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의 일기
<3/31 해리의 일기>
루시아와 함께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툴루즈 로트렉 전시회를 다녀왔다.
도슨트를 통해 툴루즈 로트렉의 인생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전시회 관람 내내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툴루즈 로트렉은 장애로 인해 평생 이룰 수 없는 열망들을 역동적인 그림들로 표현해 왔다. 특히나 가장 인상깊게 감상한 그림들은 그가 청소년기에 그린, 말을 타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는 귀족으로 태어났으나 신체적 장애로 인해 귀족이 누릴 수 있는 승마와 사냥을 즐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로부터 단 한번도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런 그가 달리고 싶었던 열망과 아버지에게 받고 싶었던 인정의 욕구를 담아 수많은 승마 그림을 그려냈다.
그저 눈으로 지켜보고 이를 그림으로 밖에 그릴 수 없었던 한 소년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슬픔과 고독 속에만 갇혀있지 않았다.
파리 몽마르트 거리와 물랭루즈에 살다시피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했고 주변에 늘 친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그만의 색을 캐치하여 표현해 내는 능력이 탁월했고 사람에 대한 관찰을 좋아했던 것 같다.
도슨트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귀족이었던 그가 매춘부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그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작품집 “엘르(Elles 1896)”를 발매했는데 그 그림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빨래하는 모습, 아침에 일어난 모습 등이었다고 한다.
누군가 그 그림 속 여인이 매춘부라고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전혀 모를 만큼, 그림에 담긴 그녀들의 모습은 매우 일상적이었다.
후에 로트렉이 죽은 후 그 여인들과 인터뷰를 했을 때 자신을 정말 친구로써 대해 준 사람은 평생 로트렉 한 명뿐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귀족 중에 귀족으로 태어났지만 매순간 고통 속에 있었고 그럼에도 유쾌함을 잃지 않으며 자신의 신분에서 자유로웠던 사람.
그리고 자신의 삶을 통해 농축시킨 그의 공감 능력과 재능으로 아무도 봐주지 않던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아름다움을 그려낸 위로의 화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마음에서 그치지 않고 기꺼이 그들과 함께하며 자신의 재능을 활용했던 그의 용기있는 행동들이 전시회 관람을 마치고 나서도 나를 뭉클하게 했다.
도슨트 중에 맨 앞에 서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루시아와 관람을 통해 고독과 환희가 뒤엉켜 있었던 37세라는 짧지만 드라마틱했던 그의 인생을 만나고 난 뒤 우리 두 사람은 그 여운을 나누었다.
우리 마인도어가 만나야 할 아이들과 청소년들에 대해, 이번 전시를 통해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소외된 어린 영혼들의 아름다움을, 우리가 그들의 삶속에 들어가 관찰하고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순간, 기꺼이 위로자가 되어주어야 한다.
로트렉이라는 인물이 신체적, 신분적인 모든 벽을 뛰어넘어서 소외된 여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었던 것처럼 우리도 순수한 사랑으로 그 영혼의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발견하며 감탄하기를 원한다.
그가 그의 고통스러운 삶을 고통으로만 두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힘든 인생 중에서도 누군가를 위로하고 함께 웃으며 생애의 아름다움을 함께 발견해나가기를 바란다.
“인간은 추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 <툴루즈 로트렉>
_유혜리(해리, 마인도어)
그리고 엘리
(엘리는 어른 친구의 이야기를 다듬어서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