반대쪽 난소도 이상 없었고요. 하지만 암은 세포 이기 때문에 자라나는 게 무서 워요. 낭종이 터져 복강 내에 피가 가득 퍼져 있었고 이럴 경우에는 암세포가 주변 장기 어디로 전이가 될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1기여도 A, B, C 중 C단계입니다. 전 절제를 하면 폐경이 되어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는데 (함께 진료실에 앉아 있는 남편을 보시며) 신혼 이시죠? 가족계획이 있으실 것 같네요. 갱년기 증상을 겪게 될 거고 호르몬 치료도 받아야 할 겁니다. 최종 조직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아직 3일 더 소요되니 남편 분과 의논해보시고 결정을 해오시겠어요?”
“그래야 하겠네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보며 대답했다.
* 난소암의 증상: 식욕부진과 소화불량, 복통, 이유 없이 배가 나옴, 성교 후 통증, 잦은 빈뇨감, 피로감, 갑작스러운 체중변화 등이 있지만 대부분 상당히 진행되기 전까지는 증상을 느끼기 힘들다고 한다. 나는 이 증상들 중 피로감과 빈뇨감을 약간 느끼긴 했으나 평소 야근이 많고 커피를 즐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중에 의심되는 증상을 겪고 있다면 산부인과에서 정기검진을 받으시길 추천한다.
그렇게 나는 하루아침에 암 환자가 되었다. 병원 나이 32세, 일반 사회 나이로는 33세.
불과 작년에 결혼을 했다. 임신, 출산 경험은 전무하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낮엔 열심히 회사 일에 매진하고 퇴근하면 건어물녀가 되어 맥주를 마시는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진료실을 나오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무서움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회사의 녹을 먹는 사람이라 제일 먼저 팀장님을 붙잡고 울었다. 누구보다도 걱정해주셨다. 의사마다 소견이 다를 수 있으니 암 병원 여러 군데 다녀보라며 독려해주셨다. 집에 가선 남편 붙잡고 울었다. 불행의 모래사장에서 작은 다행들을 발견하며 기분이 널을 뛰었다.
왜 이렇게 될 때까지 병원을 안 다녔을까 자책하다가. 난소암은 발견하면 3기, 4기일 정도로 초기에 발견하기 어렵다는데 나는 하늘이 도왔다고 했다가. 아무리 그래도 난 아직 암 진단을 받기엔 젊다고 생각했다. 아직 아이도 없는 신혼집 새댁이 당첨될 병은 아니지 않나. 왜 내가 암에 걸린 것인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암 걸리겠네 하고 자주 투덜 댄 탓에 말이 씨가 된 걸까.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걱정하고 긴장하는 성격 탓일까.
-그동안 야근, 철야가 잦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랬을까.
-매일 퇴근 후 밥은 안 먹어도 한두 캔 씩 마셨던 맥주가 잘못 이었을까.
-운동을 안 해서일까.
-생리통이 심한 편인데 진통제 먹고 버틴 죄일까.
뭐가 문제인지 알고 싶었다.
젊어서 건강하다고 생각한 스스로의 오만함에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남편과 수술범위에 대해 의논을 해 오라는 3일 동안 다른 여러 소견을 들어보고 결정하고 싶었다. 그리고 암 수술은 더 큰 병원의 암센터로 옮기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난소와 자궁 등 전체 절제를 하게 되면 암 걱정은 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삶의 질이 얼마나 곤두박질 칠지 알 수가 없어 두려웠다.
폐경으로 인한 갱년기 증상을 30대 초반에 겪어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가족계획을 구체적으로 잡아두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서른 중반 즈음엔 아이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나와 남편 둘 다 주변에 병원 쪽에서 일하는 인맥이 없었다. 암 환우 인터넷 카페인 ‘아름다운 동행’에 가입했다. 그곳에서 정말 많은 암 환우와 보호자들이 투병일기를 공유하고 있었다.
난소암 명의를 찾기 위해 관련된 글을 쥐 잡듯이 찾아내 읽었다. 평판이 좋다는 의사 선생님이 누구신지, 어디 병원이 좋은지, 수술과 치료는 어떠했는지 등 모조리 섭렵했다. 병에 대해 아는 게 없어 하루 종일 인터넷에서 영상과 글에 매달렸다. 어떤 환우는 술 담배 안 하고 건강한 음식 위주로 식사하며 운동도 일주일에 5일씩 하는 데도 암에 걸렸다고 했다. 어떤 보호자의 아버지는 술을 많이 하셔 왔고 위암 판정을 받았는데도 막걸리는 괜찮다며 술을 드시려 한다며 속상해했다. 어떤 사람은 운이 나빴던 게 맞는 것 같고, 어떤 사람은 먹고 즐기던 것들이 잘못되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적어도 암 진단을 받기 전, ‘암’하면 연상되는 것은 ‘죽음’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의 암 환자는 핏기 없는 얼굴과 눈 밑엔 진한 다크서클 그리고 민머리. 피골이 상접하다. 암보험 광고에서는 우리나라 사망원인 1위는 암 이라며 나이가 들 수록 걸리기 쉬운 병이니 가입을 서두르라 말한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걸리면 죽는 병, 나이 들면 올 수 있는 병, 철저히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병이었다.
그래서 처음 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 없는 무서움, 무력함, 허탈함 그리고 자기 연민을 느낀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병에 대해 알아 갈수록 암은 무언가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우선 좌절과 우울함은 마치 교과서에 쓰여있는 것처럼 당연한 감정이었다. 대부분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듯 암 선고를 받았다. 어제까지도 멀쩡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암 환자가 되었다. 그러니 진단 결과를 수용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윽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병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노력들을 시작한다.
보통 암 발병으로부터 수술과 치료를 거치고 추적관리를 해 5년 동안 암이 발견되지 않으면 완치 판정을 받는다고 한다. 암 발생률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생존율도 높아지고 있다. 난소암은 재발률이 70%에 달 하기는 하지만 초기에 발견해 치료가 잘되는 경우 5년 생존율은 73~93%까지 높다고 했다. 높은 기수여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서른 살에 난소암 말기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가수 양희은 선생님도 7년 후엔가 다시 재발됐음에도 수술하고 아직 멀쩡하게 살아서 방송활동을 하신다. 전이, 재발되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때면 두려웠지만 그렇다고 무서워만 할 필요는 없었다.
유명하다는 몇 군데 대형병원을 돌아 의사 소견을 들어보았다. 뭐가 문제인지 알고 싶었다. 원인은 의사도 알 수 없다고 대답했다. 여러 요인에 의해 암세포가 생겨날 수 있고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면 암세포를 죽인다. 그런데 면역이 약해져 암세포를 제거하지 못했고 그 불운이 겹쳐지다 보면 암을 키우게 된다고 한다.
결론은 운이 정말 나빴을 뿐이라는 것.
그러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불편한 거라면 비염 정도 있었지 평소 잔병치레도 잘 겪지 않았는데 말이다. 학창 시절 운동회에선 계주를 나가 뛸 만큼 달리기는 잘했다. 체력장을 하면 대부분 1급. 운동을 꾸준히 하려 노력하는 편에 속했다. 식성도 나물반찬, 된장찌개 좋아하는 할머니 입맛이라 서양식 음식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세상 억울해진다.
그렇게 한동안 불운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며 우울해지지 않도록 나 스스로를 돌볼 수밖에 없었다. 시부모님께선 나중에 얼마나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액땜을 제대로 한다고 위로해주셨다. 그땐 그러게요 복권 사보려고요 하고 웃어넘겼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 하나.
암 진단을 받은 지 3달이 지난 후, 우리 부부는 수도권 아파트 청약에 당첨이 됐다. 남편이 내가 암 선고에 정신이 나가 있는 사이에도 성실하게 넣고 있었단다. 이게 되려고 액땜하고 있는 거야? 나는 가끔 절에 가는 것은 좋아하지만 종교는 없고 무신론자다. 하늘을 쳐다보며 정말 신이 있는 건가 하고 처음으로 의문이 들었다. 돌아가는 모양새가 도무지 한 치 앞을 모르겠다.
신이 있다면 우주의 먼지 같은 인생일 텐데. 온탕, 냉탕 번갈아가며 담금질당하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