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운 벗 엘리의 토요 유감
요즘 휴일이 유난히 더 기다려진다. 그로운 벗의 팀원으로서 00 꿈마을로 아이들을 만나러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운 벗 일이 하고 싶어서 주중에는 영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주말에는 그로운 벗 팀을 위한 일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렇다. 나는 요즘 투잡을 뛰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해야하는 일을 하고 있다.
사실 나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취미도 꽤 많은 편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의 대부분은 소위 돈 안 되는 일들이다. 학부 때 나름 실용적인 학문을 전공했음에도 그것을 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인문학도가 되기를 원했다. 순수학문이 하고 싶어서 이날 이때까지 방황을 했다. 내 꿈은 비록 꿈일 뿐이지만 언젠가 대학원에 진학해서 순수학문을 공부하고 싶다.
그렇게 공부한 것을 ‘그저 불완전한 나’일 뿐이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사용하고 싶다. 추상적이고 막연해 보이지만 이것이 나의 꿈이다. 누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대학생활이 쉽지 않았다. 어쩌다 영어통번역을 전공하게 되었는데 내 관심은 온통 예술이나 철학같은 것들에 있었다. 그런 탓에 전공 학점이 처참했다. 실력도 그리 좋지 않은데 노력까지 안 하니 점수는 점수대로 안 나오고 수업이 버겁고 힘들 수밖에. 당연한 결과였다. 그나마 부전공이 필수인 교칙 덕분에(?) 어쩌다 정치외교를 공부하게 되어 그나마 흥미를 붙일 수 있었다. 철학과 전공수업을 수강하며 아주 행복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인문학을 선호했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한다.
그래도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듯 꾸역꾸역 학교를 나가기도 했고 졸업을 위해 영어를 놓지 않은 덕분에 의지와 상관없이 영어실력이 조금 쌓였다. 덕분에 영어를 가르치며 돈을 벌 수 있게 됐고 그 돈으로 근근이 생활을 하며 하고 싶은 일들을 조금씩 하고 있다.
그로운 벗의 팀원으로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고 하고 싶은 공부를 (비록 취미로 하는 공부인지 입시를 위해 하는 공부인지 모를 애매한 경계에 놓여있기는 하지만) 나름 즐겁게 해 나가고 있다.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설렌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나는 조금 두렵기도 하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있는데 그의 말이 요즘 내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인간사에는 안정된 것이 하나도 없음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성공에 들뜨거나 역경에 지나치게 의기소침하지 마라.
(소크라테스)
사실 그로운 벗을 시작 하면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조금 들떠 있던 것도 사실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라던가 “아파하는 사람을 모른척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등의 생각을 하며 살아온 나에게 그들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그로인해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일들이 조금 구체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나의 삶이 성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내가 하는 일들이 나에게 만족을 주고 있고 이 일로 인해 설명하기 어려운 따뜻함과 감사함,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을 느끼고 있기에 한 편으로는 이 행복이 나를 떠나갈까봐 두렵기도 하다.
무능력한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약간의 영향을, 그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일이다. 사실 요즘 방문하고 있는 00 꿈마을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올 때면 내가 아이들에게 준 것 보다 받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항상 들었다. 아이들이 나에게 주는 맑은 웃음과 따뜻한 마음 그리고 진심 어린 말들이 나에게 큰 기쁨과 감사가 되고 있다.
그래서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이 행복이 언젠가 나를 떠나버릴까 봐 두려운 것이다. 또한 초심을 잃을까 봐 두렵기도 했다. 내가 아이들과 팀원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거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길을 가는 까닭은 내 시선이 아이들에게 닿아 있기 때문이다. 또 내 마음이 그들에게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단한 동기나 이유는 사실 없다. 그냥 이것뿐이다. 마음이 가서 하는 것뿐이다. 나는 이타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착하지도 않다. 오히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언젠가 내가 이 일을 하지 못하는 날이 오더라도 너무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허락된 그 순간까지 정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요즘 아이들과 함께 할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내 일상에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유난히, 더 자주 떠올리게 된다. 어른 친구가 되어주려 아이들을 찾아갔는데 도리어 아이들이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었다.
나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아이들은 나를 너무도 특별하게 바라봐준다. 그럴 때마다 부끄럽지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오늘 우리 친구들은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다음에 만나면 더 많이 사랑해야지.
<2019년 6월 27일 아주 이른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