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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일][01월06일]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

파랑새는  내마음 안에

대학교 때 한참 사주카페가 유행 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그 당시 5천원 이면 음료수도 마시고 사주도 봐줬으니 갈만했다. 통계학을 전공했지만 승무원이 되고 싶었다. 나는 과연 승무원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궁금했다. 5천원 짜리에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지만 보고나오면 뻔한 이야기들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충창로에 진짜 잘보는 사주카페가 있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같은 학과에 다니면서 법원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와 함께 예약을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음료수도 안주고 만원이나 했다. 평소 지불하던 금액의 2배였으니 뭔가 달라도 다르겠지 하며 기대도 되었다. 아르바이트 시급이 2천원 하던 때였으니 만원이면 꽤 큰돈을 투자한 셈이다. 그 분께 내 꿈이 ‘승무원’이라고 말씀 드렸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 타는 승무원??”이라고 되물으셨다. 오행(五行)의 요소인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에서 토(土)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옷도 흙색과 비슷한 노란색, 갈색이 좋고 직업도 땅을 밟고 있는게 건강에 좋다고 했다. 만약 승무원이 된다고 해도 내 몸이 너무 힘들거라고, 결국 포기할 수도 있을 거라고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굳이 꼭 그런게 하고 싶으면 KTX 승무원 같이 땅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생각해 보라고 했다. 만원이나 주고 사주를 봤으면 점쟁이 말을 믿어야 하겠지만 100% 믿지 않았다. “점쟁이도 지 앞길은 모른다더라!!!” 며 열변을 토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나는 어느새 KTX 승무원도 알아보고 있었다. 그 후에도 몇 곳을 더 보았고 엄마도 그런 걸 즐겨 보는 편이라 가끔 내 사주를 봐 오셨지만 사주에 승무원은 없었다. 대학교 4학년 때 승무원과 대기업을 동시에 지원해 놓고 대기업이 먼저 최종확정이 되었을 때 큰 미련없이 승무원이라는 꿈을 접을 수 있었던 것도 점쟁이의 영향이 컸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몇 번의 퇴사 고비마다 점집을 찾았다. 듣기 싫은 것은 다 걸러내고 내가 듣고 싶은 말만 찾았다. 내가 선택해야하는 것들을 앞두고 건건이 ‘참조용’ 이라는 핑계로 점쟁이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중독이라고 할 만큼 자주 찾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늘 갈등을 했다. ‘갈까? 말까?’ 어렸을 적부터 혼자 스스로 하기 보다 부모님의 영향이 컸기에 성인이 되어서까지 자꾸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습관이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까지 남편의 중국 파견을 앞두고 ‘보내도 되는 건지... 잡아야 하는건지?’ 점쟁이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결국 내가 감당할 문제였는데 내가 결정한 상황을 감당하지 못할까봐 용기가 나지 않았다. 또 누군가의 결정과 조언에 의지하고 싶었다. 남편이 중국에 가면 우리 셋은 어떻게 해야 하나... 긴급 상황에는 어쩌지? 도와줄 사람이 누가 있지? 등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그려보며 남편과 대책마련에 나섰다. 문득 어찌 되었건 내가 감당해야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걱정만 하면 결국 나만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려했던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건데 계속 안좋을 경우만 생각하니 기분도 더 안좋아졌다. 안그래도 불안한데 더 두려움만 커져갔다. 남편도 분명 진심으로 우리 세식구를 우려하는 마음이었겠지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지켜봐주고 응원해 주는 것 뿐이라는 것. 그래서 그냥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애 둘 천안에서 보겠다고 이야기 해버렸다. 그렇게 내 입으로 내뱉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왠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남편이 중국에 가고 나서 그 상황에 흠뻑 젖어 보니 미래에 대한 걱정이 평소보다 덜했다. 남편이 없는 기간 세 식구 건강하게 무사히 잘 지내주는 것 만으로도 밑져야 본전이었기 때문에 부담 없이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혼자 힘으로 해나가며 바닥이었던 자존감을 쌓아 올라갔다.


남편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내가 직접 해보니 지금까지 참 감사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 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 처리, 동시에 아픈 두 아이 데리고 병원 다녀오기, 마트 장보기를 성공하며 나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작은 성공을 맛보았다. 무엇보다 가장 뿌듯했던 기억은 자동차 4개가 합체가 되어 하나의 변신로봇이 되는 것을 성공했다는 것이다! 남편이 있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빠 오시면 해달라고 하자. 엄마는 이런거 잘 못해. 로봇 변신은 아빠가 잘해.” 라며 온갖 핑계를 대면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1년만 기다리자”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 하기에는 아이가 너무 어렸다. 그래서 “승윤아, 설명서 가져와봐. 우리 같이 한번 해보자.” 하고 차근차근 도전했다. 이게 대체 아이들의 장난감이란 말인가... 설명서 만으로 쉽지 않았다. 네이버 검색, 유투브 영상을 보면서 겨우 완성 시켰다. 남편이었다면 뚝딱뚝딱 했을 것을 꽤 오랜 시간에 걸쳐서 결국 성공한 것이다. 그때의 성취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오버하는거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예전의 나였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작은 성공 경험이 쌓이면서 자존감이 상승 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조금 더 큰 것을 도전해볼 용기가 생겼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다.


<독서천재 홍대리> 라는 책을 읽으며 나만의 분야가 무엇인지 찾고 싶었다. 독서습관을 들인 이후엔 집중 독서로 나만의 분야를 찾아 그 분야의 책을 읽으라고 되어있어서 실천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떤 분야를 선택해야할지 막막했다. 회사 내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업무로 해야하나? 생각하니 시작하기가 싫었다. 생각해 보니 독서를 그때그때 했지 전략적으로 해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분야가 뭘로 잡을지 더욱 찾고 싶었다.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실천해 볼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일까?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니‘육아’뿐이었다. 그리고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 온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탐났다. 100권을 읽으면 전문가가 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믿고 싶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조금 생긴 자존감이 큰 역할을 했다. ‘육아’라, 나는 어떤 엄마인가? 어떤 엄마가 되고 싶지? 어떤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까...? 아이 연령에 맞는 체험활동, 엄마표 놀이.. 이런 활동을 찾아 해주는 부지런한 엄마는 못되었다. 그냥 서로 마음 편하게 지내고 싶었다. 아이에게 따뜻한 엄마, 용기를 주는 엄마, 대범한 엄마, 지혜로운 엄마가 되고 싶었다. 감성육아’라는 말이 유행이었는데 그런 엄마가 되자! 라고 생각하고 책에서 찾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텅 비어있는 마음이 채워지는 듯 했다. 또렷하게 눈에 보이지 않고, 볼 수도 없지만 점쟁이에게 점을 봤을 때보다 훨씬 나에 대한‘믿음’이 생겼다. 가슴이 벅차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나에 대한 믿음,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그것을 찾고 싶다는 강한 마음. 하지만 정리가 되지 않았다. 책읽기에 흠뻑 빠져 너무 행복했지만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무작정 들이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을 정리해 보고자 시작한 글쓰기였다.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매우 우연한 기회였다. 가끔 메일 정리를 하는데 정기적으로 받고 있는 곳들의 메일을 일괄적으로 삭제하려고 하다가 [북바이북]에서 온 메일 하나를 클릭해 들어갔다. 독서, 토론, 필사, 글쓰기 강의에 대한 것이었는데 궁금해서 클릭해 들어갔더니 숭례문학당이라는 곳이었다. 2010년에 서평쓰기 초급반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강사님이 학당 이사님으로 활동하고 있는 곳이라 더 관심이 갔다. 그때는 신기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자신에 대해 정리 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끌어당김의 법칙이 적용했던 것 같다. 서울에 가서 어느 것이라도 좋으니 수업을 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두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나 내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나 찾아봤더니 온라인 100일 글쓰기가 있었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내 상황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었다. ‘100‘ 이라는 숫자는 지금이야 거뜬히 해내지만 그 당시엔 큰 도전이었다. 작은 성공이 쌓여 용기가 생기기도 했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든다는 증거였기에 일단 시작했다!!! 실력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진즉 포기하고도 남았다. 지금껏 살면서 글쓰기를 제대로 해 본적도, 배워 본 적도 없었다. 그것보다 글쓰기 실력을 늘려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분명 쓰다가 말았을 것이다. 책을 읽다 보니 쓰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 습관을 들이고자 매일 글을 써보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자유로운 주제’로 매일 쓰라고 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써야할지 난감했다. 자기검열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 본다는 것이 자꾸 신경 쓰였다. 차라리 주제라도 있으면 공부하고 고민해서 채우기라도 할텐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 신기한 것은 매일 같은 고민을 10일 정도 반복하다보니 글을 쓰기 시작하며 나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관한 ‘나’에 관한 것들이었다. 하루 분량을 겨우 마무리 하고 다음날이 되면 또 같은 고민이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쓸 거리가 생겼다.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많아졌다. 생각도 많아지고, 분량도 많아졌다. 내 안에 꾹꾹 눌러왔던 생각들이 뻥 하고 터진 것이다. 결국 200일 정도를 지속하며 내가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 정리가 되었다. 점쟁이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진정 나의 삶, 나의 인생 그림 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나는 아무것도 이뤄놓은게 없는 조금은 큰 꿈, 삶의 방향일지언정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찾은 나의 소명대로 사는 삶이라...  진정한 행복이다. 글쓰기를 하며 내 안에 있는 답을 찾은 것이다. 글쓰기가 가져다준 가장 큰 선물이다.


남편이 글쓰기를 시작했다. 더 이상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 먹고 살기는 힘들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도 사라진지 오래다. 미리 제 2의 인생을 준비해야한다. 남편은 에너지가 굉장한 사람이다. 원래부터 성실한 사람이다. 하고자 하는게 있으면 정말 끝까지 한다. 지금도 중국어를 잡고 있는데 아마 현지인처럼 될 때까지 공부할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은 몇 년 하다가 안되면 포기를 하는데 남편은 ‘난 왜 이렇게 머리가 안좋지?’ 라고 이야기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평생이 걸릴지라도 끝까지 해낼 거라 믿는다.  나와 평생 함께 할 남편이기에 내 인생만큼 소중하고 함께 성장하고 싶다. 한 가지 장점에는 단점이 동시에 존재하듯이 남편은 끝까지 가는 성격을 갖고 있지만 본인의 고집과 본인만의 방식이 있다. 남편도 직장생활 후 2의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뭘 하면 잘할 수 있을지, 뭐가 남편에게 잘 맞을지를 주제로 가끔 이야기를 나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디어를 공유하지만 결국 남편 스스로 찾아내야만 하는 것이란 걸 서로 잘 알고 있다. 내가 글쓰기로 꿈을 찾고, 제2의 인생을 찾아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남편에게도 글쓰기를 권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막상 할 수가 없었다. 반발심이 일어날까봐. 역효과가 걱정이 되어...... 모든 것이 그렇듯이 본인이 직접 느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맛있는 것도 먹어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맛을 모르는 것처럼 글쓰기의 맛도 그러하니까. 내가 아무리 입이 닳도록 이야기 한다 해도 남편의 성격에 오히려 도망갈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전략을 바꾸었다.  뒷심이 약한 내가 꾸준히 쓰고, 쓰면서 나의 꿈을 찾고,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자연스레 남편의 마음이 열리지 않을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까 내 마음도 편했다. 남편이 입국하고 매일 무언가를 쓰는 나를 지켜본지 11개월이 지났을 무렵 남편이 글쓰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를 놓칠 수야 없지!!!!!! 그 마음이 가시기 전에 노트를 준비했다. 그리고 며칠 후 출근 전 10분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출근 준비를 다 마치고 내 앞에 앉아서 펜을 들고 첫 글자를 쓰려는 순간이었다. “음....그런데...... 무슨 말을 써야해???” 그렇게 물으며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100일 글쓰기를 처음 시작한 16개월 전의 내 모습 같았다. 싱긋 웃으며 “아무 말이나, 남편이 생각나는 대로 써봐요. 내가 출근 전 10분을 쪼개서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는지부터 한번 물어봐~” 했다. 남편도 이제 시작이다. 남편 안에 이미 가지고 있는 답을 분명히 찾아낼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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