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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일][01월03일]엄마는 아이의 이정표다

엄마는 아이의 신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보면 부모님이 공무원이면 공무원을 꿈꾸는 친구들이 많고, 선생님이면 선생님을 꿈꾸는 친구들이 많았다. 많은 대학생들이 창업을 꿈꾸지만 결국 이뤄내는 친구들은 의례 부모님이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직업으로 시작하지만 사업의 대를 이어가기 위해 결국 부모님이 하고 계시는 업으로 전환하기도 한다. 물론 성인이 되어 전혀 다른 직업을 갖기도 하지만 어렸을 적 장래희망을 적어낼 때 보면 직업이 제한적이다. 나 또한 초등학교 고학년 때에는 공무원이라고 적었다. 친구들 중에는 경찰인 아빠의 모습이 너무 자랑스럽고 멋져보여서 나도 커서 우리 아빠처럼 멋있는 경찰이 되어야지! 라며 꿈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것 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모든 부모는 자녀가 큰 꿈을 품고 성장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대부분 아는 만큼 밖에 가이드를 해줄 수 없기에 한계가 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자녀가 부모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고 할 때 온전히 응원하고 지지해 줄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우리집은 아빠가 공무원이시고, 엄마는 전업주부셨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으로 엄마가 잘 꾸려가셨다. 엄마는 여자 직업으로는 공무원이 최고라고 늘 말씀하셨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해도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참 많이 듣고 자랐다. 초등학교 때에는 장래희망에 공무원 이라고 적기도 했지만 조금 더 자란 후에는 공무원만은 절대 안될거라고 입에 달고 살았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종류가 있는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마냥 부정했다. 고등학교 때 푹 빠진 에어로빅을 살려 체대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나를 말리던 부모님. 대학교 때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바리스타가 되겠다고 했을 때도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후에 그런 것은 취미로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나를 말리셨다. 지금이야 어떤 마음이셨을지 이해는 가지만 그 당시에는 나를 믿어주지 않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자식이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이었겠지만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자라게 되었다. 결국 내가 원하던 대로 공무원이 되지는 않았지만 한 번 정착을 하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도 변화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옭아맸다. 부모님이 그 당시 나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훨씬 많은 힘듦과 굴곡이 있었을거라 예상된다. 어른 말 들어서 틀린 것 하나 없다는 말처럼 부모님 덕분에 나름 평탄하게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스스로 선택했던 것이 아니기에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미련’이라는 것이 늘 남아있다. 부모님‘ 때문에’포기한 에어로빅은 여전히 다시한번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이다.


부모님의 안 좋았던 습관이나 버릇 또한 나도 모르게 닮아간다. 내가 아이를 낳으면 절대 그러지 않아야지 했던 것을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등골이 오싹하다. 사실 인식할 때보다 인식하지 못하고 행동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 적 엄마가 시간 여유가 없을 때 재촉하는 것이 싫었다. 어린 나도 상황을 인지하고 노력하고 있는데 마치 나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것처럼 대할 때 무시당하는 것 같고, 늘 엄마 마음대로 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마음에 여유가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승윤이에게 그래왔다는 것을 아이가 첫 말을 뗀 순간 깨달았다. 돌 지나고 얼마 후쯤 외출을 하는데 아이가 너무 도와주지를 않는 것이다. 그 연령의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은 알지만 적어도 아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랬다. 예를 들어 내가 옷을 입히려고 할 때 가만히 있어주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유난히 그날은 기저귀 채울 때, 옷을 입일 때, 신발을 신켜줄 때 과정마다 계속 도망 다니면서 장난을 쳤다. 그런 날은 외출 전부터 탈진이다. 겨우 준비를 시키고 현관문을 열고 나왔는데 놓고 온 물건이 생각났다. 아이를 세워두고 다시 가지고 나오면서 신발을 신는데 승윤이가 매우 또렷하게 “빨리빨리~”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엄마’,‘아빠’와 기본적인 말들 외에 처음으로 한 말이 “빨리빨리”라니... 그 날 하루 내가 많이 썼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가 ‘엄마’라는 말을 입에서 떼려면 몇천번을 듣고, 연습을 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빨리빨리’라는 말을 내가 얼마나 많이 썼으면 그 조그만 아이 입에서 그 말이 나올까 생각되었다. 나는 여유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참 무색했다.  


나 스스로 마음에 안드는 나의 모습이 있다. 지금은 많이 고쳐졌지만 예전엔 심각한 우유부단에 결정 장애였다. 식당에서 메뉴 하나에도 ‘죽느냐 사느냐’처럼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불고기 버거를 시킬 까? 치킨 버거를 시킬까? 불고기 버거를 시키자니 치킨 버거의 바삭함과 마요네즈와의 조화로운 그 고소한 맛이 생각났고, 치킨 버거를 시키자니 불고기 버거의 달달하고 짭쪼름한 그 맛이 생각나서 도저히 고를 수가 없었다. 거기에 단품을 먹을까? 셋트를 먹을까? 음료는 사이다를 마실까? 그래도 콜라가 진리지... 그럼 콜라? 뭐 햄버거 하나 시키는데도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물론, 햄버거라는 메뉴를 결정하는데 까지도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결국 메뉴 자체를 다시 고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또 어려운 일이나 힘든 일에 부딪히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대신‘어떻게 하면 이번 일도 잘 넘길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내 일’ 이라는 생각보다 늘‘회사일’이라는 생각으로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을 했다. 업무가 갑자기 주어졌을 때도 이것을 기회삼아 더 잘 해보자! 는 마음은 없고 왜 또 나에게 이 일이 왔는지 원망하고 투정하기에 바빴다. 또 하나의 문제는 타인의 시선을 너무 많이 의식 하는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나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을 졌다기 보다 엄마가 시키는 것, 엄마의 영향이 더 컸다. 초등학교 때엔 올백을 맞아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공부를 했고, 착한 행동을 할 때에도 나를 위해서가 아닌 언니로써 본보기가 되기 위해 하는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인지 커서까지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더 신경을 썼다. 내 만족 보다는 상대방이 만족한 모습을 보며 내 만족을 채웠다. 그것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그것들은 쌓이고 쌓여 곪다가 한번 씩 터지곤 했다. 이런 나의 모습은 절대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아이는 나보다 더 건강한 마음과 정신으로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이를 도와줄 것인가? 어떻게 나의 생각을 아이에게 전달해 줄 것인가? 우리 어렸을 적 생각을 해보자.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부모님의 입을 통해 나오는 순간 괜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어려운 결심을 하고 TV를 끄고 공부하러 가려고 마음먹었는데 어떻게 알고 때마침 “TV 그만보고 공부 좀 해.” 라는 잔소리를 들으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스스로 마음먹었던 것까지 쏙 들어간다. 작은 것 하나하나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많아질수록 잔소리도 늘어난다. 결국 아이를 위해서 하는 나의 행동 때문에 아이와 관계만 나빠진다.


평소 나의 모습은 아이의 입에서“빨리빨리”라는 말이 나오기 전 나의 경우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문제가 일어난 순간 내 행동을 후회하고, 반성하고, 앞으로 그러지 않아야지 다짐하지만 그 때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건건이 반성문을 쓰자면 한 달에 책 한권은 나온다. 우리는 한 순간에도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 그 중 어떤 생각이 진짜 나의 생각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정말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 하는 것이 정말 나의 생각일까? 문제 상황에 대해서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느끼는 것이 정말 나의 느낌일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잊어 버리지 않게 잡아둘 수 있을까? 매해 년 초에 하는 결심이 결심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육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절대 화내지 말아야지!!’ 그 순간 다짐으로만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맞다. 육아일기를 쓰며, 매일 아침 글쓰기를 하며 느꼈던 점은 하루 동안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감정에 치우쳐서 쓰는 글쓰기가 아닌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읽어주는 글을 쓰는 것이다. 어제 급한 상황에서 아이가 도와주지 않아 화를 냈다면 그때의 감정에 다시 이입해서 열을 내는게 아니라 그 당시 내 마음 상태, 감정의 변화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묘사를 해보는 것이다. 그 때의 내 생각, 반성, 마음, 앞으로의 다짐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글로 적어내려가면서 진짜 내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중 나의 다짐! 앞으로 꼭 지켜야 할 것들은 따로 메모해 두고 자주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가 무엇보다 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다는 것을 느낀다. 주 양육자가 엄마가 아니라면 주 양육자의 영향을 더 크게 받겠지만 결국 큰 방향(=가치관)은 부모를 따라 간다. 나 보다 더 넓은 세계를 보여주고, 더 큰 꿈을 꾸게 하고 싶다면 아이의 사고가 아닌 나의 사고가 먼저 넓어져야 한다. 아이가 큰 꿈을 꾼다고 한들, 부모가 품어주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리는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고, 당장 직장생활을 이어가야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경험을 해볼 수가 없다. 도전을 하고 경험을 쌓는다 해도 모든 것을 아이에게 알려주기에 시간이 부족하다. 그 사이 아이는 훌쩍 자라버릴테니...말이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우리에게는 다행이도‘책’이라는 위대한 선물이 있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들은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을 할 수 있다. 마음 먹고 책을 읽다 보면 생각이 넓어지고 사고가 확장된다. 몰랐던 지식 뿐 아니라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책의 좋은 점은 누구나 알기에 우리 아이들이 책과 함께 자라기를 바란다.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우리 아이는 책을 많이 읽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렸을 적 우리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책의 좋은 점을 아무리 설명하면서 권한다 해도 잔소리로 들을 뿐이다. 모든 것은 부모가 먼저 선행해야하는 것이 맞다. 엄마가 책을 가까이 한다면 아이는 궁금해서라도 책을 본다. 아이의 꿈을 위해, 그리고 나의 삶을 위해 내가 먼저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모가 먼저 넓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아이의 인생을 응원해 줄 수 있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혹은 아빠가 된다는 것은 동시에 많은 역할이 주어짐을 의미한다. 그 것도 어느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이다. 배우자로서, 부모로서 역할 뿐 아니라 이모, 삼촌, 고모, 고모부의 역할, 배우자의 가족 울타리 안에서 새로운 역할... 어떻게 다 잘해낼 수 있을지 부담스럽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만 잘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내 인생, 나의 삶을 잘 보살피고 내 영혼의 선장으로 산다면 아이는 그런 부모를 보고 따라올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부모 뿐 아니라 다른 많은 것에 영향을 받기 시작하므로 100% 잘 자란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역으로 자식을 위해 아무리 부모가 노력하고, 애를 쓴다고 해도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 자식이다. ‘너를 위해, 너 때문에 내가 어떻게 했는데...’ 라며 애씀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이야기 할 바에야 그 정성을 나를 돌보는데 쓰자. 아이는 부모를 보고, 듣고, 느끼며 성장한다. 부모는 아이의 이정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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