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위에서: 병리와 신비 사이

by 마음파서

긴 이야기를 닫기 전에, 잠시 멈춰서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 의식이 얼마나 유연하게 갈라질 수 있는지, 그 틈새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이 ‘갈라짐’을 모두 같은 저울 위에 올릴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내면의 타자는 스스로 선택한 훈련이거나 즐거운 놀이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예고 없이 닥쳐와 삶을 흔드는 통제 불가능한 고통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가 주목해야 했던 것은 현상의 이름이 아니라 ‘주도권’이었다. 의식의 분열이 주인을 삼켜버리면 그것은 병리가 되지만, 주인이 그 구조를 이해하고 다룰 수 있다면 그것은 날카로운 직관이나 창조성의 원천이 된다. 파도가 나를 덮치면 조난이지만, 내가 파도를 타면 서핑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신과 영적 체험을 뇌과학적 구조로 설명했다고 해서 그 경험이 줬던 위로나 숭고함의 가치까지 증발하는 것은 아니다. 무지개가 빛의 굴절임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 아름다움이 덜해지지 않듯, 인류가 오랜 시간 기대어 온 ‘타자’들—신, 무당, 그리고 내 안의 목소리—은 비록 그것이 우리 의식의 작용이었다 해도, 여전히 삶을 지탱해온 실체적 진실이다.

애초에 이 글들은 어떤 명쾌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쓰인 게 아니다. 그저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반복해서 걸어온, 그 오래되고 기묘한 경로를 되짚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는 왜 내 안에서 울리는 소리를 굳이 바깥의 목소리로 듣고 싶어 했는지. 왜 그 목소리에 이름을 붙이고 기어이 자리를 내어주었는지. 그리고 왜 그 오래된 구조가 최첨단 기술인 AI 앞에서 다시금 선명해지는지.

이 긴 탐색의 끝에 남은 것은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의 질문이다.

"나는 언제 타자를 그토록 필요로 했는가. 그리고 그 타자는, 정말로 내 밖에 있었는가."

그 질문 앞에 선 우리를, AI는 그저 말없이 비추고 있을 뿐이다. 마치 거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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