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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일][01월02일]나를 찾아야 가족이 행복하다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나를 낳으신 엄마는 자녀교육에 열의가 있으신 분이었다. 특히 첫째인 나에게 기대를 많이 하셨다. 내 생각에 초등학교 때 까지는 엄마의 노력에 어느 정도 비례하여 결과가 나와주었던 것 같다. 늘 반에서 예쁨 받는 아이들 그룹에 속해있었다. 특히 4학년 때에는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 아이들은 맨 앞줄에 앉히셨는데 나는 1년 내내 맨 앞 줄에 앉았다. 공부하는 것은 싫었지만 다른 아이들의 부러운 눈빛을 받는 건 좋았다. 그 안에서 누리는 혜택은 달콤했지만 시험 때만 되면 긴장상태가 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얼마나 노력해서 100점을 받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가 그렇게 원하던 올백 한번을 끝내 받지 못했다. 지금은 전혀 남아있지 않은 기억이지만 초등학교 때 일기를 보니 그 때부터 매일 아침 7시 전에 일어나 모닝스터디 라는 것을 했었다. 모닝스터디를 하고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는 것이다. 시험기간에도 종류별 문제집은 다 풀어가며 공부를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간신히 다른 아이들과 수준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머리가 별로 안좋은 건지 아니면 정말 하기 싫었던 건지 둘 중에 하나다. 공부를 잘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는 없었다. 단지,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기 싫었고 엄마의 소원인 올백 한번 받아서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인지 막상 시험이 다가오면 평소 안하던 방청소, 책상 정리를 하면서 이런 저런 핑계를 찾았다. 문제집도 분량을 채우기 위해 건성으로 풀었다. 결국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공부하고 시험보고 ‘미리 해둘걸...’ 후회, ‘다음 시험에는 진짜 꼭 제대로 공부해야지!!!’ 다짐.. 하지만 똑같은 반복이었다. 어렸을 적 행동은 습관이 되어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졌다. 뒷심을 발휘해 끝까지 해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 성격 때문인지 요즘도 간혹 꿈을 꾼다. 뭔가 큰 이벤트를 앞둔 상황에 어영부영 하다가 당일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꿈을 깨고 나서는 꿈이라는 것에 안도하고,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에 매일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집 에서는 두 살 터울 나는 여동생과의 비교로 이어졌다. 비교라기보다 언니이기 때문에 부모님이 동생보다 더 기대하는 것이 컸다. ‘언니니까’ 라며 해택을 받은 것도 많지만 그 당시 혜택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여겨졌고, ‘언니니까’ 라며 양보하고, 이해하고, 솔선수범해야했을 때 그게 그렇게 억울했다. 애교가 많은 동생은 막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12년 간 막내였으므로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나에게는 장녀로서의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사랑, 동생에게는 마냥 있는 그대로 사랑을 주는 것을 느끼며 첫째로 태어난 것을 후회했다. 물론 내 뜻대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나를 믿는다고 이야기 하는 부모님의 말 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담을 느꼈다. 성인이 되고 내가 먼저 취직을 했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동생들의 본보기가 되는 역할모델로 자란 것이다. 내가 특별히 원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뜻대로 자라온 것이다. 대학교 4학년 때 대기업에 입사확정이 되었고, 졸업날 동시에 입사를 하여 20대의 청춘을 회사에 바쳤다. 바쳤다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나의 20대는 오롯이 회사와 함께 했다. 반면 동생은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해서 1년 간 일을 한 다음 적성에 맞지 않다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가 다시 편입을 해서 3년 더 다녔다. 그리고 20대 끝자락에 취직을 했다. 그 당시 내 생각에는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착하게, 바르게, 부모님 말씀대로 자라준 것은 나인데 여전히 아빠는 동생만 더 예뻐하는 것 같았다. 명절에 아빠에게 용돈을 드렸는데 그 용돈이 봉투채로 동생한테 가는 것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던 기억이 난다. 뭐 그것 가지고 그러냐고 소심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회사생활이 힘들었던 나는 그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동생이 부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아빠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는 왜 돈을 버는지?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어릴 적 자연스레 비교과 경쟁에 익숙해진 나는 어른이 되어서 까지 영향을 미쳤다. 남들이 볼 때 문제가 전혀 없어 보이는 내 상황에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셀프비교를 했다. 특히, 요즘처럼 SNS 가 발달된 세대에서는 다 나보다 좋은 상황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맞벌이를 할 때에도 큰 마음 먹고 하나 살까 말까 한 명품백을 친구는 전업주부인데도 남편에게 선물을 받는다. 아는 언니는 외제차를 선물 받아 사진을 찍어 올리고, 친구 신랑들은 죄다 가정적인 것 같다. ‘괜찮아...괜찮아... 나도 행복한걸...’애써 괜찮은 척 해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사실은 무지 부럽다는 것을 적어도 단 한사람 나 자신은 알고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별 문제없던 나의 가정에 바람이 부는 순간이다. 평소와 똑같은 남편에게 투정을 부리고, 지금 내 상황이 나만 고생하는 것 같다. 당연히 아이에게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덜 허용적이 되면서 동시에 아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려고 시도한다. 어렸을 적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너 잘되라고’라는 명목으로 아이의 의견과 상관없이 내 욕심을 채워간다. 아직 아이가 어린대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느끼며 초등학교 간 후에는 더 심해지겠구나... 생각했다. 아무 생각 없다가도 옆집 민수가 어디 학원 다닌다더라... 민수는 받아쓰기가 100점 이라더라... 선생님이 민수만 더 예뻐한다더라..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엄마로써‘내 아이를 위해’더 많이 가르치고, 시키고 싶은 욕심이 생길 것 같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아이를 위해서라고 포장한 ‘엄마 욕심’을 위해서 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욕심, 열등감, 경쟁, 기대, 강요 이 모든 것은 남과 비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나와 남편은 양가에서 경제적인 도움 거의 없이 결혼을 했다. 나보다는 남편이 저축을 많이 해두어 신혼집을 전세로 얻었다. 차는 내가 사원 때 사두었던 경차가 있었다. 성격이 비슷해서 결혼 준비하면서도 물건 하나 하나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고민 없이 해결되었다. 연애 초반에 그렇게 티격태격했던 우리였는데 결혼 준비하면서는 단 한 번도 싸우지 않고 평탄히 넘어갔다. 요즘 난임, 불임이 많은데 승윤이는 한달만에 임신이 되었고, 출산 도 순조로웠다. 결혼생활의 모든 것이 술술 풀렸다. 너무 평탄하게 흘러간게 문제라면 문제였을까? 솔직히 고백하면 시댁이 빵빵해서 결혼해 오며 전셋집보다 훨씬 좋은 집을 갖고 시작한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다. 신혼을 즐긴다며 바로 애를 갖지 않고 둘이 여행다니는 부부를 보면 부러웠다.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도 나보다 더 여유롭게 사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다. 내 생활에 만족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늘 그렇게 뭔가 부족하고, 채우려고 하고,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꼈다. 죽을 만큼 힘들어 일찍 육아휴직을 내고 쉬었던 직장을 다시 복직해야했을 때도 그랬다. 복직할 직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은 눈꼽 만큼도 없었다. 몸은 훌쩍 자라 엄마가 되었지만 마음은 어린 아이였다. 동생과 나를 비교하며 언니로서 누리는 혜택을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처럼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남편이 중국으로 파견을 가고 나 혼자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미친 듯이 바빴지만 아이들이 자면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이었으니 미친 듯이 외로웠다. 혼자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어서 더욱 힘들었다. 혼자서 육아를 감당하는 것조차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글쓰기’ 덕분이다. 육아일기를 시작으로 블로그를 다시 시작했다. 육아를 중심으로 한 글을 계속 쓰다 보니 2% 부족함을 느껴서 나를 중심으로 한‘글쓰기’로 확장했다. 처음에는 너무나 어색했지만 매일 글을 쓰기 위해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니  지금까지 바깥으로 맞춰졌던 초점이 안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조각조각 나 있던 퍼즐을 하나씩 끼워 맞추며 완성시켜가는 것 같이 정리가 되었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힘들었던 것도 예전 같았으면 막연히 ‘갖고 싶다. 가고 싶다.. 나는 힘들겠지...그래도 힘내자!!!’ 정도였다면 글을 쓰면서는 ‘왜 그것이 부러운지, 나에게 그 상황이 온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은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걸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과연 내가 원하는 진짜 나의 삶은 무엇인지?’를 염두에 두었다. PET에서는‘반영적 경청’ 이라고 하는데 있는 1차적인 감정을 그대로 읽어주는 것이다. 나 스스로의 반영적 경청을 통해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적어보고, 바라보고, 원하는 것을 생각해 볼 기회를 갖음으로써 나를 챙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람인지라 살면서 이런 감정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부족해서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갖고 있는 감정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전처럼 마냥 비교하고, 시샘하고, 부러워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불편한 감정을 인정하고 바라봄으로써 더욱 내가 원하는 것을 뚜렷하게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떠한 삶을 살고 싶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꿈이 생기고 소명이 생겼다. 여태 찾으려고 애쓰며 생각만 할 때에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했던 것이 글을 쓰며 찾아진 것이다.


소명이 있는 삶을 살기 시작하면 남과의 비교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더 큰 집, 더 비씬 가방, 더 좋은 차가 없는 것보다 좋지만 그것 자체를 목표로 삼지는 않는다. 그 것을 위해 지금 내가 누리는 행복을 포기하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는다.


젊어서는 돈 벌기 위해 젊음을 쓰고

나이 들어서는 젊음을 되찾기 위해 돈쓰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자

- 구본형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 나의 가치관이 뚜렷한 삶을 살기 시작하며 내 마음도 편안해 진다. 내가 여유가 있어야 가족에게도 마음을 쓸 여유가 생긴다. 그런 마음으로 요리를 해야 음식도 맛이 있고 먹는 사람도 행복하다.


남을 챙기고, 가족을 챙기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나’를 챙기는 것이다.

‘어머니 = 희생’ 이라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너무 이기적이고 개인적이라고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나를 챙기는 것이 결국 가족의 행복이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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