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1 해리의 인터뷰 2편>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뒤 해리와 나는 인터뷰를 이어갔다. 인터뷰의 후반부는 전반부보다는 조금 더 사적인 질문과 답들로 채워졌다.
엘리: 해리에게 청소년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하다.
해리: 나도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을 만났을 때
자유함을 느낀다. 나도 모르게 자유로워진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어 편안하게 행동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아이들과 함께 할 때 정적인 내가 에너지를 내게 되고 그 에너지를 분출함으로써 이것이 ‘자아실현인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듯 아이들은 나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들이다.
엘리: 정말 소중한 것 같다. 함께일 때 그런 자유함과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방금 해리가 답한 부분에서 해리의 성격이 정적이라고 언급했다. 해리의 성격 또는 성향을 자세히 듣고 싶다.
해리: 나는 보통 정적이고 내성적인 성향이 강한데
필요에 따라 스스로 성향을 조금씩 컨트롤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조용하고 혼자 있는 게 편안하고 나에게 맞지만 필요하다면 그런 나 자신에게 변화를 주어 외향적인 내 안의 어떤 것을 끌어내서 사용하기도 한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뒤에서 조용히 서포트해주는 것을 선호하지만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거나 앞에 나서야 할 일이 있으면 빼지 않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오해하기도 하고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일 대 일로 만나서 깊이 있는 대화를 하는 것을 선호하고 아이들을 만날 때 역시 소규모로 만나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더욱 좋아한다.
엘리: 해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궁금하다. 해리가 좋아하는 것들과 취미에 대해 듣고 싶다.
해리: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맵고 짠 음식이 너무 좋다. 불닭 볶음면, 해물, 청양고추를 좋아한다. 집에 이런 음식들을 항상 구비해두는 편이다. 또 나는 누군가에게 맛있는 음식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너무 좋아하는데 그만큼 혼자인 시간도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들을 만나 사용한 에너지만큼 나 스스로의 입과 귀도 쉬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오롯이 나 혼자인 시간, 나만의 휴식시간을 가지는 편이다.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즐겨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대체로 예술적인 것들을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바빠서 누군가 나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어오면 옛날 취미를 말하곤 한다. 그런데 요즘 들어 취미의 필요성을 다시금 느낀다. 시간을 쪼개어 취미 활동을 조금씩 다시 시작해 볼 생각이다.
엘리: 나랑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혹시 인상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해줄 수 있을까?
해리: 고든 맥도널드가 쓴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때>는 기독교 신앙 서적이기는 하지만 신앙적인 부분을 넘어서서 사람이 살면서 ‘친밀함’에 필요한 모든 부분이 잘 나와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정말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다.
엘리: 해리에게, 해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 사람이 궁금하다.
해리: 해리의 ‘어른 친구’라고 표현해야 하나?
캠프를 운영하면서 만난 인생 선배가 한 분 계시는데 캠프를 총괄하시던 교회학교 선생님이셨다. 다양한 사람들을 총괄하시면서 사람들을 부드럽게 리드하셨던 분이셨고 소외되는 사람들을 챙기셨던 분이셨다. 그분의 따뜻하고 섬세한 리더십을 본받고 싶었다. 그분은 늘 “나는 부족하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라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부족하기 때문에 나를 채워주는 내 옆에 팀원들이 있는 것이 너무 귀하고 감사하다.
엘리: 해리와 함께 일하면서 해리의 따뜻하고 겸손한 리더십을 자주 보게 된다. 해리 역시 해리의 어른 친구인 그 선배처럼 팀원들에게 좋은 어른 친구인 것 같다. 해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궁금하다. 요즘 해리는 누구와 친밀하게 지내고 있나?
해리: 그로운 벗 내에서 진행한 인터뷰여서가 아니고 진심으로 요즘 나는 나의 팀원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 허락된 아이들과 내가 만나는 사람들 역시 친밀함의 대상이다. (물론 가족 역시 언제나 애틋하고 나의 또 다른 사랑의 대상이다.)
특히 그로운 벗을 시작하고 정말 많은 시간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마음이 점점 더 커지는 기분이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소통하는 대상이 우리 팀원들이다.
엘리: 살면서 해리가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을 만난 적이 있다면 그 일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해리: 나는 지금껏 청소년기가 가장 힘들었다. 가정환경도 그리 좋지 않았고 예전에 겪었던 일(해리는 아동 성폭력 피해자였다. 해리는 그녀의 상처를 담담하게 고백하며 자신의 상처를 인터뷰에 실어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많은 고민 끝에 조심스럽게 글로 옮겼다.)로 인한 우울증으로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다.
특히 아동기 때 겪은 아팠던 일들이 사춘기 때 마음의 병으로 크게 찾아왔다. 피해를 당했던 시기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많이 힘들었지만 가족에게 기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외롭고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외롭고 지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들의 상처를 보았을 때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 아파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그들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곤 했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이 일을 이토록 열심히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안 그래도 힘든데 기댈 곳이 없다는 사실이 힘든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 같다. 내가 그랬다. 당시에 나는 힘들었고 외로웠다. 삶이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았고 내가 왜 살아야 하나 싶었다. 자주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때 교회에서 따뜻한 어른 친구를 만났다. 교회학교 선생님이셨는데 따뜻한 분이셨다. 그 어른 친구의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을 느끼게 되면서 ‘아 이 세상 살아볼 만하네? 나도 살아볼 만 하구나.’라는 생각을 어느 순간 하게 되었다. 주변에서 따뜻한 어른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렇게 조금씩 내 마음이 치유되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삶이 내게 남긴 상처와 그늘이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 전에는 그 그늘이 싫기만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그 그늘을 받아들이게 됐고 좋아하게 됐다. 그 그늘로 인해 아픈 이들의 상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요즘 그 그늘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내가 아이들 마음의 빈 공간을 다 채워줄 수는 없겠지만 아주 조금 이어도 좋으니 그 공간을 채워주고 싶다. “너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어른이 여기에 있다.”라는 진심을 아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
엘리: 말을 잇지 못할 것 같다. 앞으로 해리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해리: 그로운 벗이 앞으로 잘 돼서 10년 정도 안에 내가 대표직을 그만두는 것이 꿈이다. 대표직에서 물러나 작은 직원으로 그로운 벗에 들어가서 아이들에게만 집중하고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싶다.
엘리: 꿈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로운 벗 내에서 처음으로 인터뷰에 응해줬다. 인터뷰를 마친 소감이 궁금하다.
해리: 처음에는 인터뷰 형식이 낯설었는데 이야기하다 보니 결국 우리가 늘 이야기하던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또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자꾸 잊어버리곤 하는데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새삼 새로움을 느끼게 된다.
끝으로 나 자신, 나에 대한 정리도 해볼 수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이런 좋은 기회를 만들어줘서 너무 고맙다.
해리와의 인터뷰가 끝났다. 솔직하게 인터뷰에 응해준 해리에게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유혜리”라는 사람에 대해 감히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았고 한 발짝 더 다가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긴 여운이 남은 인터뷰였다. 해리의 모든 날들이 따스한 빛으로 가득하기를 바라며 해리의 인터뷰 기록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